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중국사학자인 레이 황은 20세기 초 중국이 서양 열강들의 침탈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숫자’에서 찾는다. 정부가 나라를 숫자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레이 황에 따르면 중국은 ‘황하의 홍수관리’와 ‘중원지역의 식량수급 안정’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원전 221년 진나라의 시황제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게 된다. 진시황 이후에도 장기간에 걸친 분열의 시기가 있지만, 그때부터 분열은 언제나 통일을 위한 명분일 따름이었다.
황제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직접 관료를 각 지역에 파견해 천만에 가까운 백성들로부터 병사를 징발하고, 세금을 걷고, 소송과 형사사건을 담당하게 했다. 이는 분명 시대적으로 조숙한 정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매우 이른 시기에 지나치게 광활한 지역을 통치하게 되다보니 각 지역의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고려하기보다는 중앙에서 일방적으로 설계된 이상적인(·) 제도를 고집하게 되었고, 이것이 중국 정치의 전통이 돼 20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효율적으로 보였던 이 제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과 제도의 괴리라는 고질병으로 와전됐고, 결국 서양 열강들에 유린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는 것이다.
올해 초 발간된 <2002 문화산업통계>에 대해 말이 많다. 이 바닥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 통계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나라 게임업계는 현재 온라인게임을 중심으로 급성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업체 중에 연매출 1000억원을 넘긴 ‘대기업’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화산업통계 중 게임분야의 전체시장규모가 대기업이 된 게임업체 하나의 연 매출액보다 작게 나온 것이다. 통계조사를 할 때 업계를 이끄는 선두 그룹이 모조리 빠져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믿을 수 없는 숫자는 효과적인 정책수립을 방해한다. 객관적인 숫자가 없으니 ‘감’에 의존하는 즉흥적인 발상만이 난무하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감만 가지고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가 없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 난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지역문화도 마찬가지로 숫자적으로 관리될 때 비로소 합리적이고 합의적인 정책수립이 가능해진다. 요즘 문화관련 공무원들을 보면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고 정말 열심히 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찬보다는 욕을 얻어먹기가 일쑤다.
노력은 하되 정확한 부분에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집중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의 문화욕구와 지역문화시장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숫자(통계)를 꾸준하게 축적하고 분석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문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각종 문화행사가 아닌 바로 ‘숫자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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