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지음
드디어 서울 닿은 '25년간 걸음'
조선 왕조 대표하는 종묘
궁궐 건축 배경·건물 역할
숨겨진 가치·이야기 '조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993년 1권이 '남도답사 일번지'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책이 나올 당시에는 알지 못했고 1995년 재수를 하면서 창원의창도서관을 들락거리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책이 나올 때마다 한두 권씩 구입해 읽던 것이 일본 편 네 권 포함해서 열네 권째다. 6권을 읽고 다음날 새벽에 아내와 선암사로 달린 기억이 있고 제주도를 자주 갈 즈음 7권 제주편이 출간되어 더 반가웠다. 책만 읽던 독자에서 여행 가면서 책을 챙겨가는 답사객으로 자연스레 변신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1-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드디어 서울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필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유산 답사기 측면에서 살펴보면 신라의 수도 경주, 백제의 수도 부여, 하물며 고려와 고구려의 수도까지 아울렀는데, 현재와 가장 가까운 왕조인 조선의 수도 서울편이 25년 만에 출간되었다는 것은 한참을 둘러온 느낌이다.

지난 5월 7일 서울시 종로구 종묘에서 봉행된 종묘제례에서 제관들이 제사를 봉행하기 위한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자 유홍준은 말한다.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고. 조선시대 궁궐 중 중심이 되는 경복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별궁인 창덕궁, 성종 14년에 정희왕후· 소혜왕후·안순왕후를 위해 지은 창경궁 등등. 한 도시에 이렇게 많은 궁궐이 있는 것도 드물다고.

그러나 책의 시작은 '종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묘사직'의 그 '종묘'다. 조선 시대 역대 왕들의 신주를 모신 곳이고 왕가의 사당이다. 좌우로 뻗는 목조 건물이 100m가 넘는다. 일본 건축계의 거장 시라이 세이이치가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라고 극찬을 했다. 종묘를 더 종묘답게 만드는 것은 종묘제례이다. 종묘제례가 재현되면서 1971년 일반에게 공개되었고 우리가 종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도 종묘 관련 이야기다.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건축가 중 한 명인 프랭크 게리가 종묘를 보기 위해 가족을 대동하고 한국을 찾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조용하게 종묘를 살펴보기 위해 사람없는 시간을 택했다. 게리는 가족들에게 "이번 여행에서 다른 일정은 다 빠져도 좋은데 종묘 참관만은 반드시 우리 가족 모두 참석했으면 한다"고 당부했을 정도란다. 가장 파격적인 건축을 하는 현대건축가에게 가장 정적인 동양 건축물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궁금하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같은 궁궐의 이름은 너무 익숙하다. 그러나 경복궁을 제외하면 어떤 이유로 지어졌는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 내부의 수많은 건물의 역할은 무엇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알지 못했는데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답사를 따라 간 것처럼 술술 이해가 된다. 글발 말발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저자의 글은 곧 음성으로 전달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미덕이 아닐까?

1993년 첫 책 출간 후 25년이 흘렀고 책은 390만 부 이상 팔렸다. 아직 서울편 두 권, 섬이야기, 그 외 다루지 못한 국내 여러 곳이 기다리고 있고 중국 답사기도 남아 있다. 저자가 삶의 충고로 생각하는 격언이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아프리카인의 진득한 마음자세다. 25년을 꾸준히 달려온 힘은 1권부터 함께 달려온 '고참 독자'들의 몫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과한 욕심일지 모르나 고참 독자들은 앞으로 25년을 더 기대해본다.

420쪽, 창비, 1만 8500원.

/이정수(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