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가 쓴 책을 읽다가 "한국 사람은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글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즐거워서 웃는 웃음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 속성을 어쩌면 이리도 족집게처럼 집어내어 이야기하는가 싶어 그것이 신기해서다. 그분의 많은 것은 책을 통해 알 수 있겠지만, 한국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우리 문화와 자연, 그 안에서 태어나 숨 쉬는 우리를 깊이 사랑하는 큰 학자의 말이라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가진 이웃과의 경쟁에서 생기는 마음이니 꼭 나쁘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허전하고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쩌지 못한다.

말의 본뜻에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픈 것을 두고 하는 말도 될 것이다. 사촌이 논을 사는데 왜 배가 아플까. 사람들은 자기 몸담고 사는 사회에서 남과 비교하는 것에 단순한 원칙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예컨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남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고소해 하고 직접 자기 이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모른 체하며 추상적인 담론에만 몰두하는 것도 한국인의 모습 아닌가. 그래도 나는 남이 내 가족 흉보는 말 듣기 싫은 것처럼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을 비하하거나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은 더 기분 나쁘다.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한국인 스스로가 자기비하에 빠져 기를 못 펴고 줏대 없는 사람처럼 제 무게를 갖지 못하는 모습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가르치고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이것은 백 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을 진리다. 비록 다른 이가 우리를 못났다 하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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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랜 세월 배고픔을 견뎌내고 세계가 놀라는 번영을 이룩한 민족이다. 이제 좁은 울타리는 벗어났지만 한 번 더 뛰어나가 큰 세상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제는 다른 나라가 논을 사면 배 아픈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일본이 논을 사면' 배 아파 잠 못 자는 우리였으면 더 좋겠다. '금수강산'이란 말처럼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산천이 우리나라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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