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시가 꿀벌의 벌집에 비해 그리 더 인공적인 것도 아니며, 인터넷이 거미집보다 덜 자연적인 것도 아니다."

"기후변화는 지구가 인간이라는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작동시킨 조절 메카니즘일지도 모른다."

존 그레이라는 영국의 사상가가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라는 책에서 한 말들입니다. 호모 라피엔스는 '약탈하는 자'라는 뜻으로 현생 인류 종을 뜻하는 호모 사피엔스를 패러디한 용어라고 합니다.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진보는 신화다. 자아는 환상이다. 자유의지는 착각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지 않다. 굳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을 들자면, 이성의 능력이나 도덕 원칙을 지키는 능력이 아니라, 유독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종이라는 점이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해왔다는 믿음에 균열을 줬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저자는 "역사란 진보나 쇠락의 과정이 아니라 얻다가 잃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하긴 관점을 인간이 아닌 지구, 나아가 우주에 놓고 본다면 인간이란 수많은 생물 종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우스꽝스러운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구주모 경남도민일보 사장과 가끔 나누는 농담이 있는데, "어쩌면 환경운동도 좀 더 쾌적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이기심일지 모른다. 나중에 지구가 오염되어 인간 종이 사라지면 그때는 비소나 카드뮴을 주식으로 하는 새로운 종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존 그레이도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호모 라피엔스는 많은 생물 중 하나일 뿐이고, 딱히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머지않아 인간 종은 멸종할 것이다. 인간이 사라지고 나면 지구는 회복될 것이다. 인간 종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진 후, 인간이 파괴하려고 했던 다른 많은 종이 다시 번성할 것이다.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또 다른 종들도 함께 번성할 것이다. 지구는 인간을 잊을 것이다."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른 동물에게도 생각이라는 게 있다면 그들의 눈에 인간은 어떻게 보일까요? 인간의 행동이나 생활방식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 흥미로운 콘텐츠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이승환 기자(언론노조 경남도민일보 지부장)가 블로그에 쓰고 있던 '고양이 눈으로 본 사람'이었습니다. 당장 <피플파워>에 연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번호부터 선보이는 '나는 고양이라니까' 코너가 그것입니다.

546391_416719_0946.jpg

자기 성찰을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입장을 바꾸어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를 대상화하여 관찰자 시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저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나, 니체가 말하는 초인을 믿지 않지만, 존 그레이의 말도 다 믿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인류는 파괴적이고 약탈적인 종 이상으로 나눔과 평화를 실천하는 훌륭한 인간이 많기 때문에 이나마 유지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희가 지역에서 끊임없이 좋은 사람을 찾아내 알리고 있는 것도 그런 믿음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번호에 소개되는 목수 신성룡 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분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좋은 사람 있으면 언제든 추천해주십시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