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민주화 시대를 열자] (1) 밀양송전탑 12년, 무너진 마을공동체
송전탑 갈등에 마을 쪼개져 2명 사망·벌금만 1억여 원

새벽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산 아래 구불구불 도로를 따라 들어오는 버스는 공포를 싣고 왔다. 어둠 속에 차량 불빛은 섬뜩했다. 날이 밝자 공무원들과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천막은 칼로 북북 찢겼고, 비명이 가득했다. 경찰들은 쇠사슬을 건 할매들 목에 절단기를 갖다 댔다. 알몸은 끌려나갔다. 지난 2014년 6월 11일, 지옥 같았던 밀양송전탑 반대 농성장 행정대집행 현장상황이다. 주민들은 '국가가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고 울부짖었다.

갈등과 충돌 과정에서 진정한 대화는 없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밀양에 휴가오고, 국무총리가 방문했지만 공사강행을 위한 절차적 명분 쌓기였다.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창녕 북경남변전소까지 765㎸ 송전선로(90.5㎞)를 잇는 공사는 한국전력이 경찰을 앞세운 행정대집행 이후로 마무리됐다. 이 구간에 평균 100m 높이 송전철탑 161기(밀양 69기)가 들어섰다.

삶의 터전을 잃지 않으려고 맞선 주민들에게 남은 상처는 깊다. 대대로 어울려 살던 마을공동체는 찬반으로 갈려 무너졌다. 끝까지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며 보상을 거부했던 주민들은 마을에서 고립된 '왕따'가 됐다.

"참…, 분열 이러면 우아한 소리고. 그냥 동네가 박살이 나고 쪼가리 났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지난 3월 발표한 <밀양 765㎸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공동체 해체 관련 구술조사 결과보고서>에 담긴 한 주민의 증언이다. 연구원은 '밀양 사태'에 대해 '사회적, 공적 시스템이 제어하거나 방어하지 못했을 때 인간의 자존과 공동체적 삶을 무너뜨린 참혹한 사례'라고 규정했다.

온몸으로 맞서왔던 주민들 희생도 컸다. 지난 2012년 1월 산외면 보라마을 70대 주민 분신, 2013년 12월 상동면 고정마을 70대 주민이 음독해 숨졌다. 주민들에게 범법자 딱지가 수두룩하게 붙여졌다. 384명이 입건돼, 67명(연대시민 22명 포함)이 재판에 넘겨졌다. 벌금 액수만 1억 원이 넘고, 법률대응 비용을 보태면 2억 원이나 된다. 국가폭력의 민낯이다.

그러나 송전선로 경과지 10개 마을 150여 가구는 여전히 보상을 거부하며 12년째 싸우고 있다. 주민들은 핵발전소 신고리 5·6호기 존폐 결정을 위한 공론화 과정에서 탈핵원정대를 꾸려 전국을 돌고 있다.

밀양 송전선로는 지난 2000년에 확정된 5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신고리 3~6기와 함께 계획됐다. 주민들은 신고리 5·6호기가 밀양의 운명과 직결돼 있다고 믿고 있다. 2기를 짓지 않으면 평균 이용률이 26%(2015년 6월~2017년 2월, 한전 국회 제출 자료)에 불과한 밀양 송전선로는 필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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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송전탑 투쟁이 사회에 던진 파문도 컸다. 지역에 밀집한 발전시설과 수도권에 전기를 보내기 위한 초고압 장거리송전의 문제점, 전기가 왜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하는지? 핵발전소가 왜 문제인지? 일깨우게 했다. 밀양이 탈핵운동과 에너지 민주화 운동에 밑불이 된 셈이다.

지난 6월 행정대집행 3주기 행사에 참석한 김제남 정의당 전 국회의원은 "밀양 어르신이 있었기에 탈핵이 전국의 목소리가 됐고 정의롭지 못한 전기를 전국에 알렸다. 밀양은 연대"라고 말했다. 또 김주온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밀양 싸움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새 정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송전탑 피해를 호소하는 충남 당진, 강원 횡성, 전북 군산, 경북 청도 주민들과 함께 청와대에 찾아가 △국가폭력과 마을공동체 파괴 진상조사와 공식사과, 책임자 처벌 △재산·건강 피해 실태조사 △전원개발촉진법 폐지와 전기사업법·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지원법 독소조항 개정 △신규 핵발전소 중단·노후 핵발전소 폐쇄와 함께 밀양송전선로 철거 등을 요구하며 공개토론회도 요청했다. 지난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 초대받았던 부북면 위양마을 덕촌댁 손희경(82) 할매는 대통령 앞에서 '우리 좀 살려달라'며 엎드려 절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공식적인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대화가 없는 상황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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