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타리스트'

2016년 개봉한 영화 <라라랜드(LA LA LAND)>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2016년 베니스국제영화제 볼피컵 여우주연상을 시작으로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각본상, 감독상, 음악상, 주제가상 등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 영화는 미국 LA를 배경으로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의 도전과 사랑을 그린 뮤지컬 로맨스 영화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남자주인공은 어려운 환경에도 재즈를 고집하는 신념을 지킨다. 국내에서도 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재즈 열풍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재즈는 여전히 쉽지 않은 장르다. 그러던 중 경남에서 재즈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연주자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재즈 기타리스트 겸 창원문성대학교 교수인 김정곤(47) 씨다. 버클리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지역에서 꾸준히 재즈를 알리고 있는 김정곤 교수를 직접 만나봤다.

음악과 함께했던 학창시절

김정곤 교수를 만나기 위해 창원문성대학교로 갔다. 교수연구실 문을 열자 학생들이 김 교수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연구실은 기타와 건반, 음향기기들로 가득했다.

"고향은 대구입니다. 학창시절 공부보다는 음악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그룹사운드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밴드에서 베이스를 구하고 있었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악기를 접했습니다.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우고 싶어졌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했지만 대구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독학을 했습니다. 그러다 대구스튜디오라는 녹음실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그룹사운드 활동을 하는 대학생 형들을 따라다니면서 많이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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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곤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 박성훈 기자

김 교수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음악을 업으로 삼고자 결심했다. 대구에 있는 4년제 대학에 갔지만 한 학기를 다닌 후 그만뒀다. 한국에서는 음악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당시만 해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고민을 거듭하다 미국에 MI(Musicians Institute)라는 음악 전문대학을 알게 됐죠. 다행히 6촌 형님이 미국에서 살고 있었거든요. 부모님을 겨우 설득해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파란만장한 미국 생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 인근에서 LA폭동이 일어나 학교를 다니기 위험했다.

"원래 가려던 학교를 포기하고 다른 학교에서 시험을 봤습니다. 결과는 탈락이었죠. 이대론 안 되겠다는 걸 깨닫고 영어부터 음악 공부까지 다시 했습니다. 1년 정도 준비한 후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죠."

버클리 음대는 재즈 장르를 체계화해서 교육하는 기간 중 최고로 꼽힌다. 김 교수에겐 버클리 음대의 모든 것이 새로웠다.

"제가 처음 충격을 받았던 건 '강사 수'입니다. 기타 강사만 60여 명이 됐습니다. 상상을 초월했죠. 또 '버클리 북 스토어'라는 서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악기는 물론 기타에 관련된 서적만 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부럽기도 했고요. 정말 좋은 기회라 여기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고달팠던 유학생활

한창 대학생활을 하던 어느 날, 대한민국에 IMF가 터졌다. 김 교수의 집에선 더 이상 유학비를 지원할 수 없었다. 김 교수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IMF가 터지면서 모든 지원이 끊겼습니다. 당장에 먹고살아야 하는데. 초밥 배달부터 캐셔, 청소, 세탁소까지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래도 돈이 안 되니까 다른 일을 알아봤죠. 당시 보스턴 지역에선 집을 리모델링하는 게 붐이었어요. 그런데 업체 측에선 목수를 못 구했죠. 인건비도 비쌌고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손재주도 있고 하니까 목수 일을 배워서 돈을 벌었습니다. 겨우 학교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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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공연을 하고 있는 김정곤 교수. / 사진 제공 김정곤 교수

우여곡절 끝에 모든 유학을 마치고 200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1992년에 가서 2002년에 돌아왔습니다. 10년 정도 있었네요. 고향인 대구로 갔습니다. 모 대학에서 출강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지인에게 창원문성대학교에서 교원 모집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기회가 돼서 실용음악과에 교수로 부임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관광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재즈, 지시되지 않고 규정되지 않는 음악

재즈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미국 흑인의 민속음악과 백인 유럽음악의 결합으로 미국에서 생겨난 음악이라고 볼 수 있다. 재즈 공연을 한 번이라도 관람한 사람은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김 교수가 생각하는 재즈의 매력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재즈는 지시되지 않고 규정되지 않는 음악이다' 한 학자가 재즈를 정의한 말인데요. 가장 재즈라는 장르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옛날 가난한 흑인들이 만들었던 밑바닥 문화가 주류가 된 첫 번째 음악이거든요. 재즈는 매번 달라요. 예를 들어 클래식은 정해진 악보대로 연주해야 하지만 재즈는 자유롭죠. 멜로디를 피아노, 노래, 베이스, 기타 등 어떤 악기로도 연주가 가능합니다. 즉흥연주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게 바로 재즈죠. 변칙적이고 변화무쌍한 음악입니다. 마치 우리네 인생 같지 않나요?"

