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신

"아빠 양반이 그러더군. 하늘이는 '수신' 하나는 확실하다나? 항상 몸을 핥고 닦으며 맵시를 내는 게 중요 일과니 뭐. 사실 고양이만큼 수신에 성실한 생물도 없지. 그나저나 아빠 양반은 내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같은 말도 모르는 줄 아나 봐. 저 쉬운 말조차 이해 못하는 쪽은 인간인데. 아빠 양반만 봐도 세상 돌아가는 일을 막 평해. 나랏일에 치를 떨고 나서 집안일을 하지. 마지막에 가까스로 씻더라고. 그러니까 '평천하치국제가수신'이잖아. 일에는 순서가 있는데 뭐가 중요한지 전혀 몰라. 아주 한심해.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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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신. / 이승환 기자

2. 공감

"혼자 있던 집에 누나라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주 세심하게 관찰하게 돼. 구겨진 옷, 젖은 등, 붉은 볼을 보며 오늘 밖에서 좀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지. 약간 튀어나온 입술, 쿵쿵거리는 걸음, 내려 깐 눈을 보며 속상한 일이 있었다는 것도 알아. 그럴 때면 살짝 몸을 기대거나 꼬리로 훑으며 달래 줘. 공감은 고양이가 지닌 미덕이거든. 인간은 공감을 뭐 대단한 것처럼 얘기하지만 그 시작은 섬세한 관찰이야. 그런 점에서 아빠 양반이 딸에게 공감한답시고 오늘 무슨 일 있었냐고 계속 묻는 꼴을 보면 아주 한심하기 짝이 없어.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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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감.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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