돝섬·용지호수·장복산 등
곳곳에 작품 100여 점 설치
관리 주체 제각각·활용 미미
시민 정보 수집 쉽지 않아
조각비엔날레-관광 연계 등
열린 예술 공간 장점 살려야

'창원은 조각도시다'라고 정의를 내려보자.

한국 현대 추상조각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김종영(1915~1982), 추상조각의 거장 문신(1923~1995)의 고향이자 세계적인 조각가로 활동하는 박종배, 박석원, 김영원 등이 창원 출신이다.

연고만 따지는 게 아니다. 창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조각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도시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옛 마산이 고향인 조각가 문신을 알리는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으로 출발해 2012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미술제로 자리 잡았다. 지금껏 세 번의 비엔날레를 거치면서 창원 돝섬해상유원지와 용지호수공원에 다양한 조각품이 설치됐다. 창원시립마산조각공원, 진해 장복산 조각공원 등 조각을 주제로 조성된 시민 휴식공간도 있다.

창원 용지호수공원에 설치한 이탈리아 밈모 팔라디노의 '말'. /경남도민일보 DB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제대로 알고 즐기고 있을까? 도시에 산재한 조각품을 공공미술로 잘 활용하면 '문화예술특별시'를 선포한 창원의 대표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곳곳에 뿌리 내린 조각품을 보며 다양한 물음을 품어왔다.

그래서 공공미술에 대한 취재를 시작했다.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를 들여다보고 공공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서울에서 삶에 스며든 공동체 예술을 만났다.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말하는 핀란드 헬싱키로 날아가 모든 미술품이 시민의 소유라는 철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물었다. 창원을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만드는 여정을 시작했다.

◇조각 작품 100개 어디에?

지난달 23일 창원 돝섬해상유원지(이하 돝섬)와 창원연안크루즈터미널을 오가는 배가 모처럼 분주했다. 돝섬 잔디광장에서 '2017 뮤직 인 창원'이 열리는 날, 3600여 명이 찾았다.

"어디에…."

창원 용지호수공원 잔디밭에 있는 이 작품은 이경호 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돝섬을 산책하는 시민 대다수가 당황해했다. 음악 축제에서 조각품을 묻는 말을 듣고서 갸우뚱했다. '창원조각비엔날레'로 영구설치된 작품임을 설명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돝섬 해안길·숲속길 3.2㎞에 세워진 조각 24점.

창원시는 2011년 돝섬을 친환경 해상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려고 위락시설을 철거하고 '2012창원조각비엔날레' 조각 20점을 설치했다. 만지면 소리가 나는 정현 작가의 '소리의 숲', 빨간색에 압도당하는 제임스 앵거스 작가의 '파이프라인의 확장' 등이 세워졌다.

'2014창원조각비엔날레' 때는 유원지 시절 건축했던 크고 작은 시설물을 추가로 지었다.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린 흔적이 보이는 불상은 조전환 작가의 '월인각'이고 나무로 만들어진 쉼터는 천대광 작가의 '마음자리'다.

돝섬에서 만난 박은진(38·창원시 의창구) 씨는 "입구에 내걸린 종합안내도에서 조각품 지도를 봤지만 일일이 찾아보지 않았다. 산책하다 우연히 만나면 설명을 읽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아주 짧아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창원조각비엔날레 덕에 시민 품에 안긴 조각품이지만, 시민은 관련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다.

돝섬 입구 종합안내도에는 작품 위치와 사진, 작품명, 작가명 등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다른 창구를 활용해도 더 많은 이야기가 없다. 창원조각비엔날레 홈페이지(http://changwonbiennale.or.kr), 돝섬 홈페이지(https://dotseom.kr)도 마찬가지다. 창원시 홈페이지에서는 관련 자료를 찾기 더 어렵다.

돝섬에서 볼 수 있는 안병철 작 '생명 - 영'.

하지만 창원시는 '명품 조각공원'이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는다.

최근 시가 낸 용지호수에 대한 홍보문을 보면 '2016창원조각비엔날레'에 출품된 17점의 작품을 용지호수에 영구 설치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용지호수공원 잔디밭에는 김영원 작가의 '그림자의 그림자(홀로서다2)', 이일호 작가의 '사랑으로-둥지', 한진섭 '행복하여라' 등이 세워져 있다. 또 진해 장복산 조각공원(조각의 숲)에는 박석원 작가의 '적의' 등 24점, 창원시립마산조각공원에는 조의현 작가의 '자연과 인간' 등 18점이 있다.

잘 알려진 문신미술관과 추산 야외조각 미술관에서도 문신 선생의 작품뿐만 아니라 '2010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에 참여한 국내외 조각가 10명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창원시가 공식적으로 '조각 공원'으로 분류한 곳에만 100점에 가까운 작품이 있는 것이다.

◇"캐지 않은 보물이다"

여기에 더할 게 있다. 마산합포구청, 진해구청 등 여러 행정기관 앞에 세워진 조각품과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관리하는 작품도 창원시에서 만날 수 있는 미술품이다. 도시 곳곳이 조형예술로 넘쳐난다.

과연 우리는 시민의 것이라고 여기고 있을까? 어쩌면 방치된 공공미술이 아닐까? 해마다 4000만 명이 다녀간다는 일본 롯폰기힐스의 거미 조형물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마망'처럼 도시의 대표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창원시 관광문화국 관계자는 "창원조각비엔날레 작품은 창원문화재단이, 조각공원은 소재한 지역의 구청이, 경남도청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경남도립미술관이 관리하고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한눈에 볼 수 있는 홈페이지도 없다"고 말했다.

창원시가 보유한 조각품은 기념 조형물이든 미술 장식품이든 구분을 넘어 그 어느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자산이지만, 이의 활용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김영원 작 '그림자의 그림자(홀로서다2)'.

'2016창원조각비엔날레'에 대한 정책과제를 제안한 김기영·한명주 창원시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창원조각비엔날레와 창원 관광 연계를 통한 시너지 극대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공공과 미술을 엮어보자.

그동안 공공미술은 관객 없는 미술작품으로 인식됐다. 김장언 미술평론가는 "공공장소 속의 미술은 껌딱지 조각, 풍덩 예술로 희화화되며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했다. 판에 박힌 조각과 벽화가 많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풀 수 있다. 그는 "미술관이라는 문턱 높은 공간에서 벗어나 열린 곳에서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그 가치는 폄하될 수 없다"고 했다.

마산합포구청 앞에서 볼 수 있는 문신 작품.

<공공미술,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에서 구본호 미술평론가는 "공공미술은 시각 환경을 풍요롭게 한다. 장소를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만든다. 또 일반 대중이 미술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공동체를 통합하고 정체성을 강화해준다. 공공의 새롭고 다양한 가치를 이슈를 창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창원시는 김종영 미술관 건립을 시작했다. 또 내년 가을에 열릴 '2018창원조각비엔날레' 협의체를 구성해 감독을 선정하고 콘셉트를 짜고 있다.

김미정 예술을담는협동조합 대표는 "어쩌면 이보다 먼저 할 일은 거리에 넘쳐나는 조각품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하나로 도시 전체가 거대한 미술관이 될 수 있다. 더 이상의 큰 예산도 필요 없다"고 제언했다.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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