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20) 마무리…최원석 경상대 교수 인터뷰
일제강점기 '진산'개념 무너져
지역 정체성·문화역사 복원해야

"그래, 열 달을 돌아다녀 보니 우리에게 산은 무엇이던가요?"

<경남의 산> 연재를 마무리하며 다시 만난 경상대 명산문화연구센터 최원석(54) 교수가 던진 질문이다. 산의 인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답게 산과 인간의 관계를 물어온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진산(鎭山)이다.

진산은 조선시대 기초 행정단위인 군현(오늘날 시·군)마다 하나씩 나라가 지정한 고을을 수호하는 산이다. 조선 중기를 기준으로 전국 331개 고을에 255개 진산이 있었다. 조선 후기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를 보면 고을마다 진산이 표시돼 있다. 이 지도는 우리나라 산을 큰 나무처럼 그렸다. 뿌리는 백두산이고 등줄기는 백두대간이다. 줄기마다 다시 뻗어나간 큰 가지가 13개 정맥이다. 여기서 다시 잔가지가 전 국토에 퍼져 있다. 가지 끝에 꼭지가 있고 꼭지 끝에 열매가 맺혔다. 그 열매가 330여 개 고을이고, 꼭지가 바로 진산이다.

최원석 교수. /유은상 기자

"백두대간에서 뻗어나간 산줄기를 긴 호스에 비유해봅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스 끝에 달린 수도꼭지겠습니다. 수도꼭지가 고장 나면 산줄기가 아주 좋아 봐야 소용없지요. 이 수도꼭지가 바로 진산이고, 시·군마다 있는 주요한 명산이죠. 이 꼭지를 잘 보살펴 소통이 잘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진산은 기본적으로 그 지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산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진산은 한 고을의 공간구조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와 같은 거지요. 진산을 축으로 해서 도로라든지 조선시대 관아라든지 생활공간 등이 배치되고 그 축이 지금까지 유효한 경우가 많죠. 그래서 나중에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서는 진산이 주산 개념으로 바뀌게 됩니다. 고을을 수호하는 산에서 고을의 주가 되는 산으로 진화한 것이죠."

이렇게 진산은 주민의 삶과 생활, 의식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주산이면서 지역 정체성과 문화역사의 중심축이 된 것이다. 진산과 이어진 고을 공간에서 모든 게 어우러지고 빚어져서 '지방색'이란 것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산과 삶터로서의 마을 공간이 통합되는 것은 아주 한국적인 특징이다. 그만큼 산이 주민의 삶과 관계가 깊었다는 말이다.

함안

하지만, 삶터와 함께하던 진산 개념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상당부분 파괴된다.

"근대화되면서 특히 일제강점기에 도시 구조가 침탈을 당하죠. 읍성이 파괴되고 핵심 공간을 일본인이 점거하면서 전통적인 부분도 많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전쟁까지 겪으면서 산과 삶터에 관련된 개념이 완전히 무너지는 수준까지 오죠."

최 교수가 산의 인문학을 연구하는 것도 결국 오랜 삶터와 관련된 진산의 가치를 복원하려는 뜻이다.

"10년을 생각하고 7~8명의 동료가 함께 진산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단은 가치를 발굴하고 복원해 놓으면 앞으로 연구를 할 건 하고 보존할 건 하고 이렇게 할 수 있겠죠. 이제 산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질 시기가 된 거 같아요. 지금까지는 대체로 생태 중심, 등산 인구 중심으로 산을 다뤘다면, 이제는 역사 전통적 가치를 살려야 하는 거죠."

고성

이런 의미에서 최 교수는 <경남의 산>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산을 인문학적으로 다룬 취재라고 평가했다. 물론 진산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찾아보려는 초반의 야심 찬 의도에는 한참 모자라긴 하다. 관련 자료나 증언을 얻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쉽지 않죠. 우리가 하는 진산 연구도 아직은 기초자료를 모으는 수준이에요. 하지만, 실제 기사를 보면 연구에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경남의 산> 같은 기사가 파급이 되어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기획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찾아보면 다들 얼마나 이야기가 많겠습니까."

[참고 문헌]

<산천독법>(최원석, 한길사, 2015)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최원석, 한길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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