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사내 하청업체 우리는 이렇게 망했다] (2) 공정위 신고 주요 내용 살펴보니
대우조선해양 폐업 협력사 하도급법 위반 공정위 신고
단가 협의 없이 일방적 책정공사 후 계약서 작성도 잦아
기성금 상세 명세서 공개 안해

박 씨처럼 대우조선해양에서 협력사를 운영하다가 빚더미에 앉고서 사업을 접은 사내 협력사 대표 6명. 이들 주도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책위를 꾸려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 국민권익위와 정치권에 호소해왔다. 대책위는 현재 참여업체가 10개사가 넘는다고 했다.

지난해 7월 8일 6개사 중 4개사 대표가 공정거래위에 신고했고 분쟁조정원에서 조정을 거쳤지만 원청사와 견해 차이만 확인했다. 작년 9월 30일 공정위 부산사무소로 사건이 넘어갔고, 올해 5월 기간 만료로 다시 공정위에 유사한 내용으로 4개사 대표가 신고서를 냈다. 원청사인 대우조선해양이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하도급법) 위반 행위'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 4개사 대표는 "사실상 단순 임가공업이다 보니 원청사인 대우조선해양 측이 제시한 계약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빚더미에 앉았다"고 하소연했다.

한 업체 2014년 1월 1일 자 단가계약서.

◇"선 시공, 후 계약으로 하도급법 위반" = 이들이 공정위에 신고한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먼저 견적·계약·정산에 대한 서면을 교부하지 않아 하도급법 3조(서면의 발급 및 서류의 보존) 1항 1호 위반을 들었다. 3조 1항 1호는 '제조위탁의 경우 수급사업자가 제조 등의 위탁 및 추가·변경위탁에 따른 물품 납품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한다고 돼 있다. 보통 제조위탁은 공사 전 견적서를 뽑고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사 시행 뒤 정산합의서를 작성하는데, 대우조선해양은 우선 공사를 수행(선 시공)하고서 사후 계약서를 작성(후 계약)한 예가 잦았다고 했다. 견적서, 정산합의서와 계약서 작성을 한꺼번에 한 적도 있었다고도 했다.

4개사 대표는 "이런 계약 절차 위반은 원청사가 현저하게 낮은 실행 예산을 일방적으로 책정해 투입 인원·공사 수행 물량 등 실제 공사 수행 능력에 적합한 공사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오직 원청사 실행 예산에 맞춰 사내 협력사에 비슷한 비율로 공사대금 기준을 적용해 지급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후행 의장(관철) 작업을 했던 한 협력사 대표 ㅊ(54) 씨는 외주시공계약서를 예로 들었다. 2014년 2월분 기성금 정산합의서는 그해 3월 5일에 발행하고서 견적의뢰는 2월 27일, 외주시공계약도 2월 27일 했다고 한다. 시공계약서상 공사기간은 그해 3월 2일부터 3월 31일로 돼 있었다. 그런데 실제 시공계약서에 있는 계약금액은 2월분 정산합의서에 있는 공사대금과 일치했다. ㅊ 씨는 "2월에 이미 일을 시키고서 2월분 기성금을 주면서 견적의뢰, 시공계약서에는 3월에 할 일인 것처럼 작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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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도 알려주지 않아" = 두 번째는 계약서 작성 시 세부 내용을 알리지 않은 행위를 들었다.

2014년 1월 1일 자로 작성된 한 사내 협력사가 대우조선과 맺은 단가계약서 9항 첫 조항에는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사는 본 단가계약 체결 전 상기 단가에 대한 세부 내역과 인상률에 대한 상호 협의·합의 과정을 거쳤으며, 본 계약서상 단가는 협력사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전혀 이의가 없음을 확인한다'는 문구를 담고 있다.

이 업체 대표 ㅈ(62) 씨는 "단가가 어떤 근거로 정해졌는지 세부 구성 내역 없이 이 계약서가 전부다.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도 않고 협의·합의를 거쳤고, 협력사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본다며 날인만 강요한 행위"라며 "원청사에서는 구두로 했다는데, 단가에는 현장 투입 인력 임금만이 아니라 이들 4대 보험료, 국세와 지방세, 안전 장구 구입비, 피복비, 관리비, 관리인력 인건비, 상여금, 휴가비, 업체 대표 임금, 업체 이익금 등 다양한 항목이 포함된다. 이 복잡한 항목들이 어떤 비율로 구성되는지 구두로 이해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하도급법 3조의 4(부당한 특약의 금지) 위반이라고 했다.

◇"기성금, 어떻게 지급되는지도 알 수 없어" = 세 번째는 원청사가 공사대금(기성금)을 지급하며 지급 상세 명세를 공개하지 않은 점이다.

사내 협력사들은 매일 작업 인원과 관리 인원, 투입 시간을 원청사 측 전산시스템에 입력하고 이게 매달 모이면 공사대금을 결정하는 주요 구성요소가 되는 게 상식이라고 했다. 하지만, 협력사는 자기 회사 투입 인원과 작업 시간, 작업 상황은 입력할 수 있지만 다른 업체 것은 볼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니 타 업체 작업 진행률이 어느 정도이고, 이에 따른 공사 대금이 적정하게 지급되는지 알 길이 없다. 원청사가 내세운 '상응 시수'를 검증할 방법도 없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한 전직 사내 협력사 대표는 "월급을 받는 노동자는 자기가 이달 어느 정도 일해서 얼마를 받는지 월급명세서를 보면 다 아는데, 협력사들은 그런 명세서조차 못 받는 구조"라고 비유했다.

네 번째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전자 서명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피해업체 대책위원장 ㅇ(47) 씨는 "매월 1일부터 31일(혹은 30일)까지 일한 것을 다음 달 3∼4일, 늦어도 8일까지는 원청사가 공사대금(기성금)을 넣는다. 예상보다 대금이 적게 나와도 서명을 할 수밖에 없다. 서명을 하지 않으면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이 대금으로 매월 10일 직원 4대 보험료와 국세·지방세 납부, 관리비 등으로 쓰고 나머지로 매달 15일 직원 월급을 줘야 하니 원청사로서는 '이거라도 받기 싫으면 말아라'는 식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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