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품에 쏙 들어온 바다
관광객·원주민 뒤섞인 곳
중앙시장 생명력·자유넘쳐
동피랑서 바라본 풍경 일품

통영 강구안은 바다가 육지로 들어간 항구다. 문득, 시인 김광규의 시 '밤눈' 어느 구절이 떠오른다.

'눈이 내려도/바람이 불어도/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서로의 바깥이 되고 싶었다'

바다와 육지가 서로 껴안은 풍경에는 사람이 있다. 관광객과 원주민이 뒤섞여 생동감 넘치는 곳이 바로 강구안이다.

▲ 동피랑에서 바라본 강구안. / 최환석 기자

인파가 쏠린 좁은 인도를 따라 충무김밥이니, 꿀빵이니 온갖 먹을거리가 쏟아진다. 꿀빵은 밀가루 반죽에 팥소를 넣어 튀긴다. 겉에는 물엿과 통깨를 발라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최근에는 팥소 이외에 호박, 자색고구마, 심지어는 크림치즈도 넣는다. 상점마다 지나는 객을 붙잡아 꿀빵 한 조각씩 나눠준다. 통영 옛 이름을 붙인 충무김밥은 김밥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는다. 성인 남성 엄지손가락 크기로 밥을 싼 김에, 섞박지와 오징어무침을 곁들인다.

종이에 둘둘 말아 툭 던져주는 단순함이 오히려 멋스럽다. 여러 유래가 있는데, 상하기 쉬운 탓에 밥과 반찬을 분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게마다 '원조'를 강조하고, 방송 탄 화면을 갈무리해서 내세우지만, 어느 곳을 가도 기본은 한다.

아무래도 충무김밥은 밥집에 앉아서 먹기보다 포장해서 볕 좋고 풍경 좋은 곳에 자리 잡고 먹는 맛이다.

세상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공간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쉬이 답하기 어렵다. 시장이 빠지면 섭섭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있다.

▲ 동피랑 꼭대기에 있는 동포루. / 최환석 기자

하늘에서 내려다본 강구안이 마름모꼴에 가깝다고 치면, 통영중앙시장은 최상단 꼭짓점을 장식한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생명력이 펄떡인다. 좌우로 줄지은 상점과 길 가운데를 가득 채운 좌판에는 힘찬 몸짓의 생선으로 가득하다.

좌판 상인에게 오늘은 무엇이 좋으냐고 묻자, 빨간 대야에서 '능성어'를 꺼내 든다. 팔뚝만 한 능성어는 회갈색 바탕에 갈색 무늬가 나있다. 연안이나 심해 바위가 많은 곳에 살며 산란기는 5~9월께다.

보통 부르는 게 값이라는 다금바리 짝퉁으로 여기는데, 능성어는 그저 능성어다. 비싼 다금바리 대체가 아니라 본연의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중앙시장 뒤편 언덕으로 향한다. 동피랑이다. '동쪽 벼랑'이라는 뜻의 동피랑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오른다.

지금은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원래는 철거 예정지였다. 시는 마을을 철거하고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 동포루를 복원할 계획이었다.

▲ 동피랑에서 만난 벽화. / 최환석 기자

2007년 시민단체 '푸른통영21'이 대안을 제시했다. 골목 곳곳에 그려넣은 벽화는 새로운 숨통이었다. 소문을 타고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어느새 통영을 방문하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시는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마을 꼭대기 집 몇 채만 철거하고 보존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을 주민의 터전은 그렇게 지켜졌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벽화로 유명하지만, 내려다보는 강구안 풍경을 일품으로 꼽겠다. 통영의 바다는 잔잔하기 이를 데 없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닷빛은 맑고 푸르다. 남해안 일대에 있어서 남해도와 쌍벽인 큰 섬 거제도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현해탄의 거센 파도가 우회하므로 항만은 잔잔하고 사철은 온화하여 매우 살기 좋은 곳이다."

박경리 소설 <김약국의 딸들> 한 대목에 동의하는 바다.

이날 걸은 거리 1.3㎞. 2154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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