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하고 표현하고 참여가 만든 변화
'설치·관리' 조례 제정 작가·시민 공동작업 등
새로운 도전 나선 서울
도시 바꾸는 도구 활용 공공미술 새 지평 기대

헌 신발 3만여 켤레가 서울 하늘 아래 내걸렸다. 서울시가 수명을 다한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조성하고, 공공조형물로 세운 황지해 작가의 '슈즈트리'다.

그런데 흉물 논란이 일었고 시민들은 혹평했다. 폐기될 신발로 재생의 의미를 표현했다는 작가 의도는 시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전국 어디보다 공공미술에 새로운 시도를 가한다. 시민이 작품을 심사해 공공조형물을 세우고 발굴한다. 시는 공공미술 조례를 제정했다.

지난달 서울 광화문광장·북측광장에서 열린 공공미술축제 '퍼블릭, 퍼블릭' 모습. 시민과 작가들이 색칠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지 기자

그럼에도 공공미술에 대한 논란은 뜨겁다.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설치하는 것만이, 그럴싸한 이름을 내걸고 행사를 치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창원시가 2년마다 '창원조각비엔날레'를 열며 도시 곳곳에 남긴 조각 작품을 어떻게 활용할지, 공공미술로 어떤 이야기를 입힐지 정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어려운 숙제다. 그렇다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공미술 조례 만든 서울시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서울은 미술관'의 약속을 발표하고 선언했다. △공공 미술의 주인은 시민이다. 서울시민을 가장 먼저 배려한다 △공공 미술은 도시의 결점을 가리고 표면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시의 문제를 찾아내고 개선한다 △공공 미술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와 함께 변화한다 등이다.

서울시가 도시 정체성과 시민에게 맞는 공공미술을 새로이 정의한 것이다.

서울 시민이 직접 뽑은 공공미술품, '시민의 목소리'. /서울시

이는 '서울특별시 공공미술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한 조례'로 구체화한다. 시는 지난달 21일 조례를 공포하고 지난 12일 관련 시행규칙을 제정했다.

행정에서 모든 걸 이끌지 않는다. 안규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조각가가 공공미술자문단장으로 참여해 여러 문화예술가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공공미술을 도시 면면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도시 미술관의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슈즈트리'와 '시민발굴단'

지난달 21일 '제2회 서울은 미술관 국제콘퍼런스'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틀간 열렸다. 서울시가 꿈꾸고 상상하는 공공미술의 행태를 논의하고 담론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세계적인 공공미술 학자 메리 제인 제이콥(시카고 예술대 교수)은 "거대한 빌딩 숲을 이루는 서울은 공공미술 작품이 들어설 최적의 도시다.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이를 진행하려면 시민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미술 메카로 잘 알려진 시카고는 1871년 일어난 대화재가 반전된 곳이다. 당시 목조건물 일색이었던 도시가 불에 탔고 폐허가 된 도시는 유능한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몰려들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서울과 창원처럼 공공미술의 불모지인 도시가 오히려 공공미술을 꽃피울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지난달 서울 광화문광장 북측광장 에서 열린 공공미술축제 퍼블릭, 퍼블 릭 모습. 시민과 작가들이 색칠 작업을 하고 있다. / 이미지 기자

서울시는 올해부터 도시에 맞는 공공미술품을 세운다. 첫 작품으로 강예린 작가의 '윤슬, 서울을 비추는 만리동'이 서울역 서부 만리동광장에 설치됐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이 설치될 공간과 맥락이 맞다고 평했다.

또 시민이 직접 심사해 뽑은 김승영 작가의 '시민의 목소리'를 서울광장에 설치했다. 시민들은 해마다 공공미술 작품을 투표해 자신의 일상과 마주할 작품을 고른다.

시민의 참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2회 서울은 미술관 국제콘퍼런스에서 소개된 '시민이 찾은 길 위의 예술'은 '공공미술 시민발굴단'의 성과다. 시민 101명이 11개 조를 이룬 시민발굴단은 주말마다 공공미술을 찾아 작품과 교감했다. 또 관리 실태를 꼼꼼하게 조사했다. 이는 '공공미술 지도'로 완성됐다. 시는 시민발굴단이 서울 곳곳을 누비며 발견한 작품을 토대로 공공미술 작품 73개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었다.

또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11개 조의 활동 성과와 작품 사진을 누구나 볼 수 있다. 공공미술로 서울을 찾는 이에게 아주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일상을 공유하는 예술"

지난 한 달 서울은 시민이 작가와 하나가 돼 작품을 제작하는 공공미술축제 '퍼블릭, 퍼블릭'이 한창이었다. 15·16일 광화문중앙광장·북측광장에서 '북벤치×초크아트 프로젝트'가 열려 작가 70여 명이 광장 바닥에 초크아트 드로잉을 펼쳤는데 작가와 시민이 뒤섞여 저마다 손가락에 물이 들도록 색칠 작업을 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이자희(25) 작가는 "시민과 작가가 함께한다기에 직접 신청서를 냈다. 혼자 작업하는 것보다 더 좋은 에너지를 받는다"며 "서울에서 공공미술이 새삼스럽지 않다. 작가로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싶다"고 했다.

'서울은 미술관' 1호 작품 '윤슬'. /서울시

학생들과 참여한 교사 정희원(51·인천) 씨는 "인천 작전여자고등학교에서 왔다. 미술이 어느 한 특정 집단의 예술이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처럼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작가를 만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미술을 미디어 분야로 확장한 '서울로 미디어캔버스'가 개장해 눈길을 끌었다. 미디어아트를 거리, 시민의 생활 장소로 옮겨올 수 있다는 실험을 했다.

메리 제인 제이콥 교수는 공공미술 작품이 실패하는 이유에 대해 생활 방식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시민이 아니라 특정 예술가를 고려한 공공미술 작품은 실패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공공미술이 유명작가 작품으로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기념비적 조각이 아니라 도시의 문제를 찾아 개선하는 역할로 예술로 고민한다. '오늘도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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