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즐겁다

1주간의 여름 휴가 중 5일째였다. 점심 무렵 전화가 왔다.

"조 부장 어디야?" 내 공식 직책은 경제부장 직무대리이고 직급은 차장이다. 회사에서 만들어준 명함에는 '직무대리'가 빠져있다. 재미있게 말하자면, 차장이면서 부장이라고 구라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차장 월급 받고 부장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집입니다. 휴가입니다. 형님은요?" 내가 활동하는 모터사이클 클럽 블랙라벨의 직전 회장이고 나 보다 네 살 많은 형님이다.

"나도 휴가인데 얼굴 본지도 좀 됐고…". 이렇게 얘기하면 이쪽에서 빨리 알아야 들어야 된다. 왜 전화했는지.

"한바리 해야 되겠죠?"

"콜!"

"근데 지금 밖에 34도인데요. 오랜만에 밤바리할까요?"

"좋지."

"그럼 통영 가서 커피나 한잔 하고 오죠."

"그러지. 몇 시?"

"진동 쪽에서 6시에 뵙죠."

"나중에 봅세."

전화를 끊고 곁에 있던 각시에게 말한다. "들었지? 나 저녁에 한바리 해도 되지?", "다녀와 …."

123.jpg
▲ 진주시 이반성면. 석양 무렵의 장엄한 풍경은 언제나 나를 감동하게 하고 더욱 겸손하게 한다. / 조재영 기자

 

각시의 승인을 얻자마자 클럽 카페와 밴드에 밤바리 번개 공지를 띄운다.

위키백과에 밤바리가 나온다. "밤바리(Bambari)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남부에 위치한 도시로, 와카 주의 주도이며 높이는 465m, 인구는 4만1356명(2003년 기준)이다. 시내에는 공항이 있으며 근교에는 대규모 철광석 광산이 매장되어 있지만 해안선에서 1500km 정도 떨어져 있는 데다가 철도 등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탓에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설명돼 있다. 그렇다고 설마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투어를 가자고 공지를 띄웠을까?

모터사이클, 바이크 라이더들이 말하는 '밤바리'는 "밤에 한 바퀴 한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은어다.

나는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 한낮에 버프, 헬멧, 장갑, 자켓, 부츠로 무장을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은 일종의 자학에 해당한다고 본다. 예전에는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더위고 추위고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내달리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도 너무 답답할 때는 '자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숨 고르기를 하고 참는다. 그리고 달릴 만 할 때 달린다.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한여름에는 '달릴 만 할 때'가 바로 밤이다.

1주간의 휴가, 첫 행선지는 제주도

밴드와 카페에 댓글이 두어 개 달렸다. 회원 몇 명이 참석하겠다는 표시다. 오후 5시쯤 준비를 해서 6시까지 약속 장소로 달린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는 아직까지 찌는 듯한 한낮의 열기가 남아있다. 온몸에 부딪혀오는 바람도 뜨뜻하다. 매연을 걸러내고 얼굴이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피하려고 버프로 목덜미부터 눈 아래까지를 가리지만 이런 날은 버프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뜨듯미지근한 바람이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마주하는 바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곧 해가 지면 이 바람도 시원해지리라.

사실 이번 휴가는 기자로 일 한지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3년 전 다녀왔던 열흘짜리 유럽여행 제외하고) 1주일씩이나 여름 휴가를 냈다. 휴가 첫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제주도에서 보냈다. 성수기여서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했고, 급하게 배편을 알아봤는데 마침 자리가 있었다. 차 2대를 배에 싣고 갔다. 내 모터사이클을 싣고 갈까 생각도 해봤다. 각시가 제주도에서 모터사이클을 한 번 타보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며 슬쩍 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과 함께 가는 여행인 데다, 가족들과 함께 가는 여행에 나만 모터사이클을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123.jpg
▲ 통영 강구안 마당에서 흥겨운 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다. 오른쪽 위에 동피랑과 동포루가 실루엣으로 보인다. / 조재영 기자

 

더구나 내 1200cc 모터사이클은 보통 자동차보다 훨씬 작은 자리를 차지하지만 뱃삯은 자동차 만큼 비싸다. 왕복 요금이 26만 원이나 됐다. 해운회사 쪽에서는 운항 중에 배의 흔들림에 모터사이클이 넘어질 수 있어서 파손 위험이 높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겠지만 실제 배에서 모터사이클을 여러 밧줄에 걸어 결박해놓은 모양을 보면 태풍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을 모양새다. 도대체 왜 모터사이클이 해운회사의 봉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국토부에서 하는지, 해양부에서 하는지 모르지만 이를 관할하는 부처에서 이런 불합리한 점을 좀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리 가족은 차만 가지고 가기로 했고, 나는 제주도 라이딩을 깨끗이 포기했다.

