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죠? 그래도 자격지심은 떨쳐 버려요
족쇄 같은 '취준생'신분, 무력감·불공정함 상상 이상
주위 시선엔 스스로 위축돼

'취준생 일기'는 고단한 취업 전쟁에서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취업준비생 이지훈(26) 씨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말했다. 청춘은 늘 피 흘리는 동물과 같다고도 한다. 곳곳에 피 냄새를 맡고 노리는 이들이 가득하니 자신이 다치지 않도록 잘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기 취업 자리를 그만두고 대학 캠퍼스를 벗어나 사회로 나온 순간부터 나는 상위 포식자를 만나면 제 덩치를 두세 배쯤 부풀려야만 잡아먹히지 않는 정글에 도착한 셈이다.

내가 부여받은 이름은 취업 준비생. 적게는 6개월, 길게는 2년까지 독서실에 파묻혀 책을 보며 피와 살이 될 것들을 정갈한 공책에 글씨로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적어나갈 공부 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로 목돈을 만들어 좋은 옷도 사고 못 가 본 곳에 가서 그 풍경에 담겨있는 내 모습을 남길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이런 환상이 사실은 누군가의 '표적'이 됐다는 것을 잊게 해주는 좋은 핑계가 될 줄은 알지 못한 채.

내가 겪어내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은 을(乙) 중의 을이다. 족쇄 중에서도 아주 무거운 족쇄다.

"학생입니까?"

내가 찬 족쇄를 최대치로 실감하게 해주는 질문이다. 그러나 실상 그런 이유로 질문을 듣는 경우는 '만에 하나'쯤이다. 일상적으론 비교적 값비싼 물건을 살 때나 다른 연령층을 대면했을 때 내가 '누군지'는 경제적 능력을 얼마나 갖췄으며 앞으로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더 심각한 건 갈등의 상황에서다. 엉뚱한 차가 우리 집 내 주차공간에 대어져 있어 차를 빼달라고 요청하거나 새로 이사한 원룸의 주인과 부딪힐 때도, 주변 사람이 부당한 일을 겪어 해결사 역할을 해주고픈 마음에 앞장을 설 때마저도 이 '불공정'한 질문은 빛을 발한다. 초장부터 "학생 같은데"라며 반말을 날리는(?) 상대에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내 존재는 "그거 알아서 뭐하려고요"라는, 초라하면서도 갈등의 온도를 더 불사르는 역할을 톡톡히 할 뿐이다.

내 행동이 남들을 불쾌하게 하는 걸까. 혹은 요 몇 년 사이 유독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겪게 되는 걸까. 살면서 누구보다 바르고 이성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라왔다고 자부했는데, 이 지점에 와 있는 나는 너무 자주 넘어지고 있다.

어느새 '집 밖은 위험해'라는 우스갯소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격언이 됐다. 겉모습만 다 자라버린 취준생에게 무지와 나약함은 '모지리'가 되고 자존심은 멋도 모르고 덤벼드는 객기로 전락했다. 물론 모자람과 객기는 다듬어져야 한다. 일정 사회적 지위를 가져 타인에게 존경을 사는 사람도 일반 상식선에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지르는 게 쉽게 포착되는 사회에 있기도 하니까.

그러더라도 유독 이 취준생이라는 신분은 제련이 덜 된 쇠막대기처럼 누군가에겐 굽히면 구부러지고 강해지려면 때려줘야 할 것 같은 존재로 보이는 듯하다. '취준생'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자. 한숨이 나올 정도로 안타까운 결과들이 나온다.

"취준생인데 도저히 잠을 잘 못 자겠어요. 도와주세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겼는데 취준생이에요. 연애를 해도 될까요?", "월세를 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비가 아직 들어오려면 멀었어요. 취준생도 대출이 가능한가요?"

누군들 떨쳐 버리기 어려운 불안감에 잠을 쉽게 이룰 수 없는 날이 없고 연애에 대한 고민과 가난함에 대한 걱정이 없겠느냐만, 생애 어느 지점보다 문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스스로 구제해 나가기 어려운 시점이 취업 준비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취준생'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력감과 불공정함은 가히 상상 이상이다.

매일 잠들기 전 고민한다. 오늘 하루 내가 너무 예민했을까. 괜한 자격지심에 누군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진 않았을까.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징징대지 말아야지.

/시민기자 이지훈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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