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잊지 않고 찾으시는 분들 때문에 그만둘 수가 없어요"

마산 북마산거리에 있는 국일체육복. 1980년에 문을 연 이곳은 37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족 기업으로 지금은 자녀가 대를 이어 가업을 승계 중이라고 한다. 37년, 한 사람의 반평생이다. 그 시간에 녹아들어 있는 의류 장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게 이름이 '국일체육복'이기에, 학교의 '체육복'을 제작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찾은 매장 안에는 체육복 외에도 여러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스포츠 선수의 유니폼으로 보이는 옷부터 작업복, 기능복, 군 관련 옷까지.

▲ 국일체육복 이주연 사장. /이종현 기자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특수복, 맞춤복을 전문적으로 했어요. 특수복이라는 건 운동선수의 옷이나 작업용 옷 같은 부류입니다. 지금이야 시장이 커지면서 사정이 나아졌지만, 옛날에는 운동선수들이 옷을 맞출 곳이 얼마 없었습니다. 운동하는 분들에게 '몸에 맞는 옷'이란 건 무척 중요하거든요. 야구 선수라면 한쪽 엉덩이가 크다든지, 한쪽 팔이 크다든지. 농구 선수는 키가 크지만 허리는 작다든지 하는. 이런 세세한 부분은 맞춤으로 만들 수밖에 없어요."

특수복 전문 업체로 시작한 국일체육복은 1980년 3월 11일에 처음 개업했다. 이주연(59) 씨는 의류 기술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남편의 일을 따라 자연스레 일을 배웠다고 한다.

"남편이 전문적으로 재단, 디자인을 배운 사람이에요. 저는 이 방면으로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고요. 그러다 결혼하고 난 뒤에 현장에서 디자인과 재단을 배우게 됐죠.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어렵기도 했어요. 하지만 든든한 남편의 기술을 바탕으로, 열심히 배워가며 일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지역에서 사업을 이어온 국일체육복과 이 씨. 이제는 전국 어딜 가더라도 알아주는 실력을 쌓았다. '국일'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인터뷰하는 내내 이곳저곳에서 오는 업무 연락이 그 실력과 명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학교 체육복이 주요 사업

지금도 특수복, 맞춤복을 디자인,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사업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단체복'이다. 학교 체육복이 대표적이다.

"처음부터 운동선수들의 옷을 디자인, 제작했었고,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교 체육복도 만들게 됐습니다. 저희 옷이 운동하는 분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았고, 자연스레 그런 소문이 학교 체육 선생님들께도 흘러 들어갔습니다. '우리 학교 체육복도 디자인해 달라'는 제의가 많이 들어와서 체육복을 위주로 만들게 됐습니다."

지역에서는 워낙 입소문이 나서인지, 따로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먼저 의뢰하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덕분에 창원 지역의 학교 대부분의 체육복을 담당하고 있다고.

"창원뿐만 아니라 경남 지역 곳곳에도 옷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김해나 양산, 거제 등에도 각각 열 곳 정도에도 납품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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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일체육복 매장. / 이종현 기자

국일체육복이 옷을 납품하는 곳 중 경남이 아닌, 타지역 학교나 업체도 있다고 한다.

"서울이나 경기도, 전라도 등에도 옷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먼저 영업을 하기보단, 그쪽에서 먼저 의뢰를 하는 방식인데요. OEM(주문자가 요구하는 제품과 상표명으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으로 납품하기도 합니다. 판매 비율은 경남이 65, 타지역이 35 정도일 것 같네요."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직접 영업을 하기도 한다. 홍보용 샘플을 먼저 보낸다는 것. 언뜻 보면 심플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그만큼 기술과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옷을 만들었다. 필요하면 연락해 달라'고 먼저 홍보용 옷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이나 편의성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고. 그 조사를 바탕으로 옷을 개선하고. 필요로 하는 분이 계시면 연락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디자인, 제작, 홍보, 유통까지 한 번에 하는 거죠."

