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어오는 바람 따라 이제 막 돋아난 이파리가 통째 흔들린다. 온통 신록이다. 윤기 반짝이며 연초록잎이 나풀대는가 하면 하얀 솜털을 머금은 뒷면 숨구멍이 몸을 뒤집는다. 새로 갈지 못해 우중충한 녹색 차림인 소나무까지 곳곳에 진치고 있어 같은 녹색이라도 저리 다를 수 있구나 다시 느끼게 한다.
나무 한 그루 숲 한 무더기만 그런 게 아니다. 눈에 들어오는 사방 천지가 온통 녹색 춤판 한마당이다. 뿐인가. 철쭉들은 골짜기를 타고 오르며 군데군데 피어 지나가는 길손을 멀뚱 바라보고 있다.
지리산 의신마을에 들어가서 빗점골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동안 날씨는 세 번 바뀌었다. 골짜기를 훑는 바람은 물기를 머금은데다 서늘하기까지 했다. 흐렸다가 개이고 다시 빗방울이 듣더니 맑아졌다.
마을은 오른쪽 삼신봉(1284m)에서 차례대로 영신봉(1652m)·칠선봉(1522m)을 거쳐 왼쪽 아래 황장산(942m)까지 지리산 10봉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에 있다. 이른바 꽃잎들이 활짝 벌어진 한가운데 꽃술에 해당하는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들어와 더러워진 귀를 씻고 입산한 곳이기도 하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가 이곳에 있던 의신사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게다가 옛적에는 물과 뭍을 잇는 길목 노릇도 했다. 섬진강과 화개천으로 이어지는 물길이 있는데다 함양·남원으로 가는 삼남대로였다는 벽소령 고갯길이 마을 위쪽에 나 있다.
접근하기가 쉬운데다 뒤에는 깊은 골짜기가 우거진 숲을 거느린 채 버티고 있는 곳이어서 해방 직후에는 빨치산과 토벌대가 숱한 피를 뿌려댄 현장이기도 하다. 아마 지리산의 한가운데라는 점까지 감안해 빨치산은 여기 의신마을 위쪽 빗점골에 사령부를 설치했을 것이고 토벌대의 마지막 포위망 역시 여기로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의신마을에서 삼정 마을까지 3km 남짓은 줄곧 오르막이다. 땀은 등줄기를 적시는데 왼쪽 골짜기로는 바위 때리는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이쯤에서 벽소령 가는 너른 지름길을 떠나보내고 표지판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면 얼마 안가 이현상(빨치산 사령관)이 마지막을 맞이한 데가 나온다. 다시 길따라 400m 정도 오르면 사령부가 설치됐던 곳에 이른다.
이현상은 남쪽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53년 9월 18일 이른바 서경사(서남지구 전투경찰대 사령부)에게 사살된다. 하지만 이에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9월 15일 남부지구 경비사령부(남경사) 소속 국군 부대가 해치웠다는 말도 있고 제3자가 목숨을 거둬 갔다고도 한다.
이현상은 경력이 독특하다. 월북했다가 무엇 때문인지 다시 내려와 지리산에 들어갔고 빨치산을 지도했으며 사령관을 맡았으나 숨지기 직전인 9월 6일 조선노동당 제5지구당 회의에서 평당원으로 깎이고 만다. 그래서 이같은 얘기들이 더욱 무성하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이현상이 숨을 거둔 자리는 위로 너덜이 펼쳐지고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붉은 철쭉이 하늘거리고 바람조차 조용한데 햇볕은 나뭇잎 사이로 내려앉는다.
부드러운 질감이 느껴지는 너른 바위에 앉아본다. 이처럼 좋은 봄날, 뼈아픈 지난날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현장을 굳이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무튼 자기 만족이나 적개심이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은 든다.



