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폭탄 트럼프 말폭탄 위기 고조
평화는 의지 아닌 실천…전쟁은 안될 일

인제야 몸서리쳤다. 북핵 도발과 김정은 사진이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해도 그러려니 했다. 안보 불감증이 맞다. 한반도에 전쟁이라니 설마…. 안보 위기를 부채질해서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 또 오버하는구나 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았지만 분단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40여 년 동안 안보 불안은 내성화됐다. 내성이 생겨 약발이 떨어진 것처럼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긴 추석연휴 기간 들어본 지역 민심도 전쟁 위기보다 먹고사는 불안이 더 커 보였다.

연휴 막바지에 친구 권유로 소설가 한강이 쓴 기고문을 읽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의 제목은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였다. 한 작가는 "지난 60년간 특유의 상황(휴전)이 지속하면서 한국인은 무심함과 긴장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모순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졌다"고 진단했다. 세계가 북한을 두렵게 보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게 신기하다는 외신 보도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불안과 공포는 우리 내부 깊숙이 축적돼왔고, 이 같은 불안은 매일 뉴스를 접할 때마다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에 대한 충고는 짜릿했다. 그래 맞다. 전쟁은 미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한반도에서 일어난다. 김정은은 핵폭탄으로, 트럼프는 말폭탄으로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다. '승리'와 '성과'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지라도, 전쟁은 세계 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 지도자가 함부로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니다.

기고를 읽으며 자가진단을 해본다. 결론은 안보 불감증 중증. 평상심과는 달랐다. 막연했던 걱정과 불안감이 몰려들었다. 정말 전쟁이 날 수도 있나? 전쟁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정부가 외교를 제대로 하고 있나? 머리 맞대 대책을 세워도 모자랄 판에 당리당략이나 따지는 정치권은 대체 뭐하자는 거야? 의문이 꼬리를 물며 절로 몸서리쳐졌다.

청와대는 이 기고문을 8일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대북 문제에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한 정부로서는 반가운 글이었을 테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두고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어쩔 수 없이 믿고 싶어지는 현실이다. 한 작가는 "평화가 아닌 다른 해법은 무의미하며 승리라는 단어는 공허하고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겨울 평화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희망하고 그것을 이뤄낸 한국인들에게 평화가 아닌 다른 시나리오는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이미 깨어난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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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고문에 대한 NYT 독자들의 댓글을 소개한 기사에서 '현실 안주'라는 지적이 눈에 띄었다. 평화는 의지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이뤄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모순된 분단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작가는 기고를 통해 평화를 실천한 셈이다. 전쟁은 인류가 피해야 할 최악의 시나리오다. 한글날이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인으로서 세계인들을 향해 외쳐본다. NO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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