그럼에도 제주도에 있는 동안 스쿠터라도 빌려서 잠시만이라도 달려볼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운전하는 동안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스쿠터 행렬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우리나라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내 모터사이클을 타고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싶어 한다. 나는 그 기회를 뒤로 미뤘다. 가족들 눈치 보고 잠시 타는것 보다는 홀로 혹은 라이딩 버디와 함께 와서 여유롭게 타는 것이 백번 낫지 않은가.

통영 강구안

창원시 마산회원구 진전면. 진주로 가는 2번 국도와 통영·거제로 가는 14번 국도 갈림길에서 클럽 회원들을 만났다. 나까지 네 명이었다. 야간주행을 할 때는 모터사이클에 달린 모든 등을 켜는 것이 좋다.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나 여기 있소'라고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덜 위험하다. 간혹 길을 밝게 비추려고 전조등을 HID로 개조한 모터사이클 운전자도 있는데 이는 불법이며 처벌 대상이다. HID는 밝지만 반드시 차체의 높낮이에 따라 전조등의 높이가 자동조절되는 장치가 있어야 하는데 모터사이클에 그런 장치가 장착될리 없다. 자동차도 신차 출고 때부터 HID가 장착된 차량은 합법지만 나중에 HID전조등만 따로 장착한 차량은 불법이다. 왜 그런가 하면, HID는 너무 밝아서 땅으로 향하지 않고 위로 향하면 순간적으로 상대 차량 운전자의 눈을 멀게 해 사고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HID 대신 LED 전조등이 대세다. 전기도 적게 먹고 많이 눈부시지도 않으면서도 밝기 때문이다.

통영까지 달리는 동안에 해는 졌다. 통영 시가지에 들어서 강구안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하게 어둠이 찾아온 뒤였다. 어둠이라고는 하지만 한여름 밤 항구도시 한가운데의 어둠은 옅었다.

123.jpg
▲ 지인이 통영 강구안 부근에 문을 연 스쿠터 대여점 거북선스쿠터. 자동차가 아니라 스쿠터를 타고 동피랑 서피랑 남망산공원 세병관 등을 둘러보는 재미가 색다르다. / 조재영 기자

 

강구안 마당에서는 음악인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많은 시민들이 박수를 보냈다. 시민들의 박수 소리와 항구 도시를 밝힌 네온이 어울려 한여름 밤을 설레게 했다.

우리는 먼저 클럽 현 회장을 찾아갔다. 그는 얼마 전 이곳에 여행객에게 스쿠터를 빌려주는 '거북선스쿠터'라는 가게를 차렸다. 강구안 마당에서 50m 정도 떨어진 곳, 골목 안에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시원한 사무실 안에서 더위를 식혔다. 곧 허기가 찾아왔다. 8시가 다 된 시각이었으니 당연했다. 통영에 왔으니 충무김밥을 먹기로 했다. 뭘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지역 음식이 있다는 것은 현지 주민에게도, 관광객에게도 축복이다. 현지 주민은 손님이 찾아와도 뭘 대접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고, 관광객도 별 고민 없이 그 음식을 맛보면 된다. 더 무엇이 필요한가?

현 회장이 추천하는대로 풍화김밥 집으로 갔다. 가게 이름으로 봐서는 주인 고향이 통영시 산양읍인 모양이다. 산양읍에 풍화리가 있다. 우리는 넷이서 충무김밥 8인분을 먹었다. 맛있는 충무김밥이었다. 김밥을 다 먹고 나서 음식을 내주었던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 가게 주인 고향이 산양읍이냐고.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대답을 듣고 나는 내 입꼬리가 씨익 하고 말려 올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대단한 퀴즈를 푼 것 같은 즐거움이 내 마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철이 덜 든 모양이다.

다음에는 카페로 이동했다. 길모퉁이 있다고 해서 '모티에'라는 카페였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던 카페다. 커피잔을 앞에 놓고 사는 이야기, 모터사이클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소주잔이 없어도 말이다.

여름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복귀할 시각이었다. 경남대 앞까지 달려와서 아이스크림으로 밤참을 대신했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흩어졌다.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24시간 문을 여는 세차장으로 갔다. 그동안 나를 태우고 때로는 거친 적토마처럼, 때로는 부드러운 바람처럼 달려준 모터사이클의 때를 벗겨주었다.

