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체로 햇빛과 더위를 싫어하지만 오히려 쨍쨍 내리쬐는 햇볕을 좋아하는 식물들이 있다. 백일동안 끊임없이 피어나는 배롱나무, 무궁무진하게 꽃을 피우는 우리나라 꽃 무궁화, 해바라기 같은 식물들이다. 해를 사랑하는 꽃. 꽃 중의 꽃으로 손꼽히는 연꽃도 그중 하나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해가 뜨면 꽃을 피우는 수련을 태양의 상징으로 여겨 온갖 문양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반면에 동양의 연꽃은 그런 태양을 낳은 꽃으로 자리매김 한다. 태양을 낳은 연꽃. 그런 연꽃을 우리 조상들은 무척이나 사랑했다. 인도,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연꽃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군자의 꽃으로 숭상받아 왔다. 신비함과 오묘함을 간직한 꽃. 그리고 생명을 낳는 꽃, 태양을 낳는 꽃이 바로 연꽃이었던 것이다.

경남 함안에는 '아라홍련'이 유명하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목간이 출토된 성산산성 유적지 내 연못에서 연씨가 다수 출토되었다. 2009년 4월 함안박물관에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로부터 연씨 일부를 인수받아, 이 중 두 알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의뢰했다. 연대를 분석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전 고려시대의 연씨 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에 함안박물관에서는 농업기술센터와 공동으로 700년 비밀을 간직한 이 연씨에 대한 씨 담그기와 싹 틔우기를 시도하였고, 이후 분갈이 등을 통해 2010년 7월 처음으로 붉은빛이 감도는 연꽃을 피우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렇게 다시 새 생명으로 탄생한 붉은 빛이 감도는 이 연꽃을 '아라홍련'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아라홍련은 함안이 아라가야의 옛 땅이었음에 착안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라홍련은 7월부터 8월쯤에 꽃이 피는데 오전 6시부터 11시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난다. 아라홍련은 현대의 연꽃과는 색깔과 꽃잎 모양이 조금 달라 연꽃 계통이나 진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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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홍련.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일본에서는 2000년 된 씨앗에서 싹을 틔웠다는 '오가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의 별명은 '이천 년 연꽃'이다. 오가연꽃은 1951년 일본의 도쿄 대학 운동장 지하에서 발굴한 씨앗 3개를 싹 틔워 만들어진 연꽃인데 연꽃 씨앗을 발견하고 싹을 틔우는 작업을 주관한 오가 이치로의 이름을 따서 오가연꽃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어느 연못에서는 500년 전의 씨앗이 발견되어 꽃을 피우는데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연꽃은 생명력이 무척이나 왕성하며 천년을 넘어서도 싹을 틔울 만큼 신비로운 꽃이다.

중국 송나라 때 성리학의 틀을 만들고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받는 주돈이의 연꽃 사랑은 특별나다. 주돈이가 남긴 '애련설' 문장을 조금 가다듬어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연못과 육지에서 피는 풀과 나무의 꽃 가운데에는 사랑스러운 것들이 매우 많다. 진나라 도연명은 유달리 국화를 사랑하였고, 당나라 이래로는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하였다. 내가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유독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어도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있고 밖은 곧으며, 덩굴지지 않고 가지 치지도 않는다. 꽃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고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을 사랑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국화는 꽃 가운데 은자이고 모란은 꽃 가운데 부귀한 자이며, 연꽃은 꽃 가운데 군자라고 하겠다. 아! 국화를 사랑하는 것은 도연명 이후에는 들은 바가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것은 나와 함께 할 이가 어떤 사람일까? 모란을 사랑하는 이들은 마땅히 많을 것이다.

이후 유학자들은 주돈이의 '애련설'을 오래도록 읽으며 선비들은 집 앞 연못에 손수 연꽃을 키워 연못을 애련지라 했고, 연못 앞에 있는 정자에는 애련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연꽃은 불교에서뿐만 아니라 유학자들에게도 사랑받는 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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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연꽃은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열대, 온대의 동부아시아에서 남쪽으로는 호주 북부, 서쪽으로는 카스피해 근처, 동쪽으로는 한국, 일본 등에서 널리 자란다. 주로 연못에서 자라지만 논에서 재배하기도 한다. 연꽃은 뿌리줄기로부터 긴 잎자루와 긴 꽃대가 올라와 수면 위에서 잎과 꽃을 피운다. 잎자루는 겉에 가시가 있고 안에 있는 구멍은 땅속줄기의 구멍과 통한다. 꽃은 보통 오후에 피었다가 저녁쯤에 오므라드는데 약 3일 동안 피었다 오므라들기를 반복한다. 갓 핀 꽃은 은은한 향기가 일품이기도 하다.

연꽃은 인도 그리고 불교를 빼놓고 얘기하긴 어렵다. 인도에서는 연꽃이 창조 신화의 중심 식물 또는 선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인도에서 5000년 전에 만들어진 연꽃 여신상이 발견된 것을 보면 얼마나 신성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또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마야 부인 주위에 오색 연꽃이 피어 석가가 연꽃 위에서 탄생했다는 불교 설화도 있다. 부처님이 도를 이룬 성지 붓다가야의 큰 탑 오른쪽 끝에는 도를 이룬 후에 부처님이 좌선하다 잠깐씩 걷는 경행 때 발자국에서 저절로 연꽃이 생겼다고 하는 연꽃 모양의 돌 받침대가 늘어서 있기도 하다.

