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공무원 시험 실패 불안감에 공황장애까지
친구 한 마디 큰 위안 '나만 겪는 고통 아냐'

대학 새내기 때 선배들과 '의리게임'을 한 적이 있다. 몸을 수직으로 세운 상태에서 후배가 그대로 뒤로 넘어지면 선배가 뒤에서 잡아주는 방식이다. 당시 나는 이 게임이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어떻게 누군가를 믿고 내 목숨을 걸 수가 있지? 그런데 내 동기들은 한 명씩 게임에 응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나는 경악했다. 나만 유별나게 그 게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겁이 유난히 많다. 다른 사람들을 잘 못 믿는다. 그런데 몇 년 전 이런 나를 변화시켜준 계기가 있었다.

조선소에서 일할 때였다. 한가로운 휴일 오후였지만 나는 초소를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연이은 공무원 시험 실패, 나란히 날 떠나간 여인들, 답이 안 나오는 미래, 더 심하게 조여 오는 공황장애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불안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앞은 깜깜했고 내가 내딛는 한걸음에 1톤 정도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갑자기 밤이 오는 것이 무서워졌다. 내일 아침까지 이 칠흑 같은 초소를 지키며 시간을 버텨내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내 삶이 앞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었다. 그 힘든 순간만이라도 피하고자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저 친구의 딱 한마디가 내 안에서 폭발했다.

"죽기밖에 더하겠나?"

당시 이 말이 내게 준 위안은 엄청났다. 아, 남들은 이렇게 생각하나 보다. 오늘도 죽고 어제도 죽은 사람이 널렸는데, 나만 뭔가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마치 이 조선소 철근을 다 짊어지고 사는 사람처럼 괴로워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가진 강박에 대해서 깨달았다. 내 목숨이 전 우주에서 유일하고, 특별하다는 의식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 우주에 비하면 내 존재는 참 티끌인데 말이다. 그렇게 온 신경을 다 쏟으며 초조하게 지켜낼 것이 없단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또 다른 친구는 캐나다에서 어마어마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바로 앞에서 목격했던 경험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친구는 그 자연의 웅장함에 자신의 존재와 위치, 방향, 죽음의 고통조차 깜빡 잊어버리고 거기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그 현상은 이 세상 모든 골치 아픈 것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친구의 무의식적 신기루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은 매우 미약한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아무리 아파해봐야 그 고통은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서는 티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당시 내 안의 암세포처럼 번진 두려움을 없애는 데 죽음의 가벼움만큼 좋은 약이 없었던 것이다.

/시민기자 황원식

※ 본 기사는 경상남도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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