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 위에 이룬 언론자유는 허상
세상 조금이라도 바꿀 파업 돼야

예전 나의 직업은 방송작가였다. 4년 동안 'MBC 경남' 작가로 일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배웠다.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취재 현장에서 '방송사 로고를 가려야 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 정도로 MBC는 망가졌다.

낙하산 인사의 명령에 불복하면 징계가 내려지고, 편파적인 보도를 내보내야 했던 굴욕의 시간. 끝내 MBC는 국민의 외면을 받기에 이르렀다.

정권의 나팔수가 된 방송사는 공익보다 사익을 내세웠다. 우리가 열광했던 질 좋은 다큐멘터리는 보기 힘들어졌고, 정부 정책과 반하는 기획은 말을 뱉음과 함께 사라졌다.

2012년, 방송 3사는 대대적인 파업을 시작했다. 동료들은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고 남은 것은 계약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나 또한 파업을 지지했지만, 저들의 열망과는 온도 차가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본능적으로 생계가 걱정스러웠다. 나는 20분 분량의 구성물을 쓰고 편당 30만∼40만 원의 원고료를 받았다. 어느 날 연봉을 계산해보니 1200만 원이 안 됐다. 그만큼 탈락이 잦아서다. 방송작가는 프로그램이 노출되어야 임금을 받는다. 아무리 기획 회의를 하고 사전 취재를 해도 '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겉으론 '파이팅!'을 외쳐도 속마음은 파업이 장기화되지 않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방송작가는 프리랜서다. 계약서가 없다. 구두 계약으로 일을 시작하고, 일 년에 두 번 있는 개편마다 설 자리를 심판받는다. 어느 날, 맡고 있던 프로그램이 갑자기 없어진다는 통보를 받았다. 부장에게 찾아가 따졌다. 그때, 선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참지." 그 말에는 '그러다 잘리면 어쩌려고'라는 걱정이 숨어 있었다.

프리랜서란 당장 사라져도 별일 없는, 쉽게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방송국을 나간 후, SBS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저임금, 고노동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이유로 지목됐다. 남 일 같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겨도 그뿐.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2012년 파업이 실패로 돌아가고 많은 언론인이 쫓겨나거나 유배당했다. 그 빈자리를 계약직 노동자들이 채웠다. 자연히 구성원들 사이에 균열이 커졌다. 부역자들의 바람대로다. 동료를 철저히 타자화해서 내부적으로 와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경영난을 이유로 프리랜서들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TV에서 인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수많은 얼굴이 떠올랐다. 공영방송이 다시 국민의 진정한 눈과 귀가 되고 싶다면 현 방송 시스템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오랜 시간 굳어진 계약직과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처참한 작업 환경을 외면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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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착취 위에 만들어진 언론의 자유는 허상이다. 언론을 바로 세우겠다는 대의 아래 묻힌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언론의 정상화'가 '구조의 정상화'를 뜻하는 것이라면 더욱 말이다.

돌아오라, 마봉춘(MBC), 고봉순(KBS)! 하지만, 또다시 같은 곳에 돌아와선 안 된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말했듯이 이번 파업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번 파업이 당신들의 동료에게도 떳떳한 투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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