△가볼만한 곳 - 벽소령·칠불사

빗점골은 4년 전만 해도 숨은 골짜기였다. 이제는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빨치산 사령부 자리 위쪽으로는 등산길이 나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통 이쪽을 둘러본 다음에 도로 내려와 삼정마을에서 벽소령쪽으로 올라간다.
벽소령에서는 덕평봉과 영신봉을 거쳐 의신마을 뒤쪽이나 대성골로 내려올 수도 있으나 집안 식구들이 함께 하는 산행이라면 아무래도 버겁다. 하지만 벽소령까지 올랐다면 2km 남짓 되는 능선을 즐기지 않을 수 없다. 1400고지로 높기는 하지만 높낮이 차이는 크지 않고 평탄하기 때문에 양쪽으로 펼쳐지는 산아래 풍경을 마음껏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지리산 10경 가운데 제4경으로 벽소야월이 들어 있고, 산꾼들은 벽소령에 뜨는 보름달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도 한다. 밤풍경이 이러니 낮에 보는 경치도 다른 데보다 처질 리는 없는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는 칠불사에 잠깐 들러도 좋다. 칠불사는 김해가야 김수로왕의 열 아들 가운데 일곱이 지리산에 운상원(雲上院)을 짓고 외숙부인 장유화상의 가르침을 받아 성불을 하는 바람에 칠불사로 이름을 갈았다고 하는 곳이다.
칠불조사인 문수보살이 머무는 곳이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래서인지 여느 절간과 달리 문수전이 마련돼 있다. 또 신라 신문왕의 일곱 아들이 지리산 옥부선인의 옥적(玉笛)소리에 입산해 득도하고 창건했다는 설도 있으나 칠불사는 가야의 것을 정설로 하고 있다.
칠불사에는 아자방(亞字房)이 이름나 있다. 길다란 네모꼴 방을 아자(亞字) 모양으로 공간을 나눠 놓았는데 신라 효공왕 때 구들도사였던 담공화상이 쌓은 것이다. 한 번 불을 때면 일곱 짐 되는 나무를 아궁이 세 개에 넣어 한꺼번에 땐다고 하며, 49일 동안 열기가 식지 않고 따뜻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스님들이 수행처로 삼고 있다.
절 아래 그림자못 영지가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어머니 허황옥이 일곱 왕자의 성불한 모습을 보았다는 곳이다. 그늘 아래 앉아서 땀 식히기는 그만이다.

△찾아가는 길

의신마을이나 빗점골 찾아가는 길은 너무 쉽고 간단하다. 진주나 마산·창원에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하동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린 다음 줄곧 바로 가기만 하면 된다.
가다 보면 화개면 소재지가 나오고 쌍계사가 오른쪽에 나오고 왼쪽에 칠불사가 나오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 왕성초등학교를 지나 죽 올라오면 의신 마을이다. 쌍계사와 칠불사가 어디 있는지 알리는 표지판이 촘촘히 서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의신마을까지만 아스팔트 포장이 돼 있다.
칠불사는 내려오는 길에서 신흥마을을 앞두고 오른쪽으로 꺾어들어 길따라 가면 된다. 칠불사는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으니끼 관계없지만, 혹시 쌍계사에 들르려면 빗점골 들어갈 때 산 국립공원 입장권을 챙겨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집 들머리 매표소에서 돈을 더 내야 한다.
마산·창원에서 대중교통으로 하동에 가려면 진주까지 가서 갈아타야 한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진주까지는 5분마다 한 대씩 차편이 있고 진주서 하동까지는 아침 6시 40분부터 20분마다 버스가 나가니까 그리 나쁘다고는 할 수 없겠다. 쌍계사까지 바로 가는 차도 오전 6시 57분부터 오후 5시 51분까지 아홉 차례 있다. 이 가운데 7시 59분과 2시 10분·5시는 의신마을까지 들어가는 차편이다.
하동시외버스터미널(055-883-2662)에서는 시내버스로 움직이면 된다. 오전 11시와 오후 4시 40분·7시 30분 차는 칠불사가 종점이고 오전 9시 40분·11시 50분 오후 3시 30분과 5시 20분·5시 50분·8시 50분·8시는 의신마을까지 올라간다. 이와 더불어 쌍계사 가는 차편이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시간대별로 한 대씩 있는 꼴이니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