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일본으로 들어갑니다

온통 하얗다. 창원 경남도립미술관에서 가로수길 방향 큰 사거리를 지나 골목길로 접어들면 하얀 타일이 발라진 반지하 건물이 하나 있다. 주변 풍경과 이질적이다. 그래서 이곳만 집중해 볼 수 있다. '당기시오(ひく)'라고 적힌 삐걱거리는 하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레 향이 코를 찌른다. 창원 '모루식당'이다.

모루식당은 일본의 한 작은 마을에서 마주한 집 같다. 환하지 않은 식당은 아늑하다. 튼튼해 보이는 나무로 잘 짠 테이블, 투박하지만 귀여운 의자가 곳곳에 놓여있다. 한쪽 벽면에는 일본 요리 영화(<안경>, <리틀포레스트>,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소리 없이 나오고 있다.

왜 모루식당에는 손님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지 알겠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고 있다. 마치 일본으로 여행을 온 기분, 즐거운 상상을 하고 싶다.

매일 달라지는 일본식 카레+정성 들인 가르니튀르

김정관(33) 주인장은 지난해 겨울 모루식당을 열고 오늘의 카레와 간단한 음료를 팔고 있다.

오늘의 카레는 신선한 재료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소고기, 돼지고기, 병아리콩, 시금치, 치킨.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어요. 요일을 정해놓고 내놓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재료 사정을 고려해 메뉴를 정합니다. 그리고 매일 되는 새우크림카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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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카레정식. 다이아몬드 모양을 한 흰밥을 중심으로 왼쪽이 새우크림카레. 오른쪽이 시금치카레다. / 이미지 기자

모루식당의 메뉴는 간단하다. 오늘의 카레를 먹든지, 매일 되는 카레를 선택하면 된다. 아니면 둘 다 먹을 수 있는 반반카레를 주문하면 된다. 여기에다 크로켓과 치킨 가라야케, 새우튀김을 하나씩 맛볼 수 있는 정식메뉴가 있다.

자리를 잡고 메뉴를 정하고 계산을 하면 종업원이 음식을 가져다준다.

취재한 날은 시금치카레였다. 넓은 접시에 하얀 밥과 연한 풀색을 띤 카레가 담겼다. 건더기가 없는 딱 일본식 카레다. 고명으로 단호박과 방울토마토, 아스파라거스, 고구마튀김이 올려져 있다. 주인장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다.

"가르니튀르(고명)도 직접 만듭니다. 일일이 굽고 튀기지요. 보통 연근이 올라가는데 요즘 제철이 아니에요. 그래서 고구마로 바꿨습니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게 담긴 카레를 숟가락으로 살살 비벼 한술 떴다. 부드럽다. 그래서 밥알이 톡톡 튄다. 은은한 카레 맛에다 느끼함을 잡는 마늘 향이 입안에서 확 퍼진다. 튀김도 카레에 푹 찍어 베어먹으니 궁합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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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가락에 두 가지 맛의 카레를 먹을 수도 있다. / 이미지 기자

짙은 노란색을 띤 새우크림카레도 한입 크게 먹었다. 바닷내음이 살짝 풍긴다. 건더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오동통한 새우살이 씹힌다. 예상치 못한 만남이라 반갑다. 카레를 휘휘 저어보니 새우가 푸짐하게 들어 있다. 모루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모루식당의 카레를 한 번씩 다 맛보고 싶다면 모루식당 인스타그램(moru_changwon)을 활용하면 된다. 김 씨는 매일 모루식당 메뉴를 알리고 소소한 정보를 알려준다.

"양파를 볶아 감칠맛 살리는 게 비결"

카레는 누구나 쉽게 만들지만 맛은 확연히 다르다. 주인장은 양파를 잘 쓰면 된다고 했다.

"하루에 200인분을 만드는데 그러려면 먼저 양파 40~50개를 다져서 볶아요. 양파카라멜라이즈가 되게 2시간 정도 계속 저어줘야 해요. 그런 다음 일본카레가루와 물, 재료를 섞어 만듭니다. 우스타소스도 약간 들어갑니다. 양파를 볶고 안 볶고 차이가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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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루식당 내부 모습. / 이미지 기자

손님 중에는 이 정도 비법도 아쉬워 어떤 카레가루를 쓰는지 묻는단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비밀이다.

이는 모루식당마다 다른 맛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릇에 가득 담다'라는 뜻일 지닌 모루(もる)식당은 부산과 통영, 구미 등에 있다. 하지만 체인점이 아니다. 부산에서 먼저 문을 연 모루식당 주인장이 식당을 열고 싶다는 지인에게 가게 이름과 콘셉트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단다. 김 씨도 그중 한 명이다.

"미국에서 7년 동안 매니저 일을 했어요.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 제 사업을 열고 싶었죠. 모루식당을 시작한 사장님이 아는 누나랍니다. 제 뜻을 잘 알죠. 부산 모루식당에서 한 달 넘게 카레를 만들고 일본에도 두어 번 왔다 갔다 했어요. 가게에 있는 일본 소품도 직접 사 온 거고요. 우리 가게는 부산과 분위기가 비슷해요. 일본의 한 골목길에서 마주한 작은 식당 같죠."

일상을 천천히 음미하는 공간이 되길….

창원에 연고가 없는 주인장은 여기저기 가게를 알아보던 중 창원 경남도립미술관 맞은편 골목에 매력을 느꼈다. 곰팡이가 그득했던 반지하를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1년이 채 안 된 가게는 대기를 해야 할 정도로 북적인다. 대부분 단골이란다.

김 씨는 사업가 기질이 다분하다.

모루식당을 준비할 때도 하나하나 꼼꼼하게 준비했다. 부산 모루식당에서 일을 했고 일본도 두 번 다녀왔다. 창원에 있는 카레 집마다 들러 맛을 봤고 가로수길 카페도 섭렵했다.

그는 미국에서 매장관리 등 매니저 일을 하면서 자신의 가게를 내어 경영하고 싶다는 꿈을 늘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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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 사진 가운데가 김정관 주인장이다. /이미지 기자

"첫 시작은 모루식당이에요. 지금 사촌 여동생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조만간 모루식당을 동생에게 맡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거든요. 모루커피나 모루카페처럼 '모루'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요. 아직은 구상단계지만 곧 구체화할 겁니다."

그렇다고 김 씨는 조바심내지 않는다. 가게를 키우고 싶어 무리하게 손님을 받지 않고 어쩌면 느릿해 보이는 모루식당 분위기를 바꿀 생각도 없다.

모루식당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밥을 먹고 사진을 찍으며 이 시간을 즐기는 손님을 배려한다. 그는 내내 흘러나오는 일본 영화들처럼 일상을 천천히 느리게 보내라고 말한다.

카레를 말끔히 비우고서 계단에 올라서면 '미시오(おす)'라고 적힌 하얀 문과 마주한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다시 거리로 나서는 길은 막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공간이 머금은 따듯하고 이색적인 기운 덕에 더 맛난 한 끼다.

<메뉴 및 위치>

메뉴 △오늘의 특선카레(인스타그램 moru_changwon 공지) 8000원 △새우크림카레 8000원 △반반카레 9000원 △정식메뉴 2000원 추가

위치: 창원시 의창구 용지로 265번길 7(용호동 10-8)

전화: 055-606-5656(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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