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하는 도시재생 가능한가] (5) 끈질기고 은근하게 생존하기
문래동 예술촌 유명해지자 인근 철공소 불편 호소도
동네 주민과 지속적인 어울림·끈질긴 활동 '과제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문래동 예술촌'은 서울에서도 대표적인 도시재생 지역이다. 낮은 건물 사이, 얽히고설킨 골목에 작은 철공소들이 있고, 바로 옆에 갤러리, 햄버거 가게, 카페가 이어졌다. 근처 큰 철공소가 즐비한 골목 주변은 2, 3층마다 예술가들의 작업공간들이 숨어있다. 구석구석이 다 운치 있고 멋지다.

◇지나치게 유명해진 문래 예술촌 = 문래동은 한때 서울에서 가장 큰 철공소 골목이었다. 규모 큰 기업도 여럿 있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큰 철공소들이 수도권으로 이전하면서 공동화가 시작됐다. 이곳에 홍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스며들었다. 값싼 임대료에 시끄러운 작업을 해도 괜찮은 작업 환경은 이들에게 매력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초기 입주 작가들을 따라 친구, 선후배들이 들어왔다. 자연스레 예술가 네트워크가 생기고 자생적인 예술촌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도시재생 사업이 막 시작될 2007년부터는 공공지원을 받은 문화행사들도 자주 벌어졌다. 비슷한 시기 문래동 철공소 골목을 도시계획 정비사업 지역으로 한 정책이 나오기도 했다. 자치단체가 모순되는 정책으로 개입하면서 양상이 복잡해진 것이다. 복잡한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예술촌이 유명해지자 이를 위기를 느끼거나 불편해하는 철공소들도 생겼다.

문래동 예술촌 골목.

"철공소, 식당 등이 작가 작업실과 뒤섞인 구역이라 자연스레 교류를 했어요. 대안공간 '이포' 같은 곳에서는 문래동 작가 아카이빙 전시를 기획하면서 철공소 분들을 같이 초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세미나도 열었고요." (문래동 예술촌 거주 작가)

"(작가들하고) 별로 사이가 안 좋아요. 서로 싫어해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 나가기를 바라요. 여기 들어와서 다 망쳐놨어요. 집값만 엄청나게 올려놓고,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공장이 많이 없어졌어요. 처음부터 막을걸. 처음에 호기심에 가만 놔뒀다가 너무 확산해서 이제 막지도 못하고…." (문래동 예술촌 소규모 철공소 사장)

이렇게 상반된 생각이 문래동 예술촌의 현주소다. 사실 제대로 된 예술가라면 지역 밀착적인 예술촌을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제대로 하기엔 이미 지나치게 유명해져 버린 건 아닐까. 지금도 예술과 관련 없어 보이는 상업 공간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책방 '만유인력' 사례 = "(주민들이) 아직은 들어오시는 것도 어려워하세요. 어디 갈 때, 문 안 잠그고 나가니까 그때 들어와서 보시는 분들이 좀 있는 거 같아요. 제가 이렇게 컴퓨터하고 있으면 저도 손님인 줄 알고 그냥 들어오시기도 하고."

책방 '만유인력'은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오랜 주택가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문화공간이다. 자립음악가 한진식(야마가타 트윅스터·44) 씨가 아내 김연희 씨와 함께 운영한다. 요즘 유행하는 크라우드 펀딩(온라인을 통해 직접 다수로부터 소규모 투자를 받음)을 통해 만든 곳이다. 그래서 수익보다는 공유와 기여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 동네로 치면 1세대 도시재생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만유인력' 운영자 한진식 씨.

도시재생 관련 분쟁 지역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한 씨는 문래동 예술촌 명성이 도시재생 과정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지 잘 알고 있다.

"예술가를 보려고 사람들이 많이 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동네 사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 공간을 시작하면서 그가 택한 전략은 '은근하게'다.

"티 나지 않게 주민들 함께 어울리면서 계속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은근하게,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주민들과 함께하는 것을 도모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 교감하고 교류하면서 살만한 그런 동네로 만들고 싶은 그런 생각이 있죠."

그의 은근한 도시재생은 이미 시작됐다. 지역 주민들이 이 재미난 공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요 앞에 우리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는데 거기 학부모 한 분이 오신 적이 있어요. 뭔가 함께 기존에 안 하던 재밌는 것을 해보자 해서, 동네 어린이 전자음악단하고 동네 어머니 불만합창단을 해보기로 했죠."

◇지구발전 오라 사례 = 지구발전 오라는 상업화 추세로 예술가들이 대부분 떠난 광주 대인예술시장에서 유일하게 남은 문화공간이다. 광주 비엔날레 기획자였던 김영희(32) 대표와 비엔날레 참여 작가였던 김탁현(37) 디렉터가 공간을 꾸려가고 있다. 대인예술시장 전체적으로는 예술가들이 줄지만, 유독 지구발전 오라를 찾는 이들은 늘고 있다. 장기 레지던스로 작가 6명이 상주하고, 단기 레지던스로도 3~4명이 꾸준히 공간을 이용한다. 기획자 3명이 작가들에게 맞춤형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다른 공간들이 속속 빠져나가는 걸 지켜보면서도 이들이 굳이 대인예술시장에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김탁현 디렉터의 말이다.

지구발전 오라 운영자 김탁현 씨.

"여기에 아직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까요. 저희 같은 공간이 살아 있어야 작가들도 성장할 수 있거든요. 저희는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지역 작가들의 성장이에요. 이분들이 성장해서 나중에 10년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또 역으로 우리를 도와줄 수도 있고요."

10년만 버티자 하고 시작한 게 벌써 3년째다. 이제는 나름 노하우가 쌓여 안정화를 이뤘다.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어요. 2년간은 저희가 사비로 운영하다가 올해 처음 레지던시 지원을 받고 있어요. 그전에는 주위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사실 자본이 없으면 운영이 안 되니 그걸 벗어날 수 있는 게 뭘까 계속 고민하면서 운영하고 있죠."

이들의 끈질긴 활동이 그나마 대인예술시장에 예술성을 부여하고 있다. 여전히 상황은 불안하다. 하지만, 그 불안까지도 그대로 안고 묵묵히 나가고 있다.

"저희는 어차피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망하거나 하는 게 두렵지는 않아요.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아니면 뭐 딴 데 가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냥 가능하면 재밌게 하려고 노력하죠." <끝> 

[참고 문헌]

논문 <서울 문래동 창작촌의 문화정치학>(조은비, 2010)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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