대를 이어 찾는 손님

국일체육복은 수십 년이 지나 자식이나 손자, 손녀의 옷을 맞추러 오는, '대를 이어 찾는 손님'이 많다. 좋은 디자인, 품질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그보다는 '사람들과 나누는 정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1985년인가, 1986년인가, 그쯤의 일이에요. 가게를 하면서 만난 학생이 있는데, 참 성실하고 공부를 잘하지만 돈이 없어서 힘들어하던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저 모르게 3년간 적금 넣어둔 돈을 그 학생에게 줘버렸더라고요. 처음에는 화도 나고 돈이 아까웠죠.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나눔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나중에 그 학생이 훌륭하게 돼서 가게를 찾았을 때는 너무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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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일체육복 매장 내부 모습. 여러 종류의 옷들이 있다. / 이종현 기자

이후로도 이 씨와 남편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기초수급자나 결손가정 등의 학생들에겐 무료로 체육복을 제공해왔습니다. 80년대부터 쭉이요. 누군가는 도와줘야 하고, 정부가 돕지 않는다면 체육복 사업을 하는 우리가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이야 정부가 이런 부분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지만, 2014년까지만 하더라도 지원이 미약했거든요."

아동복지센터, 복지원, 장애인센터 등의 사회 약자를 위한 기부도 계속하고 있다.

"옷을 제작하다 보면 원단이 남게 되는데, 이렇게 남은 원단으로 아동복지센터나 복지원, 장애인센터 등에 기부할 옷을 만들고 있어요. 이런 곳에는 먹는 것 이외의 정부 지원이 잘 없어요. 그리고 장애인에게는 그분께 맞는 옷을 드려야 해요. 일반 기성복을 드릴 수 없거든요. 저희에게는 사소할지도 모르지만, 받는 분께는 큰 기쁨이 될 수도 있어요. 이런 분들에 대한 지원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생각입니다."

이렇게 '특별한' 옷을 받은 이들은, 세월이 지나 자식의 옷을 맞추기 위해 국일체육복을 찾았다.

"오랫동안 가게를 하면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그 마음이 심각해질 무렵이면, 향수를 자극하는 손님들이 찾아오시고. 그러면 또 '조금은 더 해야지' 하게 돼요. 이래서는 언제 그만둘지 알 수가 없네요. (웃음)"

수십 년 전에 찾았던 손님이 자식의 손을 잡고 가게를 찾는다는 것,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스쿨존 '가방 안전덮개' 최초 제작

국일체육복은 전국적인 이슈가 된 '스쿨존 가방 안전덮개'를 최초로 제작한 곳이기도 하다. 경남도교육청 생활안전과 이태욱 씨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국일체육복이 제작한 것.

"박종훈 교육감님과 교육청 생활안전과 이태욱 씨의 스쿨존 가방 안전덮개 아이디어를 듣자마자 눈물이 났어요. 저희 큰 아이를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잃었거든요. '이런 상품이 더 일찍 있었다면 우리 아이는…' 하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그래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 시행한 뒤 전국에서 이슈가 됐다는 것에 감동했습니다.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게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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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일체육복에서 최초 제작한 ‘스쿨존 가방 안전덮개’. / 이종현 기자

하지만 '최초 제작'임에도, 값싼, 불량 제품들로 인해 상업적인 특수를 누리진 못했다고 한다. 국일체육복의 제품이 아닌 불량 제품을 구입했다가, 다시 국일체육복에 제품을 의뢰하기도 한다고.

"저희는 항상 질 좋은 원단, 재질을 사용해왔습니다. 이번 가방 안전덮개도 일회용이 아닌, 학생들이 계속 쓸 수 있도록 좋은 재질을 사용했죠. 원단에서부터 내수압 등, 표준화까지 많은 개발비, 기술비, 시간 등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값싼 중국산 원단, 재질을 쓴 상품보다 가격이 높기도 하죠."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더 중요한 건 스쿨존의 안전 확보라고 못 박는 이 씨. 앞으로도 가격을 낮추기 위해 질 낮은 제품을 만들 생각은 없다고 한다.

"좋은 상품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다른 업체의 제품을 찾는다는 게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품질에 대한 고집은 계속 가질 거예요. 결국 값싼 업체의 제품을 샀다가 제품 상태가 안 좋다고 저희에게 다시 연락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로지 노력으로, 품질로 인정받겠습니다."

37년째 의류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주연 씨와 국일체육복. 하지만 끝이 가깝다는 생각은 안 든다. 이 씨와 국일체육복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더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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