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처가' 호칭 차별 남존여비서 비롯
시대·생각 달라진만큼 언어도 달라져야

긴 연휴의 마지막은 한글날이었다. 예전에는 한글날이 되면 성차별적인 단어를 선정하고 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언젠가 선정된 단어 중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는 단어가 있다. '미망인'이라는 단어이다. '미망인'이라는 단어는 보통 남편을 먼저 보낸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이 단어를 검색해보면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단어에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이고 가부장적인 의미가 내재하여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명백히 차별적인 단어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결혼을 하니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들이 불편해진다. 그중 '도련님'이라는 단어가 유독 그러하다. 남편의 가족들을 존중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나를 너무 낮추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다. 그나마 남편에게 여동생이 없어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 대상이 없다는 것으로 위로했고 '도련님'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 '서방님'으로 부르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되도록 호칭을 부르지 않고 이야기하는 쪽으로 내 불편함을 감소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은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아가씨'와 '서방님'이란 호칭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했던 것과 달리 누군가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호칭 변경을 청원했다. 지난 9월 7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성이 결혼 후 불러야 하는 호칭 개선을 청원합니다'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1만6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한 상태이며 12월 6일까지 지속한다고 하니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시댁 식구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은 아주버님,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등 대부분 '님' 자가 들어가거나 존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반면, 남성이 처가 식구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은 장인, 장모, 처형, 처남, 처제 등 '님' 자가 들어가지 않거나 존대의 의미가 없다.

'시댁'과 '처가'라는 용어에서 이미 차별성은 드러난다. 시댁의 '댁'은 남의 집이나 가정을 높여 이르는 말이지만 처가의 '가'는 호적에 들어 있는 친족 집단을 이르는 말로 높임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 결혼한 여성이 남편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아가씨'와 '도련님'은 과거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호칭이며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올케'는 '오라비의 계집'에서 유래한 호칭이라고 하니 '도련님'이나 '아가씨'란 단어가 불편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해왔던 호칭에는 가부장적 문화가 고스란히 내재하여 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는 과거 남존여비사상하에 만들어진 어휘로,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보아 여성에겐 손아랫사람인 남편의 동생조차도 윗사람처럼 부르게 했던 것이라고 한다. 청원인은 "2017년을 사는 지금 성 평등에도 어긋나며 여성의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호칭"이라며 개선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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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면 언어 또한 변하기 마련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의 호칭 변경에 대한 논의가 반가운 것은 그래서이다. 차별적인 용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불편함을 감수하기보다는 불편하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언어는 달라질 것이다. 변화를 기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청원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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