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극단 지역 스토리텔링 작품 잇달아 공연
극단 장자번덕 <와룡산의 작은 뱀>
오늘까지 사천문예회관 대공연장
극단 아시랑 <처녀뱃사공>
3·4일 함안문예회관 대공연장

지역에 오랜 시간 뿌리내린 인물, 문화, 역사가 무대 위에 꽃피웠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가 잇달아 극으로 만들어졌다. 사천 극단 장자번덕과 함안 극단 아시랑이 공연장 상주단체육성지원 사업으로 만든 창작극 <와룡산의 작은 뱀>(작 정가람), <처녀뱃사공>(작 박현철)이 그것이다. 고려 공민왕과 현종 이야기를 새롭게 각색한 <와룡산의 작은 뱀>은 1일 사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에 올라 2일까지 저녁 7시 30분 관객을 찾는다. 가요 '처녀뱃사공' 사연을 재가공한 <처녀뱃사공>은 함안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3·4일 오후 3시와 7시 30분 4회 공연된다. 각각 극단을 품은 지역을 활용해 같은 듯 다른 해석으로 지역민과 호흡한다.

◇무대 위에 펼쳐진 지역

사천에는 주산이 있다. 와룡산이다. 용이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는 형상에서 유래됐다. 고려 제8대 현종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현종은 왕이 된 후 지금의 사천인 사수현을 사주로 승격시킨다. 사천은 임금이 태어나 자란 제왕의 고향 '풍패지향'인 것이다. 현종은 거란 침입에 맞서 안팎으로 왕권 확립 기틀을 세운 왕으로 알려져 있다.

장자번덕은 긴 시간을 뛰어넘어 고려왕조 황금기를 이끈 현종을 불러낸다. 고려 제31대 공민왕을 통해서. 공민왕은 원나라에 복속된 고리를 끊고 왕권을 다진 왕이다. 원으로부터 폐위조서까지 받은 공민왕은 백성 사기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 연등회를 연다.

장자번덕 <와룡산의 작은 뱀> 연습 모습. 극 중간중간 전통 민요와 창작음악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극은 여기서부터 막이 오른다. 공민왕이 앞서 국가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현종과 조우하는 지점이다. 연등회를 꾸민 광대를 통해서 현종의 이야기가 공민왕에게 전해진다. 두 왕은 그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관객과 만난다.

장자번덕이 역사적 인물을 바탕으로 극을 재구성했다면, 함안 아시랑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노래에 집중했다. 1950년대 뜨거운 인기를 얻었던 '처녀뱃사공'의 배경과 사연이 극의 중심이다.

'처녀뱃사공'은 1953년 유랑극단을 이끌고 함안으로 왔던 윤부길 씨가 악양 나루를 건널 때 나룻배를 저어주던 처녀의 사연을 듣고 노랫말을 지었다. 윤부길은 가수 윤항기·윤복희 남매의 부친이다.

아시랑 <처녀뱃사공> 연습 모습.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오며, 젊은 세대를 흡수하는 랩도 가미했다.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노랫말이 지어지고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악단을 이끌던 윤부길이 정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악양 나루터에서 쫓기다시피 배에 몸을 싣는 데부터 시작한다. 그는 노를 젓는 뱃사공이 다름 아닌 처녀라는 데 착안하여 그녀의 사연을 바탕으로 '처녀뱃사공' 노래를 완성한다. 하지만 가무악극으로 만들고 싶었던 그의 꿈은 미완에 그치고 만다.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받아 부길의 손자가 작품을 완성시켜려 한다.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가무악극의 두 형태, 전통과 현대

두 작품 모두 춤과 음악이 주를 이루는 가무악극 형식으로 구성됐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루는 중심은 음악이 이끈다. 물론 형태는 다르다.

가산 오광대와 만석중놀이 등 전통 연희를 바탕으로 제작된 <와룡산의 작은 뱀>은 극 중간중간 전통 민요와 창작음악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극과 춤, 소리,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퓨전'을 내세웠다고 할 수 있다.

장자번덕 <와룡산의 작은 뱀> 연습 모습. /극단 장자번덕

<처녀뱃사공>은 주크박스 형식을 취했다. 악극단에 걸맞게 '귀국선', '기타부기', '나는 17살이에요', '닐리리 맘보', '오동동타령' 등 시대를 대표하던 음악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그 위에 젊은 세대를 흡수하는 랩도 가미했다.

차력과 마술 등 남녀노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요소도 첨가해 볼거리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

<와룡산의 작은 뱀>에 등장하는 현종과 공민왕은 여러 모로 공통분모가 있다. 성종 때 끊긴 연등회를 다시 살린 이가 현종이고, 세시풍속으로 확장한 이가 공민왕이다. 두 왕은 외세에 흔들리는 국권을 다잡고자 애썼다.

2017년은 현대사에서 역사의 분기점으로 기억될 해다. 현종과 공민왕은 백성이 주인인 나라의 왕이 되기를 바랐다. 그들이 원했던 세상은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과도 겹친다.

아시랑 <처녀뱃사공> 연습 모습. /극단 아시랑

작품명 <와룡산의 작은 뱀>에서 '작은 뱀'은 현종이 어린 시절 지었던 시 '작은 뱀'에서 따왔다. 이를 두고 극을 만든 장자번덕 이훈호 연출가는 "사천과 시민, 그리고 문화예술이 용처럼 승천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처녀 뱃사공>은 노랫말의 배경인 함안을 알리고 주민들 자긍심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뒀다.

지역의 정수를 찾아 스토리텔링을 한 만큼 지역민이 극에 참여한다. 학생, 주부, 직장인 등 함안 군민들이 무대에 올라 극을 구성한다.

아시랑 손민규 연출가는 "함안지역을 소재로 공연을 하는데 이왕이면 군민이 함께 만들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며 "이번 기회에 처녀 뱃사공이 한번 더 알려지고, 이를 통해 함안의 존재감도 같이 부각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아시랑 <처녀뱃사공> 연습 모습. /극단 아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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