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하는 도시재생 가능한가] (2) 도시재생의 딜레마2
골목 품은 매력·싼 임대료 예술인 구도심에 터 잡아
활기 띠자 발길 이어져 문화 꽃피면서 상업화 시작
예술 퇴색·야시장만 성행 딜레마 빠진 광주 대인시장

우리 사회에서 도시재생은 대부분 문화와 예술을 매개로 한다. 문화·예술인들이 자생적으로 모여 재생이 이뤄진 지역도 있고, 자치단체가 이를 벤치마킹해 예술촌이나 예술특구 형식으로 조성한 곳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문화 예술일까.

예술가에게 매력적인 낡은 도심

도시재생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3년 이전에도 자생적으로 재생이 이뤄지던 곳이 있었다. 산뜻하고 반듯한 신도심이 아니라 후미지고 낡은 구도심이 배경이다. 가까이로는 통영 통피랑을 떠올리면 되겠다. 주로 오래된 것의 가치를 감각적으로 알아본 문화·예술인들이 주도한다. 이들에게는 낡은 풍경을 더욱 멋지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창의력과 감각이 뛰어난 일군의 문화적 행위자들이 한 장소에 자리 잡고 새로운 미학과 감정을 쏟아내 그 장소의 전반적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들이 쇠락한 기존 장소를 다시 살려내거나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낙후의 상징이었던 낡은 건물이나 구불구불한 골목길 등이 재발견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화적 행위자들의 새로운 감각, 서사,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현준·이기웅 2016)

대인예술시장 주차장에 철제 울타리가 설치되면서 벽화 작품을 가리고 있다.

가난한 문화·예술인에게 낡은 도심의 싼 임대료는 아주 매력적이다. 또 좁고 낡은 골목을 품은 오래된 도시 풍경은 미학적으로도 많은 영감을 준다. 삭막한 도심보다는 따뜻한 이웃이 많은 것도 이들이 낡은 도심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렇게 모여든 문화·예술인이 재창조한 낡은 도심은 다분히 도시적이면서도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이렇게 따뜻한 풍경이 상품이 되자 상업자본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문화·예술인들이 만든 창의적인 작업 공간은 이내 상업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낡은 도심은 상권으로 변신해 활기를 띠게 됐지만, 애초 따뜻한 풍경을 만든 문화·예술인들은 입지가 좁아지거나 결국 떠나간다. 마지막에는 이런 따뜻한 풍경마저 사라지면서 그저 그런 번화가가 되는 것이다. 자생적 도시재생의 딜레마다. 서울로 치면 홍대거리가 대표적일 것이다. 요즘 광주에서 '핫 플레이스'로 통하는 대인예술시장도 이런 딜레마에 빠진 듯하다.

예술시장인가 야시장인가

매주 토요일 광주시 동구 대인동 광주 대인예술시장에서는 '별장'이란 이름의 야시장이 열린다. 하루 저녁 유동인구가 1만 명이라고 한다. 상인들 표현으로는 지나다니지를 못할 정도로 사람이 많다. 토요일뿐이긴 하지만 광주 전통시장 중에서 이만큼 활기찬 곳도 없을 것이다. 쇠락하던 전통시장의 멋진 부활이라 할만하다.

1990년대 초반까지 대인시장은 광주 동구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이었다. 1990년대 중반 광주에도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침체가 시작됐다. 2005년 '재래시장 특별법'에 따라 아케이드와 주차장, 화장실을 새로 지었지만 이미 무너진 상권은 좀체 살아나지 않았다. 400개가 넘는 상가 중 절반이 셔터가 닫혔고, 빈 점포는 늘어만 갔다.

야시장에 쓰이던 예술마차가 매매 전단이 붙은 채 방치돼 있다.

당시 이 공간을 눈여겨본 지역 미술가들과 기획자들이 있었다. 저렴한 임대료, 낡은 시장 풍경은 대안공간을 만들기에 적당했다. 2008년 5월 '매개공간 미나리'가 대인시장에 문을 열었다. 그리고 미나리에 속한 기획자가 그해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를 맡으면서 대인시장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일명 '복덕방 프로젝트'다. 지역 예술가들은 빈 점포를 작업실로 쓰면서 대인시장 내 숨은 예술적인 부분을 재발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했다.

"당시 복덕방 프로젝트가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보다 더 이슈가 됐어요. 처음으로 외부전시를 진행하기도 했고, 장소나 소재나 사람들이 아주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었거든요. 원래 2008년 그해만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슈가 되니까 광주시에서 계획하고 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예산을 대인시장에 투입했어요." (대인예술시장 내 복합예술공간 지구발전 오라 김영희 대표)

그렇게 2009년부터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사업단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첫해는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이 대부분이었다. 2010년부터 지역 문화기획자들이 사업단을 맡으면서 성격이 조금씩 바뀐다. 예술가 지원을 줄이고 상인과 시민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대인시장을 대표하는 예술야시장이 시작된 시점이기도 하다. 반면에, 예술가들이 도구화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어떤 식으로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다.

2014년 사업단이 기획한 대인예술야시장 '별장'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방문자가 급증한다. 시장 빈 점포를 야시장 상인들이 차지하기 시작한 때다. 임대 수요가 느니 자연스레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했다. 시장은 어쨌거나 전성기를 떠올릴 만큼 활성화됐다. 하지만, 임대료 상승과 상업화로 기울어지는 야시장 분위기에 부담을 느낀 예술가는 대부분 대인시장을 떠났다.

"초창기에는 그래도 예술시장이었는데 예술이 사라졌어, 퇴색됐어요. 초창기에는 작가들도 많이 참여했고, 순수하게 갔는데, 갈수록 퇴색돼버렸어." (대인시장 내 예술가)

"처음에는 작가들이 야시장 때 나와 가지고 아트 상품을 만들어 팔고 했어요. 그러면서 야시장이 점점 커졌는데 이제는 그 작가들이 싹 빠지고 온통 먹을거리 쪽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대인시장은 사실 예술시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게 없는데도 계속 예술시장이라고 부르고 있네요." (김영희 대표)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참고 문헌]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신현준 등, 푸른숲, 2016)

논문 <광주 대인예술시장의 장소 인식 변화 분석>(김유경, 2017)

※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