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도전, 이웃의 땀, 거창의 자연이 만든 아이스크림

"채소 아이스크림이 있대요." 후배에게서 거창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추천받았다. "가을 제철이 뭐지?" "사과가 맛있고 배도 맛나지. 그럼 사과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볼까나." 이런 대화가 흔한 곳, 바로 거창이었다.

'뿌에블로 젤라또'라는 간판을 내건 천연재료 아이스크림가게를 만났다. '뿌에블로'는 스페인어로 작은 동네, '젤라또'는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을 뜻한다.

"100% 자연재료로 직접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가게는 아마 경남에서 저희뿐이고, 전국을 쳐도 10곳 정도에요."

장무궁(34)·전효민(32) 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신혼여행 중 맛본 아이스크림을 잊지 못해 직접 만들겠다고 호기롭게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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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임자와 마리 외수니, 자두가 담긴 컵. / 이미지 기자

2014년 3월 결혼, 신혼여행 기간 1년 6개월, 2015년 10월 거창 도착·11월 점포 계약, 2016년 5월 개업.

이러한 시간이 겹겹이 쌓여 뿌에블로 젤라또가 탄생했다. 부부는 꽤 길게 신혼여행을 했다. 브라질, 유럽을 돌았다.

"40개국을 돌아본 신혼여행 중 한 뜻이 되어 먹은 음식이 바로 이탈리아 젤라또였습니다. 눈만 마주치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고 말할 정도였으니깐요. 우리가 이렇게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나, 생각할 정도로 매일 먹었어요.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았죠."

효민 씨는 이제껏 먹었던 아이스크림에 대한 의문과 배신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딸기 아이스크림에 진짜 딸기가 있었다. 향과 페이스트를 쓰는 한국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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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임자와 마리 외수니, 자두가 담긴 컵. / 이미지 기자

부부는 여행 중 농담 삼아 주고받던 일,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들어볼까'라는 말을 여행길에서 점점 구체화했다.

무궁 씨는 '아이스크림 만드는 법'이라는 원서를 구해 틈틈이 읽었다.

그리고 거창에 돌아와 가게를 계약했다.

"아주 멀리 내다보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신혼여행 때도 한국으로 돌아와 어떤 일을 하겠다고 계획한 건 없었어요. 그저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한 걸음씩 가자고 생각했어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도 자연스럽게 이어진 거죠."

로컬 농산물을 접목한 부부

부부는 책에서 배운 대로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맛과 질감, 느낌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하고 버리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 쫀듯한 질감과 맛의 선명도를 모두 잡아야 했다. 수 없는 연구 끝에 이들이 만들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60여 가지다.

부부는 인공색소, 유화제, 안정제를 전혀 쓰지 않고 만드는 아이스크림이라 재료에도 신경을 썼다. '로컬'을 더했다. '우리 동네 농부들의 농산물로 만든 젤라또'를 만들겠다고 약속을 내걸었다.

고제면 원기마을 민들레 사과농장의 사과, 거창읍 서변리 봉농원의 딸기, 마리면 영승마을의 쌀, 남상면 월평마을 농부의 꿀고구마 등 가게 안에는 농산물 지도가 펼쳐져 있다. 부부의 아이스크림에는 이웃의 정성과 거창의 햇빛, 바람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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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 씨가 아이스크림을 담고 있는 모습(큰 사진)과 포장박스에 담긴 초콜릿, 복숭아, 골드키위 아이스크림(작은 사진). / 이미지 기자

뿌에블로 젤라또에서 맛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은 과일로 만든 셔벗, 우유가 들어간 크림으로 나뉜다.

"수박이나 토마토는 물도 한 방울 쓰지 않고 만듭니다. 레몬 시럽만 추가할 뿐 과일 자체의 단맛과 수분으로 만들어집니다."

효민 씨는 가공하지 않은 농산물을 사와 직접 손질한다. 볶아서 빻은 콩이 필요하면 근처 방앗간에 부탁한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마리 외수니'와 '흑임자'다.

'마리 외수니'는 마리면 영승마을 농부 최외순·윤동영 부부가 키운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인데, 정말로 쌀이 씹힌다. 압력밥솥으로 한 밥을 섞어 만든다. 사르르 녹아 없어진 크림 사이로 밥알이 굴러다닌다. 낯선 질감이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재밌다. 무엇보다 맛이 좋다. 부드럽고 달콤하다.

'흑임자'는 고소함 그 자체다. 먹어도 먹어도 군침이 사라지지 않는다. 입맛 없는 어르신이 많이 찾는 간식이다.

과일 셔벗은 호불호가 갈린단다. 맛은 과일 그 자체다.

"진짜 과일이다, 라는 반응이 꽤 있죠. 향만 가미된 아이스크림과 달라 어색해합니다. 이런 분들은 집에 과일이 많다며 크림 종류를 선택해요. 아토피가 있어 아이스크림을 못 먹인 아기 엄마들이 과일 종류를 많이 찾아요. 어떤 손님은 아기가 5살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맛보여준다며 반가워했어요."

부부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두, 초콜릿도 자연 그대로 가공

뿌에블로 젤라또에서 원두와 초콜릿도 맛볼 수 있다.

무궁 씨는 거창에서 오랫동안 카페를 운영했었다. 결혼하며 문을 닫았다. 지금은 커피를 팔지 않고 원두를 볶아 카페에 납품한다.

"거리 곳곳이 카페잖아요. 우리까지 커피를 팔면…."

무궁 씨가 웃으며 말했다.

'빈투바 초콜릿'은 최근 판매를 시작했다. 추석 즈음부터 내년 봄까지 내놓는 메뉴다.

초콜릿의 원재료인 카카오 열매를 볶고 바 초콜릿 형태로 만드는 모든 과정을 직접 한다. 그래서 시중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초콜릿과 맛이 다르다. 카카오 열매 품종에 따라 카카오버터 함량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낸다. 신맛, 단맛, 쓴맛이 골고루 섞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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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 안에는 부부의 여행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왼쪽 효민 씨, 오른쪽 무궁 씨. / 이미지 기자

"적게 벌어 아주 잘 살자"

아무도 모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오늘을 행복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 부부는 오늘도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자신의 일상을 붙잡고 있다.

아이스크림 가게가 상업지를 벗어난 주거지역에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가게 앞 은행나무가 너무 예뻐요. 장사는 목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저희는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이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일하는 곳이잖아요."

부부는 매일 서로에게 묻는 게 있다.

"재미있느냐고, 서로에게 매일 물어봅니다. 대답은 물론입니다. '적게 벌어서 아주 잘 살자'가 저희의 신조죠."

매장 밖에서 검은 봉지를 든 한 할머니가 부부에게 김치를 건네고, 아빠 손을 잡고 온 꼬마 손님은 늘 먹는다는 배 맛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드나든다. 진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면 바로 여기.

<메뉴 및 위치>

메뉴 △마리 외수니 △발로나 초콜렛 △유기농 말자씨 △자두 등 계절마다 달라짐.

가격 △우노(한 가지 맛) 3000원 △두에(두 가지 맛) 3500원 △뜨레(세 가지 맛) 4000원 △포장박스 12000~23000원(택배 가능)

위치: 거창군 거창읍 중앙로 71(상림리 202-25)

전화: 010-6606-8768(평일 낮 12시~오후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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