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 된 문화·예술 도시의 일상
속으로 곪아가는 수산·조선업 기반

#살아계실 때 고향 통영 사람이 찾아오면 "아이구, 우리 토영 까마구 왔나?"하고 반겼다는 박경리 선생. 선생의 출생지인 통영 명정동 노인회관 벽면에는 '박경리학교 작품전'이라는 제목 밑에 여러 시편들이 각각 다른 표정으로 "내 시 한번 읽어보라"고 재촉한다.

3년 전 '한글학교' 졸업 작품들을 벽면에 그렸다. 그중 '강냉이'라는 시다. "내 별명은 강냉이/ 젊어서 먹고 살 길 막막해서/시작했던 일/ 섬마다 강냉이 튀박하러/ 다니며 살아낸 아픈 세월/ 사람들은 진짜/ 나를 부를 때 이름 대신/ 강냉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 이름/ 들을 때마다 아프다/ 진짜로"

#인근 도천동 윤이상기념관 광장에는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논다. 예전에는 골목에서 아이들이 그렇게 놀았는데, 죄다 아파트로 옮겨버린 요즘에는 학교 운동장에서나 간혹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머시마' '가시나' 할 것 없이 "까르르르" 뛰어놀던 아이들이 10분이 지났을까, 한순간 어느 공간으로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갔다. 따라갔더니 합창 연습실이다.

통영시립소녀소녀합창단원인 이들은 뛰어놀다 발그레 상기된 얼굴 그대로 곧 있을 통영음악제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동작 연습을 위해 일어난 아이들 틈 사이로 악보가 보였다. '심청가 중 ○○○', '아름다운 나라' 등. 수준이 장난 아니다.

#새미골 고개 너머 문화동 세병관. 1604년 이순신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져 조선의 해군본부인 '삼도수군통제사영' 건물로 쓰인 곳이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장방형 평면 마루에서 아이들이 장난을 친다.

팔베개를 하고 누운 연인도 있고, 이제 곧 시작될 '국가무형문화재 21호 승전무' 시연을 우람한 기둥에 기대어 물끄러미 바라보는 노부부도 있다. 문화와 예술이 자연스레 생활에 스며든 듯했다.

#도남동 통영케이블카로 가는 택시 기사. "통영서 택시기사만 27년 했는데 올해처럼 어려울 때가 없어요. IMF 때도 끄떡없었는데…. 통영 조선소들 다 문닫는 바람에 사람들 다 빠져나갔어요. 한때는 15만 명 넘었는데, 지금은 13만 명 되까? 대형조선소야 정부가 세금이라도 투입하지만, 중소형은 그런 것도 없어. 관광요? 혜택보는 건 통영사람들 15%요. 85%는 오히려 피해만 봐요. 관광객들 때문에 물가 비싸지, 차 막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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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읍 삼덕항 가는 택시 기사. "어렵지예. 조선업 하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갔으니까. 중국에는 이미 갈 사람 다 갔고, 지금은 동남아로 간다 카데. 통영이 수산업하고 조선업으로 묵고 살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정이 다르지예. (거제해양플랜트국가산단을 꺼내자)미친 짓이지예. 안 그래도 조선소들 다 문 닫으면서 천지로 남아도는 게 공단인데, 그걸 또 만들어예? 지금처럼 저유가로는 해양플랜트도 답 없습미더." "그라모 우째야 됩니꺼?" "뭘 우째요, 잘 해야지! 정치가들은, 그랄라꼬 뽑아난 거 아임미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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