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민족 대이동이 시작됐다. 임시 공휴일이 더해져 역대 최장인 10일간의 황금연휴를 맞아 고향을 찾아나선 귀성객의 발걸음은 설렘으로 넘쳐난다.

역에서 버스터미널에서, 선착장에서 공항에서 저마다 가는 길은 달라도 마음 하나만은 다르지 않다. 이때면 누구랄 것도 없이 저절로 입 밖으로 흥얼거려지는 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일 년 삼백육십오 일이 이날 같기만 하다면 더 바랄 게 무엇이겠는가.

모처럼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고 고향 부모님과 친지를 만나 오곡백과로 빚은 술과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따뜻한 정을 주고받고 회포도 푸는 날. 민족 최고의 명절은 그래서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만인에게 복된 날로 다가온다. 모든 것이 풍성하고 풍만한 계절 앞에 만월의 중추 달이 환하게 웃는다. 그렇다. 추석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날. 자연 앞에 머리 숙이고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더구나 올해 추석은 그 의미가 특별나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빚어진 촛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데 이어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섰고 부패 추방과 적폐 청산작업이 본궤도에 오른 것과 때를 맞춰 맞이한 추석이기 때문이다.

처한 위치와 입장이 달라 정치적 대변혁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똑같다고 자신해도 무리가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하면 구악을 일소하고 신질서를 접목하는 일이다.

예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인(仁)과 의(義)다. 전자는 어질다, 선하다는 우리말 뜻으로 풀이할 수 있고 후자는 올바름이다.

지금 하나씩 껍질이 벗겨져 볼썽사나운 속살을 드러내는 전 정권의 오만과 편견은 그 두 가지 본질이 얼마나 왜곡됐었던가 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새 정부는 그걸 되찾아 국정과 공직사회 제자리에 원위치시켜야 하는 중대한 책무를 짊어졌다.

선물보따리를 손에 든 귀성객의 가슴 저 한쪽에도 촛불은 꺼질 줄 모른 채 활활 타오르고 있을 것이다. 개인이나 작은 단위의 일개 가정사라 해도 공정성의 룰이 지켜지지 않으면 정의사회는 허상일 뿐이다. 인권의 소중함을 새삼스럽게 뒤돌아보게 하는 추석이다.

추석을 사회 구성원끼리 서로 소통하는 만남의 기회로 간주한다면 많은 화제가 얘깃거리로 오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북한의 핵 도발은 그중의 으뜸일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정부의 대책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년에 치러질 지방선거와 개헌, 그리고 지방분권에 거는 기대도 못지않다. 안정적인 정국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진영논리에 갇혀 패권주의에 동조함으로써 파당과 분열의 어리석음을 답습할 것인가.

아직 시간이 남았고 정보도 빈약하지만 가족과 동네 사람이 모이는 잔칫상에는 분명 압권으로 장식될 것이다. 모르기는 하나 추석에 집중되는 각개 여론이 앞으로의 정국 향방을 가늠하는 길잡이가 될 것임이 틀림없다.

또 있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사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이니만큼 이곳 지역 관심사를 제대로 알고 현안에 공감할 수만 있다면 더욱 뜻깊은 추석이 되지 않겠는가. 경남의 출향인은 우선 도지사가 궐위된 채로 지사 권한대행이 연달아 민생 행정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 번쯤 관심을 기울여 나쁠 게 없다. 정치인의 자기보신적 이익주의의 피해자는 이곳 지역 주민이요, 형제·자매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늘 인용되는 품목이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학교 무상급식이 차별받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물론 출향인 자신들이 상황을 반전시키거나 개선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향이 안은 어려움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해야 공공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응답할 수 있다. 이번 추석이 그런 유익한 공간으로 재충전될 수만 있다면 돌아가는 길은 즐거움이 배가될 것으로 확신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