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사내 하청업체-우리는 이렇게 망했다] (3) 원청 어려움은 협력사 몰락으로

고재호 전 사장이 저지른 분식회계를 다시 바로 잡아 올해 5월 발표한 대우조선해양 사업보고서를 보면 사내 협력사 대책위 주축 6개사가 어려움을 겪은 때와 원청사 적자 시기는 거의 일치했다. 대형 조선소 적자 주범으로 잘 알려진 해양플랜트 저가 수주와 기본설계 능력 없이 무리한 일괄(EPC) 수주가 원청사(대형 조선사)와 사내 협력사를 함께 몰락시킨 원인임도 잘 드러났다.

◇원청사 대규모 적자, 사내 협력사 몰락으로 = 고 전 사장은 2012년부터 2014년 회계연도 예정원가를 임의로 축소하거나 매출액을 과다 계산하는 등의 방법으로 순자산 기준 매출 약 5조 7059억 원, 영업이익 기준 2조 7829억 원 상당의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이렇게 허위로 꾸민 회계와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얻은 신용등급으로 2013∼2015년 은행으로부터 21조 원 상당의 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또한, 임직원에게 4960억 원에 이르는 과다 성과급을 지급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올해 5월 11일 정정 공시한 대우조선해양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1년 매출 13조 8633억 원, 영업이익 1조 5613억 원이던 영업실적은 2012년 영업이익 -720억 원(매출 13조 5432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2013년 매출 14조 5848억 원, 영업이익 -1조 100억 원, 2014년 매출 15조 5753억 원 영업이익 -5598억 원, 2015년 매출 15조 4436억 원 영업이익 -2조 1244억 원으로 기록적인 적자가 났다. 2016년 매출액은 12조 8192억 원으로 줄고 영업이익은 -1조 5308억 원으로 적자가 이어졌다.

눈여겨볼 부분은 적자 발생 시기에 선박(상선 혹은 조선)과 해양·특수선 사업 분야 매출 비율이 역전했고 그 직전 신규 수주량에서도 역전이 일어난 점이다. 특수선으로 불리는 방산 매출액은 연간 약 1조 원 전후로 이걸 해양·특수선 신규 수주·매출액에서 빼면 해양플랜트 수주·매출액 추정치가 나온다. 2011년 신규 수주는 선박 7조 4559억 원, 해양·특수선 5조 5662억 원으로 선박이 더 많았지만 2012년에는 선박 1조 4983억 원, 해양·특수선 13조 8432억 원이었다. 특수선 1조 원을 뺀 해양플랜트 수주액은 선박의 8.57배였고, 2013년 신규 수주도 선박 5조 9472억 원, 해양특수선 9조 5283억 원으로 해양플랜트가 1.4배 많았다. 해양특수선 신규 수주액이 다시 선박보다 못 미치는 것은 2014년(선박 13조 3718억 원·해양특수선 3조 1464억 원)부터였다.

▲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의 해양플랜트 전문 건조구역인 H안벽 전경. /연합뉴스

◇해양플랜트 물량 확대, 원청사·사내 협력사 적자로 = 해양플랜트는 수주 뒤 기본설계와 자재 구매, 생산설계까지 보통 1년 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리며 생산은 그 뒤 이뤄진다. 2012·2013년 대규모 해양플랜트 수주는 2013년 이후 대규모 적자로 이어졌다. 연도별 사업 부문별 매출액 비중을 보면 2011년 선박 66.9%·해양특수선 29.8%, 2012년 선박 48.99%·해양특수선 38.42%에서 2013년 선박 43.46%·해양특수선 48.62%로 역전된다. 2014년 선박 34.4%·해양특수선 55.4%, 2015년 선박 38.8%·해양특수선 52.6%로 2014·2015년 해양플랜트 분야 매출액 비중 확대는 정점을 찍었다. 해양플랜트 매출액 비중 확대는 대규모 적자가 난 시기(2013년부터)와 정확히 일치했다.

최근 문제를 제기한 대우조선해양 피해 사내 협력사 대책위 주축인 6개사 모두 해양플랜트에서 일했다. 1개 업체를 빼고는 모두 대우조선해양 대규모 적자 시기 사업을 시작했다. 결국, 최대 3년 6개월, 최소 1년 6개월 만에 상당한 빚을 안고 사업을 접었다.

