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신
"아빠 양반이 그러더군. 하늘이는 '수신' 하나는 확실하다나? 항상 몸을 핥고 닦으며 맵시를 내는 게 중요 일과니 뭐. 사실 고양이만큼 수신에 성실한 생물도 없지. 그나저나 아빠 양반은 내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같은 말도 모르는 줄 아나 봐. 저 쉬운 말조차 이해 못하는 쪽은 인간인데. 아빠 양반만 봐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막 평해. 나랏일에 치를 떨고 나서 집안일을 하지. 마지막에 가까스로 씻더라고. 그러니까 '평천하치국제가수신'이잖아.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뭐가 중요한지 전혀 몰라. 아주 한심해. 야옹."
2. 공감
"혼자 있던 집에 누나라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게 돼. 구겨진 옷, 젖은 등, 붉은 볼을 보며 오늘 밖에서 좀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지. 약간 튀어나온 입술, 쿵쿵거리는 걸음, 내려 깐 눈을 보며 속상한 일이 있었다는 것도 알아. 그럴 때면 살짝 몸을 기대거나 꼬리로 훑으며 달래 줘. 공감은 고양이가 지닌 미덕이거든. 인간은 공감을 뭐 대단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 시작은 섬세한 관찰이야. 그런 점에서 아빠 양반이 딸에게 공감한답시고 오늘 무슨 일 있었냐고 계속 묻는 꼴을 보면 아주 한심하기 짝이 없어. 야옹."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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