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 위한 헌신, 도움 안되는 현실
정치적인 삶 살도록 노력하는 자세 필요

셋째 주 토요일마다 토기장이의 집에서는 담쟁이인문학교가 열린다. 이번 달은 '살아있는 교육, 삶이 있는 교육'이란 주제로 열렸다. 교육을 주제로 한 시간이어서인지 어두운 시골 밤길을 많은 분이 찾아오셨다. 강사로 오신 장희숙 선생님(격월간 민들레 편집장)이 깜깜한 시골 산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니 꼭 비밀기지 같다고 말해 모두가 크게 웃었다. 장희숙 선생님은 대안학교 교사셨는데 지금은 삶이 있는 교육을 위한 책을 만들고 있다. 책과 강연을 통해 새로운 삶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현재 공교육과 대안교육의 흐름을 살펴보는 것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강의가 이어졌다. '우리는 사람다운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질문하고 나누는 시간이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이 아팠던 것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기다려주며 이야기를 들어줄 어른이 없었다.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적어 젊은이들이 이렇게 아파하고 있구나 싶었다.

한 고등학생에게 왜 학교에 가느냐고 물었더니 "제가 학교 가는 이유는 딱 두 가지예요. 급식이랑 친구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장희숙 선생님은 이 말에서 학교의 방향성을 보았다고 하셨다. 이전에는 학교와 교육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단순해졌다고 했다. 함께 밥 나누어 먹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학교'이면 되었다. 공감이 되는 말이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밥을 먹고 친구들과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학교가 될 수 있다면 아이들과 학교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

최근 명문대학 졸업식장에 걸린 '○○대학 졸업하면 뭐하냐 백수인데'라는 문구는 오늘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는 듯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 취업준비를 위한 대학생활은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 그 어떤 내적 동기도 주지 못한다. 사실 내적 동기 없이 산다는 것은 불행 그 자체이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은 어떤 시도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당위만 책임으로 부여받을 뿐, '이래도 될까?' 하는 고민은 사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해볼까?' '저런 삶은 어떨까?'를 고민할 수 있다면, 함께 소통할 수 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희숙 선생님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자녀의 교육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하는 부모가 정작 자녀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는 딜레마를 꼬집었다. 이런 현실에서 나를 대신할 로봇(AI)이 등장하고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상상하기 어려운 미래를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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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장희숙 선생님은 정치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고 했다. '정치'는 뉴스에 나오는 듣기 싫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하려고 소리를 내는 일이라 하셨다. 바른 시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작은 것 하나라도 바로잡아가려고 노력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것의 의미는 최소한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담쟁이인문학교가 부모와 자녀, 온 가족이 삶의 방향성을 다시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면 좋겠다. 핫한 교육적 이슈에 대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하기보다 교육과 삶의 근본을 다시 질문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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