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헌논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개헌논의에서 빼기 어려운 주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이다. 즉, '87년 체제'로 알려진 현행 헌법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제를 핵심적 내용으로 담고 있지만, 이런 단순한 권력구조로는 한국사회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더 이상 반영하기가 어렵지 않으냐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우리 헌법이 바뀌는 과정은 한국사회의 발전이라는 역사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987년 이전 권위주의 정부시절 국민이 선거로 대통령을 뽑지 못하였던 경험은 직선제 개헌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졌다.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시민 저항의 기저에는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보자는 흐름이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부분이 여전히 유보된 채 권력구조를 직선 대통령제로 바꾸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시민 스스로 선택한 정치인들을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누가 하든 국가정책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성숙한 사고는 어쩌면 '87년 체제' 이후의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빚어진 결과다. 또한, 권력형태가 지역 분산 구조에서는 정책 실효성에 대한 대응은 중앙집중보다 매우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즉, 시민들의 반응과 평가가 즉각적으로 반영되게 한 정치제도가 지방자치제이다. 하지만, 중앙정부에 사실상 많은 권한이 집중된 현행 지방자치제는 반쪽짜리도 아닌 무늬만 지방자치가 아니냐는 힐난이 나온다. 지방 입법권은 고사하고 예산편성의 자율권과 독립권은 찾아보기 어렵고 지방재정은 중앙정부의 보조금이나 교부세에 의존하고 있다.

지방재정의 20%만 관할하는 현행 지방자치제 밑바탕에는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불신과 오만이 깔려 있다. 지자체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하지만, 중앙정부가 집행한 사업 중에서 혈세를 낭비한 사업은 부지기수다. 게다가 각종의 비리까지 합하면 중앙정부와 지자체 중에서 누가 무능하고 부패하였는지를 구분하기조차 곤란하다. 지방분권을 미루면서 민주주의를 운운하는 촌극을 이젠 중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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