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9) 창원…불모산~웅산~시루봉
창원서 가장 높은 불모산 '금관가야 서쪽'서 유래
바위능선 많은 웅산, 산꼭대기 바위 '시루봉' 과거 신선제 지내기도

경남 최대 도시 창원. 도내 최고 인구, 대규모 국가공단, 많은 상업시설 등이 떠오르지만 자연환경 또한 뛰어나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냈을 뿐이다.

창원은 통합 이후 넓어진 면적만큼 많은 명산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넓은 해안선을 끼고 있어 대부분 산에서 시원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어떤 산을 선택해 소개할까 하는 고민도 쉽지 않았다. 창원, 진해, 마산 지역마다 대표하는 산이 있고 특색도 다르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지역 차별에 대해 걱정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창원지역 산맥 종주를 생각했지만 무더위와 '저질 체력'을 핑계로 가차없이 접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불모산에서 시루봉(진해구)까지 구간이다. 창원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면서, 지금 시기에 바다 풍경을 즐기면서 산행하지 좋은 곳이라 판단했다.

시루봉 가는 길에 있는 현수교./유은상 기자

창원에서 가장 높은 산

불모산(佛母山·801m)은 창원시 성주동과 웅동, 김해시 장유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시작한 낙남정맥의 한 자락으로 창원 분지 동쪽에 형성된 산이다. 북서쪽으로는 정병산, 비음산, 대암산으로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장복산, 남쪽으로는 웅산, 시루봉으로 이어진다. 창원에서는 유일하게 해발고도 800m를 넘는 산이다. 불모산은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후를 기려 붙인 이름으로 잘 알려졌다. 허황후의 일곱 왕자가 모두 스님이 된 까닭에 허황후를 불모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종실록>에는 부을무산(夫乙無山)으로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취무산(吹無山)으로 기록돼 있다. 불모산이라는 이름은 1530년 발간된 <신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부을무산에서 '부을'은 서쪽을 뜻하는 '불'을, '무'는 산을 뜻하는 '뫼'의 변형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취무산의 '취' 역시 서쪽을 뜻하는 '불'을, '무' 또한 '뫼'의 변형된 표기인 셈이다. 이를 종합하면 불모산은 금관가야의 수도 김해에서 바라볼 때 '서쪽에 있는 산'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보는 것이 더 신빙성 있다.

산행은 장유 쪽에서 시작하는 임도를 따라 올랐다. 정상에 있는 방송·통신시설 덕에 시멘트 포장이 잘 닦여 있어 발걸음이 가볍다. 대신 오랫동안 비슷한 길을 걷다 보면 단조롭고 지겨운 생각이 들지만 4분 능선을 지나면서 김해 쪽 전망과 창원 쪽 전망이 차례로 열리면서 나름의 묘미를 일깨운다. 산악자전거 유명코스인 만큼 자전거를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적잖게 만나게 된다.

하지만 힘들게 오른 정상은 시원한 전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9분 능선부터 안개구름이 짙어지면서 20∼30m 앞도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상 아래쪽에서 만난 소나무는 안개 덕분에 몹시 운치 있다. 동행한 이서후 기자는 "신선이 된 것 같다. 정동진 고현정 소나무보다 훨씬 품위있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웅산 시루봉에서 본 눈부신 진해만./유은상 기자

웅산과 시루봉

정상은 군부대와 방송사, 통신사 안테나가 뾰족이 솟아 있어 눈을 찌른다. 또 이들이 정상자리를 차지하면서 철조망 안의 정상 표지석도 군부대에서 사진촬영을 막느라 천막으로 덮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정상은 창원시가 그 아래 만들어 둔 노을 전망대에서 만끽해야 하지만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니 역시 무용지물이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 하지 않았던가' 좋은 풍경을 전하고자 20여 분을 더 기다렸지만 끝내 하늘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바람을 맞고 있자니 풍욕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습습한 습기에 몸은 다소 축축해졌지만 시원한 바람에 세상 근심이 다 씻긴 듯 마음은 한층 가벼워졌다.

불모산 등산로에서 만난 운치 있는 소나무./유은상 기자

정상에서 내려와 철조망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걷는다. 고도가 내려간 덕인지 수평으로 선을 묵직한 구름 덩어리 아래로 용원과 부산신항 쪽 경치가 지나는 안개 사이로 틈틈이 예고편처럼 노출된다.

웅산에서 만나게 될 풍경에 대한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진다.

그러나 금세 숲길에 접어들면서 가득 내려앉은 습기 탓에 길이 꽤 미끄럽다. 산길 주변에 독버섯들도 군락을 이루고 있어 꼭 열대밀림 지역에 온 느낌마저 든다.

30분가량 걸었을까? 장복산으로 이어진 산자락이 합류하는 지점을 지나면서 구름에 덮여있던 하늘이 맑은 표정으로 다가온다. 뒤를 돌아보면 장복산 지맥이 왼쪽 옛 진해와 오른쪽 옛 창원을 가르며 대조적인 모습이 펼쳐진다. 진해가 군사도시라 하지만 삼엄함이나 긴박감 없이 오히려 더 평온하다. 아무래도 바다 때문일 테다.

웅산에 가까워질수록 바위능선 구간이 많아진다. 앞에 걸었던 숲길이 싱그러움을 줬다면 이곳은 바위를 오르내리는 아찔한 재미를 전한다.

특히 진해방향으로는 절벽 구간이 많아 화면이 더 넓어지면서 입체감까지 깊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시원한 바다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면서 산행을 할 수 있다. 멀리 거가대교가 미니어처처럼 보이고 바다 너머 거제도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바다를 중심으로 보면 한 동네나 다름없다.

웅산(熊山·710m)에는 정상표지석이 2개나 설치돼 있다. 웅산은 웅동, 웅천 지역의 진산으로 장복산, 불모산에서 이어진 줄기가 김해와 경계를 이룬다. 잠시 숨을 고르고 발길을 옮기면 곧장 706봉이 나오고 다시 현수교를 지나면 시루봉이 눈앞을 막아선다. 1시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시루봉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어떻게 높이 10m, 둘레 50m의 바윗덩어리가 산 정상에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을까? 생성 원인을 설명하며 화산작용, 침식작용 등 과학 용어가 동원되지만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누군가가 쌓았거나 옮겼다고 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질 정도니 옛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신라시대에는 국태민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고, 고을에서 봄가을 대제를 지낼 때는 '웅산신당'을 두어 산신제를 지냈다고 전한다.

인터넷 지식 백과와 각종 산행 기사에서는 1.7㎞가량 떨어져 있는 웅산과 시루봉을 구분없이 표기하면서 혼동을 주고 있다. 이를 확인하고 바로 잡는 것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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