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간 관광사업 유치경쟁 공멸 우려
불안 지우려면 중복·과잉 경쟁 조정돼야

놀이터 한쪽에 아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모래를 긁어모아 뾰족한 산을 만든다. 그 꼭대기에 막대기를 꽂는다. 곧은 나뭇가지나 주운 나무젓가락, 아이스크림 막대 따위다. 가위바위보로 정한 순서대로, 또는 한 방향으로 돌아가며 모래를 원하는 양만큼 자기 앞으로 덜어온다. 막대를 넘어뜨리면 술래가 된다. 너무 오래 술래가 정해지지 않으면 덜어온 모래가 가장 적은 사람이 지는 놀이다.

어떤 때는 가장 먼저 나서서 한가득 모래를 움켜쥐던 친구가 술래가 됐다. 너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린 탓이다. 어떤 때는 모래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가장자리 모래를 손가락으로 살금살금 긁어내던 친구가 술래가 됐다. 위쪽 모래가 아래로 스르르 흘러내려 결국 막대가 넘어졌기 때문이다. 모래 총량은 한정되어 있고 막대가 언제 넘어질지, 누가 이기고 질지 모르는 놀이. 아슬아슬해서 긴장됐다.

자치단체 사이에 벌어지는 각종 관광사업 추진·유치 경쟁을 볼 때면 그 모래성 게임이 떠오른다. 2008년 운행을 시작한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가 전국 관광객을 끌어모으면서 인기를 끌자 밀양 얼음골케이블카, 사천 바다케이블카 사업이 잇따라 추진됐다. 하지만 전국 20여 개에 이르는 케이블카 중 수익을 내는 곳은 극소수다.

최근 지자체는 집라인으로 눈을 돌린 모양이다. 2011년 사천 남일대해수욕장에 소규모 집라인이 생긴 후 거제, 하동에서 연이어 설치했고 창원시도 내년 초 운영을 목표로 진해에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뿐만 아니다. 통영 루지에 관광객 관심이 쏠리자 인근 양산과 부산에서도 사업에 뛰어들었다.

너도나도 각각의 특징을 앞세워 '최초' '최대 규모'라고 자랑한다. 비슷한 일을 벌이는 지자체가 많아질수록 경쟁은 더 뜨거워진다. '타 지자체보다 먼저' '훨씬 더 거대하게' 사업을 벌이는 데 치중하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그 와중에 서로 비난하거나 에둘러 '우려 제기'를 하며 라이벌을 견제하는 작업도 한다.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양산시는 지난달 말 경남생활체육대축전이 끝나자마자 그 경험을 바탕으로 2022년 전국체육대회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직후 2022년 전국체육대회 유치 신청이 이미 마감기한을 넘겼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유치연도를 2023년으로 수정했다. 그러면서 '다소 급하게' 유치결정을 하다 보니 빚어진 업무 혼선 탓이라고 해명했다. 이틀 뒤에는 김해시가 이런 보도자료를 냈다. "우리 시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공을 들여왔는데 양산시가 뒤늦게 다소 엉뚱하게 유치전에 뛰어든 상황"이라고. '급하게' 라이벌이 된 이웃, 경쟁의 첫발은 다소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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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직후 한경호 도지사 권한대행이 상생 논의 없는 중복·과잉경쟁을 지적하며 실·국장 회의에서 경남도의 적극적인 조정 역할을 주문했다. 부디,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기우가 되는 경쟁을 하길. 아이들은 모래알을 쥐고도 웃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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