진주 부에나비스타

다음 날 나에게는 '밤바리' 이벤트가 하나 더 있었다. 진주 호탄동에 있는 카페 부에나비스타에서 저녁에 북콘서트가 열렸는데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경남도민일보 기사에 가끔 등장하던 카페인데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보다, 그날 북콘서트의 내용이 나를 잡아끌었다. 진주에서 헌책방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씨가 모터사이클을 타고 일본 전역에 있는 유명 서점을 찾아 여행한 이야기를 엮어 책을 만들었다. 북콘서트는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저녁 7시 카페 부에나비스타에 도착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6시쯤에는 집에서 출발했야 했다. 모터사이클을 함께 타는 후배에게 연락해서 7시에 부에나비스타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는 6시가 되기 전에 집에서 출발했다. 집에서 진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함안 가야, 군북을 거쳐 진주 이반성, 반성, 진성, 문산을 지나야 한다. 이반성을 지날 무렵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석양을 안은 구름과 하늘이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는 악셀에서 손을 떼고, 모터사이클을 길가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먼저 휴대폰 카메라에 모터사이클과 석양을 담은 뒤, 가슴 벅찬 그 아름다움을 감상했다. 7시까지 도착해야 한다는 사실도 잠시 잊은 채 말이다. 사실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그곳에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다시 시동을 켜고 나는 서쪽으로 달렸다. 구름의 모양은 달릴수록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양이 달라졌지만 황홀함은 변하지 않았다. 완전히 어두어질 때까지.

123.jpg
▲ 진주 호탄동에 있는 카페 부에나비스타. 지인이 북콘서트에 참석하려고 타고 온 모터사이클 혼다 ST1300(왼쪽)과 혼다 PCX125(오른쪽). / 조재영 기자

 

석양이 질 무렵의 라이딩은 언제나 이런 감동을 나에게 선물해준다.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지금 이 길을 달릴 수 있게 해준 모든 것에, 그리고 자연에. 이렇게 석양 길을 달리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주하면 항상 내가 조금씩 겸손해지는 듯하다. 비록 그 순간만일지라도.

내가 부에나비스타에 도착했을 때는 노래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만나기로 약속했던 후배도 곧 도착했고, 함께 카페로 들어갔다. 2만 원을 내고 책과 커피를 받은 뒤 비어있는 뒷자리에 앉았다. 조경국 씨는 소소책방을 운영하기도 하고 직접 책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고, 남의 콘텐츠를 책으로 엮어내는 편집자이기도 하다.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어느 헌책방 라이더의 고난극복 서점순례 버라이어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표지 안쪽에 조경국 씨는 자신의 소개를 적어놓았다.

책만큼 오토바이를 사랑한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동네 헌책방 책방지기로 4년 가까이 버티고 있다. <윤미네 집> 등 사진책을 엮는 편집자로 일했고, 몇몇 신문과 잡지에 카메라와 영화와 책 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책방지기가 되지 못했다면 동네 오토바이 가게 수리공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스스로 상상한다. 코흘리개 시절 아버지의 혼다 CB250 빨간 연료통에 납작 엎드려 바람을 가르던 일을 자랑으로 여기고 틈만 나면 책방 문을 닫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책방에 놀러 가길 즐긴다. <선과 모터사이클>, <죽지 않고 모터사이클 타는 법>이 항상 손에 닿는 곳에 있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최고의 영화로 꼽는다. <필사의 기초>를 썼다.

123.jpg
▲ 조경국 씨. / 조재영 기자

 

사실 두어 번 소소책방에 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책 두어 권을 사 온 적은 있지만, 책방지기 조경국 씨와 직접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북콘서트에서 처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학 시절 서점에서 일을 했었고, 지금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고. 책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늘 가까이 두려고 나름 애쓰는 내게는 조경국 씨가 친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먼저 125cc 스쿠터로 전국에 있는 서점을 찾아가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더 큰 모터사이클을 타고 일본 전역을 여행하며 책방을 방문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 만든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가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다시 한번 나를 돌아봐야 했다. 나는 2009년 250cc 스쿠터를 타고 '나무와 숲을 찾아 떠난 9박 10일 간의 전국 일주' 이후로 장기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하루짜리, 1박 2일 정도의 라이딩은 수도 없이 다녔지만, 2009년과 같은 여행은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것이 '허락'되도록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단순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법을 익혀야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