이 시기 대규모 분식회계가 있었으며 1조 원 이상 적자가 회계상 흑자로 둔감했다. 대책위의 한 사내 협력사 대표는 "우리는 속았다. 이런 대규모 적자가, 특히 해양플랜트에서 나는 줄 알았다면 이때 누가 사내 협력사로 들어갔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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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 부족, 생산 공정 비표준화로 인력만, 인력만 = 대우조선 출신 사내 협력사 대표인 박 씨는 "상선은 생산 공정이 거의 표준화됐다. 적자든, 흑자든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해양플랜트는 기본설계 능력 부재와 생산 경험 부족으로 돌발 상황도 잦고 설계 변경도 많아 인력 투입 정도를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되짚었다. 또 다른 사내 협력사 대표는 "선행 작업은 능률(상응 시수/투입 시수)이 75%가 되면 손익분기점이 된다는데, 후행은 설계 변경이 더 잦고 돌발 작업도 더 많았다. 원청사가 이에 맞는 시수를 다 반영해주지 않으니 적자 폭이 더 클 수밖에 없었고 능률도 80∼85%는 돼야 손익 분기점이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노조도 이들 협력사 몰락은 여러 관점으로 봐야 하지만 해양플랜트 기술력 부족도 사태의 주요 원인임을 암시했다. 노조 관계자는 "해양플랜트 대규모 적자는 크게 세 가지에서 비롯됐다. 저가 수주, 기본설계 기술력 부재, 이에 따른 생산 인력 예측 부족과 물량팀 중심의 대규모 인원 투입이었다"며 "해양플랜트 분야에서는 정규직이 10%, 사내 하청 인력이 90%였다. 사내 하청 인력은 다시 상용직(사내 협력사 정규직)과 물량팀(재하도급) 비율이 5대 5이거나 물량팀이 60% 이상 차지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해양플랜트 분야 저가 수주, 기본설계 등 엔지니어링 기술력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한 일괄(EPC) 수주, 발주사의 잦은 설계 변경 요청, 비표준화한 생산 공정, 이에 따른 부정확한 인력 투입 중심 작업 행태 등이 원청사 적자를 키웠고, 적자에 따른 기성금도 줄면서 사내 하청업체 어려움이 가중된 셈이다. 사내 협력사 파산은 이들 업체 상용직과 물량팀의 임금 체납 증가, 실직 등 악순환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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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원-하청 구조 합리적 재편 필요 = 여러 차례 의견 개진 요구에 대우조선해양은 18일 "공정거래위에 신고됐고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서 최대한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만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인 제윤경(비례) 국회의원은 "대우조선해양 문제는 방만 경영, 분식 회계, 낙하산 인사 등 정부와 기업에 그 책임이 있지만 피해는 사내 협력사가 지는 사례"라며 "특히 대우조선이 관행처럼 해오던 불공정 거래가 지금 사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제 의원은 "이후 국회 차원에서 조선산업 불공정 관행을 더 자세히 살펴 이런 관행을 근절하고 피해를 본 분들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으로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인 산업은행을 담당하는 제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대우조선해양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대우조선노조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노조 한 관계자는 "원-하청 간 계약이 불공정한 부분은 공정거래위 조사 결과에 따라 내부 TF팀 등을 꾸려 개선해나갈 문제"라며 "하지만, 사내 협력사는 그간 적절한 수준의 이익을 남기다가 2015년 10월 1차 공적 자금을 지원받기 전후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함께 어려워진 면도 없지 않다. 일부 업체 대표는 회사가 어려워지자 재산은 따로 챙기고 고의 부도를 내며 나간 예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시선을 두고 피해업체 대책위원장 ㅇ(47) 씨는 "일부 사내 협력사가 재산을 빼돌린 사례도 있지만 현재 문제를 제기하는 대다수 업체는 해양플랜트 적자가 한참일 때 사업을 시작해서 불합리한 계약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원청사가 제공한 경우"라며 "솔직히 일부 부도덕한 업체 탓에 양심적으로 사업을 한 대표들까지 안 좋은 시선으로 본다. 이게 우리를 더 힘들게 만든다"고 하소연했다.

도내 경제계 한 관계자는 "국내 해양플랜트산업 기술력 향상과 조선소 원청사와 사내 협력사간 합리적인 계약 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기본설계 능력 부족과 기자재 낮은 기자재 국산화율이 결국 사내 협력사 기성금 꺾기로 이어진 것 같다"며 "산업 정책과 연구개발 향상으로, 다른 한편은 해당 조선소 내 원-하청 시스템 재설정이 필요해보인다"고 조언했다.

조선소 사내 하청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 문제를 해결도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김춘택 금속노조 경남지부 조선하청조직사업부장은 "원-하청간 불공정 거래에서 시작한 조선소 내 다단계 하청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데 조선해양산업 시황이 어려워지면서 현장에서는 다단계 구조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 원청사가 기성금을 줄이면 사내 하청업체는 물량팀을 쓰고, 그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김 부장은 "이 다단계 하청 인력 시스템을 멈추지 못하면 조선산업에 만연한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일당 안에다가 퇴직금과 4대 보험까지 다 포함해 주는 포괄임금제는 다단계 최하위 노동자 미래까지 갉아먹는 부분이다. 이들 문제 해결은 장기적으로 조선소 내 원-하청 불공정 거래 행위가 줄어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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