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5·6호기 재개 인정해도 존중 못해
에너지 전환계획 뒷받침할 제도 제시를

까마득하다. 설계수명 만료를 기준으로 한반도에서 핵발전소가 멈추는 시점은 2082년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를 권고한 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선택을 인정하지만 존중하지는 못하겠다.

수조 원 때문에 짓던 걸 마무리해야 한다는 논리는 안타깝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손해 때문에 계속 짓는 게 낫다는 판단은 안타깝다. 우리 사회 인식 수준이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물욕에 안전문제가 밀렸다고 하면 너무 심한 말일까.

매몰비용이라는 것이 공중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을 위한 더 안전한 세상을 생각한다면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할 만큼 전기가 모자란 것도 아니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망만 한 것은 아니다. 희망도 보았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에너지 정책 전환은 모두의 관심사가 됐다. 일본 후쿠시마 핵참사를 지켜보고, 경주 대지진을 느끼며 조성된 핵발전소 안전문제에 대한 여론은 새 정부가 탈핵을 선택하도록 했다.

탈핵·탈석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정책 전환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이뤄져야 한다. 내가 쓰는 전기와 그에 따른 책임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 그 핵심이 에너지 민주주의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화 과정은 신선했다. 특히 공개된 여러 자료와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는 숙의민주주의는 앞으로 중요 정책결정과 갈등 해법에 적용되리라 본다.

과거 발전소를 짓고, 송전선로를 깔면서 국익과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반대 목소리를 깔아뭉개며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던 것에 비춰보면 진전한 것이다. 특히 세대 간, 이념 간 갈등이 심한 이 땅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특정 사안에 대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은 큰 성과다.

시민참여단도 놀라워했다. "부모와도 대화가 어려운데 전 연령대와 대화가 될까 하며 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도 생각도 많고 대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낮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토론을 하면서 잘못 생각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시민으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갈등을 푸는 방법은 대화여야 한다. 그 과정을 거쳐 도출한 사회적 합의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함부로 역행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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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24일 탈핵 로드맵을 발표한다. 정부는 밀양 송전탑 사태처럼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무너뜨린 잘못에 대해 공식사과를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노후 원전 폐쇄 같은 실질적인 조치뿐만 아니라 에너지 전환 계획과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길 바란다. 중앙집중식이 아닌 에너지 분권을 위한 방향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묵은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결과에 따르라는 식의 공론화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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