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일운면 홀로 사는 노인, 집기 무거워 옮기지도 못해
주민, 도움 손길 간절…시 "피해지 많아 당장 어려워"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럴 때 도와주는 게 행정기관 아닙니까."

폭우가 쏟아진 다음날 거제 시가지 대부분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빠르게 제모습을 찾아갔지만 주택이 침수된 일운면 일대 마을은 지난 11일 오후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12일 오전에 찾은 일운면 회진마을, 교항마을 사람들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명조 회진마을 이장은 모두 50여 가구가 방까지 물에 잠기는 완전 침수를, 나머지 40여 가구는 부분침수를 당했다고 전했다.

이 이장은 "지난밤에 마을회관에서 10여 분이 주무시고 나머지 분들은 친지들 집에서 지낸 것으로 안다"며 "빨리 복구작업이 진행돼야 하지만 더디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시에서 장기적인 대책은 물론 복구와 관련해서도 많은 관심을 둬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2일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교항마을 주민이 토사를 치우는 모습.

수해를 당한 지세포로를 따라 길 양쪽으로는 버려진 가구나 가재도구들이 곳곳에 쌓였다. 집집이 비에 젖은 옷가지를 빨아 마당 가득 널어두고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비교적 젊은 가정이거나 도회지에 살던 자식들이 와서 거들어주는 집들은 그나마 조금씩 진척을 보였다. 그러나 혼자 사는 어르신 집들은 11일 모습에서 별로 바뀐 것이 없었다. 이들은 집 안의 침대, 장롱, 냉장고, 세탁기 등 무거운 집기를 꺼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방바닥을 덮은 흙탕물도 그대로였다.

김선자(61) 씨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난다. 시나 면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피해 현장 조사도 않고 동으로 직접 와서 피해접수를 하라고 한다"며 "늙고 병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무거운 장롱, 침대, 냉장고 등은 꺼낼 엄두도 못 내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체로 주택침수 복구현장에선 행정기관, 군부대, 적십자사, 전자제품 서비스센터, 민간단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마을에는 주민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에 대해 거제시는 "수해를 당한 곳이 많아 당장 인력지원을 못했다. 군부대 등에도 협조공문을 보내 13일 복구 지원이 되도록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권민호 시장도 이날 오후 4시께 현장을 방문해 수재민을 위로했다. 권 시장도 이 자리에서 인력 등 복구지원을 약속했다.

회진마을 주민이 물에 젖은 빨래를 널어 놓고는 망연자실하고 있다.

이웃한 교항마을에서도 복구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들리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윤이원(67) 씨는 집기를 마당으로 끄집어내고 마당에 쌓인 토사를 치우면서 쉼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씨.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일을 당하는지….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소연했다.

일운면 소동리 소동마을은 그나마 회진, 교항마을보다는 활기가 엿보였다. 마을 골목에서는 거셌던 물살에 떠내려온 아스팔트 덩어리를 굴착기가 치우고 있었다. 또 많은 인력이 집집이 투입돼 폐기할 가재도구 등을 꺼내 수레로 옮겨내고 있었다. 이들은 피해 원인으로 지목되는 대단지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지원한 인력과 장비라고 했다.

이 마을은 완전 침수 17가구, 부분침수까지 포함하면 40여 가구가 피해를 봤다.

김영욱(58) 소동마을 새마을지도자는 "피해 주민들은 어제 마을회관에서 잤다. 정확한 원인 파악과 보상, 재발방지 등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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