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욱 지음
의사 김정욱 SNS 연재 글·그림
일터 속 다양한 사람·사연 담아
창원서 만나본 저자 '겸손·따뜻'

<병원의 사생활>을 읽으면서 의사가 쓴 책을 더듬어 본다. 경제전문가로 유명했던 박경철이 쓴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김정환 산문집 <사람아, 아프지 마라>. 의사가 쓴 책이 한두 권이겠냐마는 의사 같지 않은(?) 의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두 권이 생각났다. 의사도 여느 인간만큼 따뜻한 심장을 가졌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세상은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

<병원의 사생활>의 저자 김정욱은 하나를 더 가졌다. 따뜻한 심장에 좋은 글솜씨뿐 아니라 미술을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다는 고백을 의심할 만큼 뛰어난 그림 실력이다. '하나만 잘하면 됐지, 너무하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질투가 난다.

저자는 이 그림과 함께 "저 발의 주인이 기다리는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의사의 일이 아닐까"라고 글을 남겼다. /페이스북 '드로잉닥터의 병원이야기'

수술방이 싫었고 인문학적 요소가 가미된 정신과 의사가 될 거라 믿었는데 신경외과 전공을 하고 있는 현실, 세 알이 든 초콜릿으로 치르는 그만의 고인에 대한 묵념, 어린 환자가 축구는 계속할 수 없지만 남보다 먼저 깨달아 지혜와 평온이 찾아오길 빌어주는 마음, 최선을 다했지만 생을 달리한 어린 환자의 보호자에게 꼭 좋은 의사가 되겠다는 약속 문자를 보낸 일, 명절에도 병실에서 무료하게 보내는 환자들을 위해 초코파이를 돌린 일, 든든한 간호사 선생님들께 경험이 부족한 레지던트를 의사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모습 등으로 만나는 저자는 어릴 때 보았던 드라마 <종합병원>에 등장하는, 인간미를 한쪽에 쌓아두고 있는 의사다.

지난 수요일 저자 김정욱을 만났다. 책을 읽고 너무 궁금하여 약속을 잡고 그가 근무하는 창원의 한 병원으로 찾아갔다. 서평을 쓰기 전 저자를 만나는 것은 이례적이다. 물론 저자를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다. 몇 달 전, 심장이 따뜻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로드췌'라는 닉네임을 가진 지인이 팟캐스트 녹음하는 곳에 저자 김정욱을 모시고 왔다. 긴 이야기는 못 나누었지만, 병원 일하는 짬짬이 그림을 그리면서 글을 적어 SNS에 연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눈이 크고 인물이 좋고, 겸손하고 잘 웃는 사람이라는 것까지 확인했다.

'좋은 의사 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그림. /페이스북 '드로잉닥터의 병원이야기'

병원 신관 로비 구석 커피숍에서 만났다. 마침 당직이라 응급실에서 연락이 와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크록스를 신었다. 수염은 드문드문,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그래도 큰 눈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처음 받은 인상 그대로다.

책을 읽고 저자와 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서평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만났다. 그런데 서평을 쓰는 지금 오히려 많은 내용이 더 방해가 된다. 그래도 몇 가지 대답은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남긴다.

병원과 환자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글을 적으면서도 많이 조심스러웠단다. 자신의 글을 위해 평생 각인이 될 환자 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선을 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의대생이 잘 하지 않는 휴학을 한다거나, 전공 교과서보다 인문학 서적을 탐독했던 시간들,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선택한 마산행 등 한길 시원하게 달려왔을 것 같은 기대를 살짝 빗나갔다. 둘러 가는 시간들도 즐길 수 있었고 그런 시간들이 더해져 단단해진 것 같았다.

책에서 만난 저자와 카페에서 대화로 만난 저자는 다르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만한 시간이었다.

344쪽, 글항아리, 1만 6000원.

/이정수 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엄마, 나 축구 계속 할 수 있어?"라고 묻던 아이의 사연을 들려주며 남긴 그림. /페이스북 '드로잉닥터의 병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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