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은 571돌을 맞이한 한글날이었다. 한글날이 되면 훈민정음의 탁월함을 떠올리면서 한글을 원형질로 보존하면서 가꾸는 일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순수 한글 표현이나 우리말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강조되다 보니 이런 주장이 나올 수도 있지만 정작 언어는 시대와 발맞추어 바뀌어 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되었던 당시의 글이나 말 중에서 이미 사라져버린 단어나 표현법이 부지기수이며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독해도 쉽지 않은 경우도 많다. 즉, 언어는 한 시대를 표현하면서 그 시대의 사고방식까지 보여 주는 탁월한 도구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생명만 유한한 것이 아니라 언어 역시 시대와 환경에 따라 생사를 하는 존재이다. 물론 언어적 표현은 인간의 생명주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긴 생명력을 가지기도 한다.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온 언어적 표현은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크게 영향을 끼치면서 공동체의 결속과 통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언어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이 바로 권력의 원천이다. 지금 어디서나 강조되는 소통이 지닌 숨겨진 의미는 바로 권력과 권위형성의 언어가 필수요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상대방들이 상호 존중하는 걸 기대하는 건 어렵다. 물론 특정 집단의 언어적 행위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앞으로 어떻게 발휘될지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즉, 현재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한글 단축이나 변형의 현상이 한 시대의 반짝하는 유행으로 될지 아니면 특정 집단의 비속어로 될지는 시간을 두고 보아야 한다.

언어의 사회적 변용에 대하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는 언어를 통하여 인지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과거 왕조시대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또한, 같은 단어라고 하더라도 행위의 구성방식과 내용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즉, 시대에 따라 부부관계의 방식과 내용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한글의 변화에 주목해보면 세상은 정말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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