고귀함 내던진 예술의 이면
'모든 작품 시민 소유'헬싱키 퍼블릭 아트 
설치·장르·장소 등 능동적인 결정권 부여 
사회·일상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

"Dot Island?(돝섬?)"

마이아 딴니넨 마띨라 핀란드 헬싱키 아트 뮤지엄(HAM) 관장은 창원의 돝섬에 대해 흥미로워했다.

HAM은 헬싱키 시가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헬싱키 시티 뮤지엄(역사 중심 박물관)과 축을 이루며 현대 미술을 중심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에 어떤 문화색을 입힐지 고민하고 실행하는 곳이다. 그녀가 총 책임자다.

마이아에게 돝섬을 설명했다. '2012창원조각비엔날레', '2014창원조각비엔날레' 때 선보인 조각 24점이 도시와 아주 가까운 작은 섬에 있다고 말하니, 그녀는 홈페이지((http://changwonbiennale, 창원비엔날레)를 보여달라고 했다.

마이아는 "와, 작품이 참 많다. 돝섬은 재미있는 곳이다. 그런데 정보가 아주 단순하고 간략하다. 더 많이 알고 싶다"고 아쉬워했다.

그녀에게 물었다. 헬싱키는 어떻게 스스로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말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마이아는 "HAM은 예술을 통해 헬싱키가 즐겁길 바란다. 또 우리가 가진 모든 작품은 헬싱키 시민의 소유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헬싱키 라티공원에 있는 조각품 'Armor'.

◇동네 주민이 정하는 퍼블릭 아트

헬싱키시는 퍼블릭 아트(Public Art, 공공예술)를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환경예술과 기념비, 그래피티 등을 포함해 정책을 편다.

그 중 시가 소유한 공공시설에 설치하는 미술작품에 공을 들인다. 이를 HAM이 관장한다.

마이아는 "건축비의 1%를 공공시설물에 세우는 미술작품에 쓴다. 시민이 일상에서 늘 접하는 예술이며 세금이 사용된다. HAM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고 말했다.

도시계획이 세워지면 시청과 미술관, 건축가, 일반 시민이 수시로 만난다.

스투바 니콜라 헬싱키시청 문화서비스 최고담당자는 "공청회를 지속적으로 열고 우리 마을에 어떤 예술품을 들일지 논의한다. 학교와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도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고 설명했다.

HAM미술관 모습.

뚝딱 결정되지 않는다. 설치 장소와 예술 장르, 종류를 하나하나 묻고 토론한다. 보통 2년 넘게 걸리는 작업이다.

이들은 '야꼬마끼 프로젝트'를 예로 들었다. 소득 수준이 낮고 낙후한 야꼬마끼에 대대적인 도시 개발이 펼쳐졌다. 시와 HAM은 1% 예술작품을 활용해 주민과 소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야꼬마끼는 다양한 문화인이 사는 마을이 됐다.

산업지대였던 '아라비아'도 15년 전 도시 개발을 시작하며 모든 빌딩에 조각품을 넣었다. 주민이 예술작품을 직접 선정해 30여 개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이는 그 마을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지난해 헬싱키쿠겐하임미술관 건립 사업이 막바지에 부결된 것도 주민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고급스럽게 잘 포장된 예술이 아니라 주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했다. '나랑 무슨 상관이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를 물었을 때 큰 미술관은 답을 주지 못했다.

◇"조각품은 잠깐만 두는 것"

헬싱키 남항 근처에 '하비스 아만다'라는 동상이 서 있다. 발트해의 아가씨라 불리는 핀란드인 누구나 좋아하는 전설 속 인물이다. 국내외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동상이다.

그런데 헬싱키 시민들은 그저 바라만 보지 않는다. 매년 노동절날 하비스 아만다를 씻긴다. 거품을 칠하고 물을 끼얹는다. 우리가 주인인 날에 핀란드를 대표하는 예술품과 함께 한다. 주인의식을 나타내는 하나의 퍼포먼스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세운 조각품도 다양하게 즐긴다.

마이아 딴니넨 마띨라 핀란드 헬싱키 아트 뮤지엄(HAM) 관장.

HAM은 야외조각품 가이드 투어를 만들어 시행한다. 헬싱키시 전체에 세워진 작품 3500개 가운데 밤낮으로 볼 수 있는 450개를 추렸다. 이 중에서도 주제를 정해 조각품을 나눠 10개 코스로 만들었다.

핀란드 대표 캐릭터 '무민'을 그린 작가 토베 얀손의 삶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따라가 보는 5㎞ 코스, 시내를 한 바퀴 달리며 10개의 조각품을 감상하는 8.3㎞ 코스 등이다. 운동을 하고 싶을 때,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을 때, 새로움을 찾고 싶을 때를 나눠 투어 코스를 짜놓았다.

그렇지만 HAM은 시민들이 야외조각품 가이드 투어를 얼마나 이용하는지 큰 관심이 없다. 집계하지 않는다. 그보다 어떻게 누리는지 알고 싶어 한다.

마이아는 "피드백이 중요하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많은 요청을 해놓았다. 공공조각품에 얽힌 추억을 써달라, 망가진 조각품을 신고해달라, 최근에 설치된 조각품은 마음에 드는지 물어본다"고 했다.

이는 앞으로 진행할 도시개발에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조각품은 잠깐만 뒀다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또 미래에는 새로운 작품을 세워야 한다. 주민의 요구와 관심은 계속 변할 것이다"고 했다.

◇"예술은 시민의식 원동력"

도시 곳곳에 널린 조각품을 시민이 어떻게 즐기는지 알아보고자 찾아간 헬싱키에서 스투바는 여러 번 갸우뚱거렸다.

여러 질문에 돌아온 답은 한가지였다. 바로 주민.

그는 "그럴싸한 문화도시는 많은 돈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세계에서 유명한 작가와 작품을 사들이면 된다. 그런데 왜 그래야 하냐? 예술은 그 자체로 고귀한 영역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사회와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누구나 볼 수 있는 '민주적인' 퍼블릭 아트는 좋은 매개체다"고 거듭 말했다.

헬싱키 남항 근처에 서 있는 '하비스 아만다' 동상. 시민들은 매년 노동절날 하비스 아만다를 씻긴다. 거품을 칠하고 물을 끼얹는다. /HAM

헬싱키는 시민에게 '세금으로 세운 작품이니 주인의식을 가지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시민에게 모든 결정권을 주어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것. '시민 프로세스'가 먼저였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헬싱키 키아즈마 현대미술관 앞에 놓인 동상 'Mannerheim'. 핀란드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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