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 시인의 <금강> 제4편

동학 곧 천도교는 그 출발 과정에서 여러모로 기독교와 닮은꼴이다.

예수는 목수 아버지를 두었고,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로 이 세상에 나왔다. 수운은 사대부가의 자식이었으나 그의 어머니가 신분이 불명확한 후처로 들어와 낳은 서자였다. 이 까닭에 예수나 수운은 출신을 중시한 세상에서 출생이 불안정한 공통점을 가졌다.

고향 나사렛에서 아버지 요셉처럼 가난한 목수 생활을 하던 예수가 서른 살 전후 요단강 변 유대 광야로 가서 예언자 요한의 세례를 받고, 서쪽 높은 산에 올라 40일간의 기도로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나, 최제우가 19살 때 아버지 근암(近菴) 공의 탈상 후 십여 년간 팔도를 돌며 행상을 한 뒤, 양산 천성산 내원암, 적멸굴 49일 독공수련 등 끈질긴 기도로 상제(上帝)로부터 무극대도의 법을 받은 것 또한 닮은 점이다.

마태나 누가 등 신약(新約)의 기술자(記述者)는 예수가 세례를 받고 강물에서 나오자 머리 위로 하늘로부터 비둘기가 내려앉는 성령의 강하(降下)를 보았고, 금식 기도 중 마귀가 나타나 "이 돌을 떡이 되게 하여 우선 굶주림을 해결하라"는 시험을 받고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느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고 응수하였다고 전했다.

수운 역시 <동경대전>, <용담유사> 등에 기록된바, 구도의 길을 걷던 중 먼저 을묘년(1855년)에 신인(神人)으로부터 천서(天書)를 받았다는 신비체험과, 경신년(1860년)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거쳐 "한울님을 바로 내 안에 모셨으니 가까운 것을 버리고 멀리서 얻을 바가 없다"고 하여 시천주(侍天主), 곧 한울님을 모시는 도리를 밝혔다.

이 같은 수운과 예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혁명 같은 새로운 복음이다. 따라서 당시 핍박받던 민중에게는 단비나 마찬가지였고 개벽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반대로 이 소식에 놀라 어쩔 줄 모르다 마침내 극도로 배척한 세력은 지배층이었다. 조선조정과 유림은 수운을 이단 사교의 괴수로 지목하였다. 꼭두각시 왕 헤롯을 앞세운 로마 정복자와 그 비호를 받았던 유대 종교집단도 예수를 신을 모독한 중죄인으로 몰았다.

그들의 수난은 노들벌과 골고다에서의 순교로 끝난 것이며, 제자들이 초기교단을 개척하고는 스승처럼 목숨을 바친 것도 서로 그러하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으뜸이던 베드로는 초대교회 지도자로 기독교의 반석을 놓았다. 이방인이었다가 계시를 받아 회심(回心)한 바울 또한 기독교 최대의 전도자였고 교회 형성의 가장 중추적 인물이었다.

산간 오지를 전전하며 조선 팔도에 동학의 씨를 뿌리고 꽃피운 해월 최시형도 예수 제자들과 같이 박해와 순교의 삶 그 자체였다.

두 종교의 발생 과정이나 전개과정에서 세세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같은 하느님을 모신 것과 평등과 박애의 기본 교리를 이란성 쌍둥이에 비유하더라도 지나친 해석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수운과 예수를 빗대는 일을 접고, 우리 이야기로 돌아와 수운의 신비하고 결정적인 종교체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최제우와 최시형의 전기를 쓴 윤석산 교수는 "수운선생이 주유팔로(周遊八路)로 세상을 본 후 '팔도강산 다 밟아서 인심 풍속 살펴보니 무가내(無可奈)라 할 길 없네-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라고 읊었는데, 고통받는 민생이란 다만 피지배계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한울님의 도와 덕을 실천하지 못하고 타락한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고 하여 당시 팔도의 백성은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두가 막무가내로 삶을 사는 것을 수운이 몸소 체험했고 이 세태를 비판하였다고 말했다.

