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에서 눈만 뜨면 훤히 건너다보이는 곳에 옛 산성 유적이 있다. 어릴 적 부친이 이야기해 준 전설대로 마을 지명을 따라 원곡산성이라고도 불리는 그 산성은 최근까지 고려 말 정안 선생의 누이가 정안이 던져 준 도끼를 받아 장작 패던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곡산성과 그 주변은 고인돌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연원을 알 수 없는 역사의 파편들이 무수히 발견되었고 최소 2기 이상의 고분이 있는 유적지임이 밝혀졌다. 마을 촌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유물들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 재료가 되어 망실되었고 무수히 흩어져 있던 돌무지 무덤돌들은 새마을 사업과 2번 국도 자갈 부역 등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우리 생활 터전 곳곳에 모르면 저처럼 쓸모없이 사라지고 마는 귀한 역사유적들이 남아 있고 지금 가치를 알 만큼 보존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 또한 없어지고 말게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내가 사는 마을만 해도 지금도 고인돌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몇 기는 국도 공사로 사라져 버렸다.

최근 경남의 시·군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야사 복원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이후 발 빠르게 가야사 관련 청사진들을 내놓고 있다. 가난한 시절에는 역사를 되돌아 볼 여유가 없어 유적이 훼손되었고 좀 살만해진 뒤에도 좀 더 잘살기 위한 치열함으로 역사유적을 덮어 두기 예사였던 것을 상기하면 천지개벽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시·군에서 하는 작업들이 지역 알리기나 관광 상품화를 위해 지금까지 했었던 것과 얼마나 다른지 묻고 싶다. 주객전도라는 말처럼 제사보다 젯밥에 마음이 가면 본질을 찾을 길이 없게 되며 대통령이 말한 가야사 복원은 또다시 헛수고에 그치고 말 것이다.

역사가 찬란하고 유물이 많이 남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긍심을 갖게 되면 그 삶도 두터워지기 마련이다. 곧 망할 것 같던 그리스가 살아 있고 실업자 천지라는 이탈리아가 여전히 먹고사는 데 급급해하지 않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종교가 그 땅의 역사를 덮어버린 결과 저토록 참담한 현실에 있다.

우리는 어떤가? 엄연한 역사도 줄이거나 고정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 결과가 어떠할지 외국의 사례와 겹치면서 소름이 돋는다.

먹고살기도 바쁘고 북한 문제 등 국정 과제가 한둘이 아닌 터에 문재인 대통령이 굳이 가야사 복원을 말한 까닭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고질적 지역갈등과 삼국체제를 벗어나 가야사를 복원함으로써 역사적 다양성을 유도하여 평등사회의 길을 열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순수하게 두터워진 역사를 통해 지역민이 자긍심을 갖게 하고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를 열려는 바탕을 가야사 복원에서 찾은 것이라고 본다.

가치를 보존하고 창양하여 삶을 두텁게 하는 노력은 아무리 먹고살기에 바쁜 오늘날이라 해도 분명히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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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의 중심인 김해지역 국회의원인 민홍철 의원에 의해 대표 발의된 가야사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경남지역은 가야사뿐만 아니라 역사 전반에 대한 체계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괜찮은 법률이라도 자칫 천박한 자본 논리에 빠질 수도 있다. 연구 중심의 역사 복원이 되어야 하고 보여주기보다는 지역민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역사 복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가야사 복원은 대한민국이 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그래야 제대로 된 역사복원의 의미를 살릴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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