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하는 도시재생 가능한가] (4) 눈길끄는 도시재생 지역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 시와 '팔길이 원칙' 합의해 의전보단 재생사업에 집중
시작부터 철저하게 준비 100여 년 시장…역사 강조 청년-기존 상인 조화 이뤄

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은 도시재생 과정에 얼마만큼 개입하는 게 좋은 것일까. 두 가지 상반된 사례를 살펴보자.

정책적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데 기본적인 개념이 '팔길이 원칙'이다.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둔다'는 건데, 쉽게 말해 지원만 하고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애초 영국에서 시작된 이 개념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예술의 독립을 보장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특히, 담당 공무원 처지에서는 이를 지키기가 만만치 않다. 지원에 따른 구체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데, 문화예술인들은 당장 성과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실제 예술가들이 도시재생 지역에 재미와 이야기를 더하는 일들을 하긴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계량적 평가'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자치단체 간섭 없는 부산

부산시는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에 매년 예산을 지원하면서 이 팔길이 원칙을 지키고 있다. 또따또가는 옛 부산의 행정중심지였지만, 지금은 낡은 도심으로 남은 중구 중앙동과 동광동 일대를 문화와 예술로 재생하는 프로젝트다. 빈 점포나 사무실을 활용해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주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한다. 창작공간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중앙동 40계단을 중심으로 모여 있고, 조금씩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제시장, 남포동, 롯데백화점 등 번화가에 둘러싸여 있어 '도심 문화지대' 개념으로 여전히 발전 가능성도 크다.

부산시가 팔길이원칙을 지키는 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 간섭을 받지 않는 만큼 책임감과 운영 능력이 크다. /이서후 기자

프로젝트는 '또따또가 운영지원센터'가 총괄한다. 부산시가 크게 간섭을 하지 않는 만큼 운영 자체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책임감도 크고, 그동안 쌓인 노하우를 기반으로 프로젝트 운영 능력도 높다.

"처음부터 부산시하고는 팔길이 원칙을 지키자 합의를 했어요. 예산을 주는 것만 하고 간섭하지 말라고요. 첫해, 둘째 해는 축제(또따또가가 매년 진행하는 문화예술축전)를 열면 무대도 만들고 시 중요 인사도 부르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런 게 너무 낭비 같은 거예요. 이런 거 할 돈이면 우리 작가들 작품을 하나 더 만들 수 있고, 공간을 하나 더 빌릴 수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3년째부터는 무대도 아예 없애고, 의자도 안 깔고, 의전 같은 것도 없앴어요. 축제 기간도 두 달로 잡아서 작가들한테도 이 기간 안에 뭐든 한 가지만 하라고 주문하죠." (김희진 또따또가 운영지원센터장)

건물이 매물로 나올 때마다 창작공간 확보에 나서는 것도 센터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오래전부터 지역 부동산업체와 네트워크를 잘 만들어두었고 중개사들도 또따또가 취지에 공감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역에 건물주들이 바뀌면 한 번씩 연락이 오세요. 우리 건물 좀 임대해 줄 수 없느냐고, 우리가 어떤 것을 하고 있고 앞으로 뭘 하려는지 설명을 드리죠. 한 번씩 그렇게 만난 건물주들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요. 우리가 시예산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가 전부다, 그러니 이 정도라도 괜찮으시면 연락 달라고 말씀드리죠.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시는 분들은 건물도 낡았고 당분간 고칠 계획도 없으니 1, 2년 그냥 쓰고 계세요,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그러다 건물이 팔리면 다시 나오고 그래요." (김희진)

2010년에 시작해 8년째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조건은 좋은 편이다. 중앙동 일대 공동화 현상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공동화 현상이 본격화된 거는 1998년 부산시청 이전 이후부터예요. 그래도 여기는 사무실 밀집지역으로 기본 사무 인구가 있었거든요. 그랬는데 이제 3년 전에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문현 금융 단지로 이전(2013년)하면서 주요 은행 지점들이 싹 빠져나갔어요. 지금 지점 건물들이 다 호텔로 개조되고 있어요. 그리고 작년에는 한진해운 사태가 벌어지면서 세관 물류나 유통 관련 업체들이 싹 정리됐어요. 그래서 아직은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할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김희진)

시작부터 적극 채비한 광주

팔 길이 원칙과는 얼핏 반대 방향으로 처음부터 자치단체가 야무지게 채비를 하면서 시작한 곳도 있다. 광주 광산구 송정동 앞 '1913 송정역시장'이다. 요즘 광주에서 제일 핫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이곳이겠다. 몇 년 전까지는 초라하게 낡은 곳이었다. 그러다 현대차그룹이 광주시와 함께 출범한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대상으로 이 시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2016년 4월 '1913 송정역시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시장 리모델링을 하면서 중점을 둔 것은 시장 역사를 살리고, 청년·기존 상인 사이 조화를 이루는 일이다.

전통상인, 청년 상인, 행정기관이 잘 어우러져 순조롭게 시작한 광주 1913 송정역시장. /이서후 기자

"103년 역사를 강조하고자 이름을 '1913 송정역시장'으로 바꿨고, 누적된 시간이 많은 만큼, 송정역시장은 상인들에겐 삶의 터전이고 방문객들에겐 다양한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시장 골목 바닥에는 건물 연도가 쓰여 있으며, 이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건물의 완공 연도를 표시한 것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시장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 100년간 이곳을 지켜온 36개의 기존 상점들의 간판의 글씨, 가게 형태, 가게 색상 중 하나는 꼭 남겼다. 옛 정취를 살리자는 취지로 건물 자체의 리모델링은 최소화하고, 간판의 디자인은 상인들의 추억을 담아 제작됐다." (1913 송정역시장 홈페이지)

송정역시장은 무엇보다 거리 디자인이 특색있다. 특히 야경이 으뜸이다. 당연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 때문에 임대료가 들썩이자 광주 광산구가 나서 5년간 적정 임대료를 유지하는 상생협약을 했다. 특히 청년 상인이 입주한 건물은 상인회가 나서 2년 동안 임대료를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 상인들이 나서 대형 점포 입점을 막은 일도 있다.

"초창기에 개인이 하는 대형 빵집이 들어오려는 걸 막은 적이 있어요. 그리고 프랜차이즈나 대형 매점은 구청에서 허가를 안 내죠." (1913 송정역시장 내 카페 사장)

1913 송정역시장의 순조로운 출발은 '지키기 위한 변화'를 기조로 청년 상인, 전통상인, 행정기관이 잘 협력한 결과다.

[참고 문헌]

<젠트리피케이션>(김현아·서정렬, 커뮤니케이션북스, 2016)

논문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진단과 방향 정립>(류정아, 2015)

<또따또가 아카이브북>(원도심 창작공간 또따또가, 2015)

※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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