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11화) 서평 <인생수업>
피하고 싶을 땐 되레 직면하라 세상에 최악의 일이란 없으니
마음이 더 이상 괴롭지 않다면 이제껏 고통이 허상임을 느끼리

36년을 살면서 창원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 가는 것이 무서웠다. 비행기도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갈 때 용기 내어 딱 한 번 타봤다. 친구들도 나를 데리고 멀리 놀러 가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심각한 공황장애였다.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슬펐던 게 아니라 무서웠다. 그녀에게 "네 말 이해했으니까 제발 헤어지자는 그 단어만 뱉지 마라"고 애걸했다. 그 단어는 내게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절대 안 되는 것'이 유난히 많았다.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상황, 안전한 시나리오에서 벗어날 때 나는 마비가 될 정도로 몸을 떨었다.

법륜 스님의 책 <인생수업>을 읽고 나서 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이 세상에 절대 안 되는 것들이 그렇게 많았었는데, 스님은 웬만한 일은 다 괜찮단다. 정말 두렵고, 피하고 싶었던 일들을 더 적극적으로 하라고 했다. 예컨대 책 속에서 누군가 '연인과 궁합이 안 좋다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질문하면 스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만약 궁합이 안 좋아서 너희가 결혼하고 일주일 뒤에 남편이 죽는다고 치자.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일주일이라도 살아봤다는 게 좋은 일이잖아. 나쁠 건 없어.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말도 한마디 못 해본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 심지어 돈을 갚지 않는 사람에게는 찾아가서 돈을 더 보태주라고 하셨다.

법륜 지음 <인생수업>

책에서 이런 말들을 계속 읽는데 어떤 카타르시스가 몰려왔다. 나는 최악의 일을 피하는 데만 온 시간과 힘을 다 쏟아 부었는데, 스님은 최악의 일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고 세상엔 감사한 일뿐이라고 하신다. 내가 지금껏 나를 혹사하면서까지 금지한 것들이 그 정도 배척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었을까?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역설의도' 기법으로 자신의 환자들을 치료했다. 손에 다한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손에서 땀을 내어보라'고 다독였고, 말을 더듬는 사람에게는 말을 더 심하게 더듬어보라고 지시했고, 긴장을 해 글씨를 삐뚤삐뚤 적는 사람에게는 글씨를 최대한 삐딱하게 써보라고 지시했고, 불면증이 있는 사람에겐 아예 밤을 새우라고 숙제를 내줬다. 환자들은 빅터 프랭클이 내준 숙제를 완수하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열심히 숙제를 하면 할수록 그들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증상이 호전됐다.

엉뚱하게 보이는 이 치료법은 왜 성공했을까? 사람들이 보이는 이상 증상에는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다. 어떤 고통을 두려워하고 피하면서 최대한 힘들어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워야지만 자신 주변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환경도 고치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무의식 한편에서는 고통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우리는 나쁜 일, 불안한 증상을 피하고 두려워해야지만 고통을 느낀다. 만약 우리가 그 증상을 오히려 더 바라고, 증상이 악화하기를 원한다면(그것이 진심이 아니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이 고통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고통이 되지 않는 공황, 우울증, 다한증, 말더듬, 불면증 등은 시시하고 별로 재미가 없다. 그래서 역설의도 기법을 사용하면 그 증상들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저항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걱정, 죽음조차도 나를 전혀 괴롭히지 않는다. 그때 나는 확실히 마음의 고통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을 읽은 후에 나는 가슴에 용량 큰 폐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았다. 답답하던 숨이 탁 트였다. 어떤 일도 피하지 않으니깐 두려움도 사라졌다. 조금은 더 자유로워졌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276쪽, 휴, 2013, 1만 3000원.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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