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 미국서 인정 후 국내 화제 씁쓸
우리 지역 예술가 찾아 박수부터 보내자

지난주 국내 소셜미디어는 물론 언론과 방송까지 뜨겁게 주목한 한 음악 밴드가 있다. '씽씽(SsingSsing)'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밴드는 록음악을 한다면서 특별하게도 우리나라 민요를 록 비트에 얹어 부른다. 노래 부르는 보컬도 모두 경기민요 등을 배운 전문 소리꾼들이다. 이 밴드가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대표적인 음악프로그램인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초대받은 것이다.

겨우 라디오 프로그램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음악 좀 안다는 분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꽤 유명하다. 세계 음악 시장의 트렌드를 선도할 만하다는 평가와 주목을 받아야 겨우 이 무대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씽씽이 부른 민요메들리가 NPR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되자 순식간에 우리나라 소셜미디어들이 달아올랐다. 곧이어 각종 언론과 방송 프로그램에 인터뷰 기사가 쏟아졌다.

사람들은 '민요의 재발견'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한 번쯤은 들어본 익숙한 노래가 록 비트와 만나 새롭고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보컬 소리꾼들의 도발적인 복장과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민요를 더 낯설게 느끼게 하였다. 좋은 일이다. 우리 전통 음악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높이 평가받으니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인정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에야 국내에서 화제가 되는 모양새는 아쉽고 씁쓸하다. 우리 사이에 먼저 인기를 얻고 그 힘으로 세계 시장에서 평가받는 우리 음악 사례는 왜 이렇게 드문 걸까?

씽씽의 음악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2014년이었다. 국립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이었던 '제비·여름·민요'에 11명의 소리꾼이 참가해 록페스티벌을 겨냥한 파격적인 무대를 실험했고, 반응이 좋자 멤버를 여섯 명으로 추려 홍대 라이브 클럽 무대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씽씽이라는 밴드가 탄생했다. 다양한 클럽 무대에서 '창부타령'도 부르고 '정선아리랑'도 부르고, '베틀가'도 부르고, '한강수 타령'도 불렀다. 좋은 평가는 받았지만 대중적인 반향은 없었다. 국악계도 씽씽의 파격적인 도전을 불편하게 여겼다. 그들이 바다 건너 시장을 바라본 건 어쩌면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2000년대 초 진주 출신의 놀이패 '들소리'가 특유의 흥과 에너지로 무장하고 서울 대학로 무대를 노크했다. 그러나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아무개 대학 국악과를 졸업했다는 학맥과 아무개 선생을 사사했다는 인맥이 전무했던 '듣보잡' 지역 출신 놀이패에게 선뜻 무대를 열어줄 만큼 서울의 공연 시장이 개방적이진 않았다.

자기 에너지에 자신이 있었던 들소리는 차라리 선입견 없이 음악을 들어줄 세계 음악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주목을 받은 뒤 이름 난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줄줄이 초대받았고 급기야 미국 무대에 진출해 뉴욕 타임스 문화면 톱에 큰 사진과 함께 소개되고 나서야 국내 음악계가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리 음악은 세계에서 우리가 가장 잘 알 텐데, 우리 음악을 1도 모르는 해외에서, 그것도 미국에서 평가받아야 비로소 화제가 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성리학을 내세운 조선시대부터 누백 년 간 내면화된 사대주의 세계관 때문일까? 고향 나사렛에서 배척받은 예수처럼 자기 것이라면 우선 얕잡아 보는 자학적인 심보가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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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혁명으로 부패한 정권을 종식한 멋진 서사를 쓴 우리라면 이제 문화적으로도 미국의 평가를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문화를 좋아하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 우리 지역에서 우리 음악으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예술가들을 찾아 듣고 박수 쳐주는 일부터 해보자. 다행히 우리 지역엔 '큰들'이나 '가곡전수관' 같은 보석같은 단체들이 아직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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