즉흥연주는 악곡 또는 그 일부를 창작하여 그것을 악보에 적지 않고 즉석에서 연주하는 것이다. 재즈의 역사는 즉흥연주를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자세히 질문하자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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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공연을 하고 있는 김정곤 교수. / 경남도민일보DB

"일반 대중들이 재즈를 말할 때 즉흥연주를 가장 궁금해합니다.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는데요. 즉흥연주는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더 리얼 북'이란 책인데요. 500곡 정도가 들어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재즈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책이죠. 대부분 한 곡이 한 장을 넘기지 않아요. 한 장에 연주에 필요한 기법과 코드가 다 들어있습니다. 연주자들은 모든 기법을 다 연습한 상태에서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거죠. 차라리 그려진 악보를 연주하는 게 더 쉽습니다. 즉흥연주는 답이 없는 시험지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연주를 표현할 수 있죠."

김 교수는 '김정곤 재즈그룹'을 이끌고 있다. 장르 특성상 멤버가 정해져 있지 않고 무대와 공연에 맞게 교체된다.

"김정곤 재즈그룹은 2015년에 꾸려졌습니다. 버클리 다닐 때부터 친했던 백반종 교수와 김수미 보컬리스트까지 3인조로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멤버들이 계속 바뀝니다. 각 공연에 맞게 교체되죠. 예를 들어 '이 곡에는 피아노보단 기타가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 다른 연주자에게 연락하는 거죠. 기타 연주자만 3명이 되거나 빅밴드 형식으로 구성될 때도 있습니다. 예정돼 있는 공연도 4개 정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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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공연을 하고 있는 김정곤 교수. / 사진 제공 김정곤 교수

재즈 역사에는 정통 재즈와 퓨전 재즈가 등장한다. 정통 재즈에 전자음향 등을 접목해 만든 것을 퓨전 재즈라 부른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 둘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 부분은 연주자들끼리도 말이 많아요. 대중들에게 일반적으로 익숙한 재즈는 1930년대 나온 재즈입니다. 춤출 때 많이 연주되는 음악이었죠. 1940년대를 기점으로 소위 말하는 '비밥 재즈(194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행한 자유분방한 재즈 연주 스타일)'가 유행합니다. 그때부터 난해하고 어려운 음악으로 바뀌었죠. 뒤를 이어 락 재즈, 보사노바 재즈, 라틴 재즈 등 여러 장르가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1930년대가 정통 재즈고 1940년부턴 퓨전재즈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각자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즐기면 됩니다. 음악을 정통이나 퓨전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짓이죠."

그러나 대중들은 여전히 재즈는 어렵고 복잡한 음악이라고 말한다. 재즈의 대중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경남에는 재즈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클럽도 없다. 이런 현실에 대해 김정곤 교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연주자와 기획자가 가장 노력해야 합니다. 공연을 기획할 때부터 대중들이 선호할 만한 곡을 선별해야죠. 저는 친숙하다고 느낄만한 곡을 뽑아요. 처음부터 어렵고 난해한 곡이 나오면 눈과 귀가 닫힙니다. 또 공연을 진행하는 사회자의 멘트도 중요해요. 그날 연주되는 곡에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합니다. 언제 작곡됐고 그 안에 담긴 스토리까지 설명해 주면 금상첨화죠. 또 최근 추세가 소규모 카페나 공간에서 연주를 듣는 걸 선호합니다."

"지역예술인들을 위한 지원 필요해"

재즈 기타리스트이자 대학 교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교수가 이루고 싶은 꿈은 뭘까?

"그룹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죠. 공연도 전국으로 다니고요. 팟캐스트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걸 통해 재즈 문화를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재능기부도 할 생각입니다."

김정곤 교수와 인터뷰는 유쾌했다. 직접 연주를 하면서 재즈를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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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곤 창원문성대학교 교수. / 박성훈 기자

"창원에 문화적 기반이 부족합니다. 광역시를 바라보는 입장에선 말이 안 되죠. 연주자 자체도 찾기 힘듭니다. 공연할 장소는 더욱 없고요. 그런데 문화를 갈구하는 시민들은 정말 많아요. 엇박자가 나는 거죠. 주위 후배들이나 제자들만 봐도 하고 싶은 열망은 강한데 현실이 녹록지가 않습니다. 행정기관에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역예술인들에게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어릴 땐 음악문화가 정말 활발했습니다. 포크, 트로트, 락,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가 사랑받는 시기였죠. 지금은 너무 획일화됐습니다. K-POP이 안 좋다는 게 아닙니다. 후크송이 아닌 더 다양하고 독특한 음악이 나와야 합니다. 2015년쯤 우연히 두 아들에게 재즈 공연을 보여줬습니다. 대중음악에 익숙했던 아이들이지만 곧잘 즐기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내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구나'하고요. 뮤지션으로서, 작지만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서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나부터 지역의 문화를 선도하고 이끌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역예술인들도 활발한 활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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