549074_418792_3051.jpg
▲ 신동엽 시인.

또 "수운선생이 경신년의 결정적 종교체험을 하여 겪은 광경을 '꿈일런가 잠일런가 천지가 아득해서-안심가-', '萬古없는 無極大道 如夢如覺 받아내어-도수가-' 라고 전하였는데 하늘의 계시를 준 신인(神人)은 '원형으로서의 자신'이며, 칼 융이 말하는 개성화 과정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자기, 곧 신을 만나는 종교체험"이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을묘천서(乙卯天書) 이후 수운선생은 종래의 성리학의 천(天), 곧 이법천(理法天)이 아닌, 사천(事天), 기천(祈天)으로 인식 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동학이 빈부귀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자기 욕심만 차리는 각자위심(各自爲心)으로 황망했던 시대에 인간 본래의 천성을 회복하자는 각성의 종교라는 본 것이다. 특히 수운이 하늘의 부름을 받은 후, 그동안 자신이 배우고 믿었던 조선 유학의 성리학적 사고, 즉 경거(敬居), 성심(誠心)으로 집약된 개인의 수련, 또 하늘이 곧 이치라는 이법천(理法天)의 세계관을 벗어버렸으며 섬김과 기도의 대상인 하늘(事天·祈天)로의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고 하여 눈여겨 볼만한 견해를 밝힌 것이다.

소설가 김동리의 맏형으로 근세의 석학인 범부 김정설(凡父 金鼎卨) 선생은 그의 <수운 최제우론>에서 동학의 강령(降靈) 주문- 至氣今至願爲大降- 중에서 강령을 이렇게 풀이했다.

"강령(降靈)이란 법문은 그 유래가 무속에서 온 것이고, 무속은 신라의 풍류도(風流道)의 중심사상이다. 그 풍류도의 연원은 단군의 신도설교(新道說敎)인데 풍류도가 그 성시(盛時)에는 모든 문화의 원천도 되고 인격의 이상도 되고 수제치평(修齊治平)의 경법(經法)도 되었던 것이 후세 이 정신이 쇠미하면서 거러지, 풍각쟁이, 사시락이, 무당패로 떨어져 남아 오늘날 무속이라면 그냥 깜짝 놀라게 창피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강령법(降靈法)이라는 것은 샤머니즘의 여러 범절 중 하나로, 나라말로는 '내림을 받는다', '손이 내린다', '손대를 잡는다', '신이 내린다'라는 말로 남아있다. … 수운이 체험한 계시 광경은 강령, 이 계시는 유교나 불교나 도교의 정신에서 올 수 없고 무속의 '내림'에서 온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 문화사 사상사에 천번지복(天飜地覆)의 대 사건이었다. 역사에도 왕왕 기적적 약동이 있어 넋을 잃고 깊은 잠에 빠졌던 지리(支離)한 천년의 적막을 깨뜨리고 하늘에서 외우는 소리는 웬셈인지 마용동(馬龍洞)의 최제우를 놀래 깨운 것이다. 이는 역사적 대강령(大降靈)이며 동시에 신도성시정신(新道盛時精神)의 기적적 부활이라 할 것이다."

범부선생의 풍류도와 수운의 강령체험에 대한 견해는 탁견(卓見)이다. 왜냐하면 강령(降靈)을 유불선(儒彿仙)이 아니라 단군의 신도설교와 신라의 풍류도, 그리고 늘 우리와 함께했던 무속의 내림에서 오롯이 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네가 본 건, 먹구름 / 그걸 하늘로 알고 / 일생을 살아갔다. // 닦아라, 사람들아 / 네 마음속의 구름. // 아침저녁 /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을 / 볼 수 있는 사람은, // 외경(畏敬) /을 알리라. / 차마 삼가서 / 발걸음도 조심. / 마음을 아무리며, // 서럽게, / 아 엄숙한 세상을 / 서럽게, / 살아가리라.

- <금강> 2부 제9장 중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