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에 담긴 정성과 정석

대기업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남자, 서울 유명 백화점에서 의류매장 매니저를 했던 여자가 돼지국밥 한 그릇에 인생을 걸었다. 김현주·김건희(47) 부부가 고향 마산에 '돈대박 돼지국밥 24'을 내고 기본에 충실한 국밥의 정석을 보여주겠다고 나섰다. 돼지국밥은 흔하게 즐겨 먹는 음식이면서도 집마다 모양새와 상차림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돼지국밥이 좋더라'라고 소개를 받으면 딱 떠오르는 궁금증 몇 가지. 국물이 어떤 색일까, 고명이 뭘까, 밥을 말아줄까 아닐까다.

기본에 충실한 한 그릇… "특유 잡내 없어요"

창원 '돈대박 돼지국밥 24'는 맑으면서 뽀얀 국물을 자랑한다. 뚝배기에 숭덩 하게 썬 고기, 총총히 올린 파 고명이 전부인 국밥이다.

김현주 주인장은 "기본에 충실한 깔끔한 국밥이다"고 했다.

부부가 합심해 지난 5월 문을 연 가게는 국밥집 특유의 냄새가 없다.

123.jpg
▲ 돈대박 돼지국밥 24의 상차림. / 이미지 기자

"돼지국밥집은 으레 끈적거리고 쿰쿰하다고 생각하는데, 잡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부부가 돼지국밥을 잘 못 먹어요. 그러니 얼마나 신경을 썼겠습니까?"

김현주 주인장 말처럼 부부는 돼지국밥을 선호하지 않았단다. 부부는 우리가 매일 먹을 수 있는 국밥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기의 누린내와 비린내를 없애는 데 공을 들였다.

"비법을 하나하나 알려줄 수 없지만 고기 피를 빼는 과정이 다른 집과 확연히 차이 납니다."

부부는 매장 안에 '저희 집은 다른 집과 모든 것이 다릅니다'라고 적어놓았다.

맛간장, 털털이부추로 감칠맛 더해

돈대박 돼지국밥 24는 국밥 종류가 5가지, 수육, 고추장불고기, 순대구이를 내놓는다.

국밥은 고기를 기본으로 두고 순대, 내장을 더 한다.

원조국밥은 돼지국밥이다. 사골 100%로 낸 육수 덕에 뒷맛이 깨끗하다. 잘 삶겨진 앞다리 살·삼겹살을 맛 간장에 찍어 먹으면 부드러워 술술 넘어간다. 그리고 따로 내어준 흰 쌀밥의 3분의 1만 덜어 한술 떴다. 양념하지 않은 약부추(털털이부추)를 얹어 훌훌 말아먹으면 향긋한 내음까지 더해져 감칠맛이 산다. 마산 어시장을 샅샅이 뒤져 사 온다는 약부추는 국물을 더 맑게 한다.

"국물 맛을 먼저 보세요. 그런 다음 새우젓갈로 간을 맞추고요. 고기는 꼭 따로 소스에 찍어 드세요. 밥을 한꺼번에 말지 말고 3~4번 나눠 드세요. 밥이 죽처럼 퍼지지 않고 밥알이 살아있어야 더 맛있습니다. 부추도 넣어 드세요."

123.jpg
▲ 원조국밥. / 이미지 기자

김건희 주인장은 손님마다 인사를 건네며 하나하나 알려준다. 최상의 상태로 맛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모든 밑반찬을 직접 만드는 건희 씨는 깍두기조차 그냥 탄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석 달에 걸쳐 깍두기를 만들고 식품건조기를 일일이 써가며 무말랭이를 완성했다.

"3년 동안 전국 맛집을 찾아다녔어요. 대부분 본 메뉴에 비해 밑반찬이 별로였습니다. 모든 음식이 '메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에 최상의 요리를 내놓는 겁니다."

지난 5월 13일 개업 날 부부는 수육을 팔지 않았다. 고기가 질겼기 때문. 이후 열흘간 손님상에 내지 않고 다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고기를 '한도마 수육'으로 선보였다.

123.jpg
▲ 맛보기 수육. / 이미지 기자

'아삭무' 매력에 빠진 손님들

돈대박 돼지국밥 24의 밑반찬 가운데 으뜸은 '아삭무'다. 이름만 들어서 쉽게 가늠할 수 없는데, 맛을 보아도 그렇다. 식감은 깍두기와 무말랭이 중간. 맛은 오묘하다. 김치 맛이 아니다. 아삭무는 한도마 수육을 먹으면 딸려 나온다. 그런데 추가 주문하면 3000원을 내야 한다.

부부가 집에서 즐겨 먹는 아삭무를 야심 차게 메뉴에 올리고 돈대박만의 비장의 무기로 만들었다.

"공식을 풀 수 없을 겁니다. 유명한 족발집 사장님이 와서 며칠째 먹어보고 가셨는데 아마 모르실 거예요. 낙지 젓갈에도 무가 들어가는데 70%만 말려 쓰거든요. 아삭무는 또 다르죠. 숙성을 시켜 일주일 정도 걸리는 음식이에요."

123.jpg
▲ 돈대박 돼지국밥 24 전경. / 이미지 기자

그래서 부부는 '국밥이 비싸다'라는 소리를 들으면 속상하다. 국밥과 밑반찬에 쏟는 정성과 열의를 더한 값이라고 했다.

위생에도 신경을 더 썼다. 컵을 일일이 소독할 수 없을 것 같아 종이컵을 내놓았고 매장 가운데 커다란 세면대를 설치했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만났던 느낌 그대로다.

밥이나 국수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하는 토렴 작업도 국밥을 제대로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해 생략했다. 그 대신 수시로 밥을 안쳐 갓 지은 밥을 손님상에 내놓는다.

부부는 24시간 시스템을 고수하면서 삶은 고기는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바로 내기, 밥은 조금씩 자주 하기를 지키고 있다.

"국밥 하나로 서울대 가겠습니다"

이렇듯 부부는 쉽지 않은 길을 택했다.

건희 씨는 늘 밥장사를 하고 싶었단다. 서울 유명 백화점에서 의류매장 총괄 매니저로 일하면서도 음식점 사장을 꿈꿨다. 고향 마산에 내려와 돼지국밥을 준비하는 동안 맛집 쓰레기봉투를 뒤질 만큼 열의가 대단했다.

그녀는 말했다.

123.jpg
▲ 김건희(왼쪽), 김현주(오른쪽) 부부. / 김현주 씨 제공

"8000원이 비싸다고 말하는 분도 있어요. 저희는 이 가격에 담긴 정성에 자신 있습니다. 며칠째 국밥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계세요. 그럴 때 더 믿음이 생깁니다."

정성에 정석을 더한다는 부부. 왜 이렇게 힘들고 복잡하게 가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단다.

그럴 때마다 부부는 함께 외친다. "국밥으로 서울대 가겠습니다. 네. 서울대 가야지요"라고.

<메뉴 및 위치>

메뉴 △원조국밥 8000원 △순대국밥 8000원 △맛보기 수육 1만 2000원 △한도마 수육 2만 8000원

위치: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천남길 360(오동동 55-16)

전화: 055-247-2626.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