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메릴…한국문학 관심 많아 번역 '꾸준'
와고 료이치…일본 후쿠시마 거주·사고 실상 알려

지난 주말 진해는 시와 노래로 감성을 깨우고 일상 속 여유로움을 더했다. 9~10일 창원시 진해문화센터와 경남문학관, 김달진문학관 등에서 제22회 김달진문학제가 열렸다. 지역 문인을 포함해 전국 유수 시인들이 참가해 김달진 시인의 문학세계와 시 정신을 기렸다. 문인들 사이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시인이자 작가·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메릴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피해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와고 료이치 시인이다. 각각 창원KC국제문학상 수상자와 국제시낭송콘서트 낭송자로 문학제를 찾은 그들을 차례로 만나 문학작품 특성과 세계를 들여다봤다.

◇번역 시는 하나의 예술작품 = 9일 문학제 기념식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창원KC문학상 수상 기념 메달을 목에 건 크리스토퍼 메릴은 "한국 시의 영적인 정신세계와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메릴

6권의 시집과 논픽션을 펴낸 메릴은 한국문학에도 관심이 깊다. 김달진 시인이 편역한 <한국선시>를 김원중 교수와 공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그의 글은 40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현재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다. 메릴은 영어로 번역된 시가 단순히 '번역 시'로서 가치가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기를 지향한다. 특히 여러 언어로 지어진 작품을 영어로 옮길 때 음악성, 리듬감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둔다고.

"시를 쓰는 건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다. 언어로 음악을 만들어 냈을 때 온전한 나 자신이 완성된 느낌을 갖는다."

종군기자로도 활약한 메릴은 전쟁터에서 많은 죽음을 목도하면서 생명과 죽음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의 시가 기억, 신앙, 전쟁, 죽음 등을 통해 생명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이유다.

메릴은 다음 달 김선우 시인의 시집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을 김원중 교수와 공역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글로 전하는 원전 피해와 아픔 = 10일 오전 김달진 시인의 생가 마당이 일순 고요해졌다.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 언어는 달랐지만 강렬한 눈빛과 결기에 찬 목소리, 주먹을 불끈 쥔 손짓에서 말로 다 전하지 못할 감정들이 온전히 느껴졌다.

따스한 가을볕 아래 국제시낭송콘서트에서 '슬픔'이란 시를 노래한 와고 료이치의 낭독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당시 지었던 시다. 1968년 후쿠시마에서 태어난 시인은 원전 사고로 방사능이 점령한 후쿠시마에 지금도 터를 잡고 있다. 일흔을 넘긴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아들과 함께.

와고 료이치

그의 시집 <시가 던진 돌멩이>는 지난 7월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돼 제1회 '눙크(NUNC) 리뷰 포에트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집 , <원자로 폐로 시편> 등을 펴냈으며 논픽션과, 에세이, 그림책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고등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교가, 합창곡 등을 작사했다.

와고는 지진과 해일 원전 사고로 혼란스런 상황에서 트위터를 통해 연작시를 발표해 후쿠시마 실상을 밖으로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의 시에는 원전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왜 원전을 없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비유적으로 녹아있지만 직접적으로 찬반 입장을 물을 땐 간결하다. 한마디로 "무조건 반대." 원전 사고로 엄청난 피해를 당한 지역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답변이다.

"일본은 원전 피해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 속에도 희망은 있고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다."

와고의 시는 천천히 그러면서 잔잔한 울림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