인도 사람들은 경사스러울 때나 제사를 지낼 때, 결혼식에도 모두 연꽃으로 주변을 꾸민다고 한다. 인도의 최고 훈장을 '빠드마 브샤나'라 하는데 연꽃으로 이루어진 장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연꽃을 신성시해 부처님의 좌대를 연꽃 모양으로 수놓는다. 불·보살이 앉아 있는 자리를 연꽃으로 만들어 연화좌 또는 연대라 부르는데 번뇌와 고통과 더러움으로 뒤덮여 있는 사바세계에서도 고결하고 청정함을 잃지 않는 불·보살을 연꽃의 속성에 비유한 것이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의 이름도 연화복 또는 연화의라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청정함을 지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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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밭의 원앙.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한글 <법화경> 권 제1에는 이 경의 이름에 대해 '꽃과 동시에 곧 열매를 맺고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깨끗하니 이것은 연꽃의 실상이요, 중생과 부처가 근본이 있어 윤회를 거듭해도 달라지지 아니하니 이것은 마음의 실상이요, 그 모양은 허망하지만 그 정기는 지극히 진실하니 이것은 경계의 실상이로다. 이른바 묘법은 추함을 버리고 묘함을 취한 것이 아니고 추함에서 곧 묘함을 나타내심이다. 추함에서 곧 묘함을 나타내는 것은 심은 연꽃이 더러운 곳에서도 항상 깨끗한 것과 같다'고 기술하고 있다. 연꽃의 생태와 깨달음의 의미가 잘 표현되어 있다.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에서는 혼돈의 물 밑에 잠자는 영원한 정령 '나라야나'의 배꼽에서 연꽃이 나왔다는 설화가 있다. 이 설화로부터 연꽃을 우주의 창조와 생성의 의미를 지닌 꽃으로 믿는 '세계 연화사상'이 나타났고, 사람이 서방정토에 왕생할 때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의 의미로 연결되어졌다. 고전 소설 심청전에 나오는 효심 깊은 우리의 청이가 연꽃 속에서 다시 태어나 심봉사에게 나타나게 된 연유가 바로 이 '연화화생'에 있다.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졌을 때 용왕님이 아리따운 그녀를 한 송이 연꽃 속에 담아 물 위에 띄워 인간 세상에 돌려보냈던 것이다.

연꽃은 신화나 설화에서의 신비함 뿐만 아니라 약으로서도 빼어난 효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꽃뿐만 아니라 연잎, 연근, 연씨 모두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꽃, 잎, 열매, 뿌리까지 연의 대부분을 활용해 왔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한의학의 주장에 의하면 열매는 기력을 돕고 오장을 보호해주며 갈증과 설사를 없애준다. 특히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능이 있어 불면증이 있거나 신경이 예민한 사람에게 좋다고 한다. 연잎은 혈액 순환을 좋게 하고 어혈을 풀어주는 데 좋다. 또 해독작용이 있어 바닷게를 먹고 중독된 경우에 좋다고 한다. 연꽃의 노란 수술 말린 것은 치질 치료에 쓰이고 당뇨병으로 인한 심한 갈증을 멎게 하고 혈당 조절에 효과가 있다. 연꽃은 머릿결을 좋게 하고 검게 한다고 한다. 연밥은 성장 발육기의 어린이와 노인, 환자에게 좋은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연뿌리는 주성분이 녹말인데 날로 씹어 먹거나 즙을 내서 먹기도 하며, 요리나 약재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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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련.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또한 연꽃 잎사귀는 물에 젖지 않는 것이 특징인데 잎자루에 붙어 있는 부분이 오목하게 파여 있어 알맞게 물이 고이기도 한다. 보송한 넓은 잎사귀 위에 송골송골 맺힌 물방울은 연꽃잎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이다. 연잎 위를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모습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무척 좋아하는 광경이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방수 관련 산업에서 이 원리를 연구한 모양인데 물이 스며들지 않는 이유가 처음에는 잎 표면에 있는 잔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최근에 알려진 사실은 커다란 잎을 달고 있는 잎자루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끊임없이 파동을 일으켜 물방울이 잎의 잔털 위에서 퍼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래저래 연꽃의 존재는 신비할 따름이다.

이러한 연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연꽃 축제는 전국 곳곳에서 개최된다. 수도권 쪽에는 경기도 양평 세미원 연꽃 문화제가 유명하다. 부여 서동 연꽃축제는 부여 서동공원 궁남지 일원에서 개최된다. 천만 송이 연꽃들로 고즈넉한 궁남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경주 동궁과 월지 연꽃 단지의 연꽃도 꽤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첨성대와 안압지 부근에서 볼 수 있다. 올해 21회째를 맞은 무안 연꽃 축제는 전라남도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축제 장소인 회산 백련지는 동양 최대 규모의 연꽃 단지로 알려져 있다. 경남에는 창원의 주남저수지, 함양 상림 연꽃 단지와 진주의 강주연못, 함안의 함주공원이 유명하다. 고성 상리에 있는 연꽃 공원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연꽃들을 만날 수 있다.

'무명(無明)에 둘러싸여도 불성(佛性)을 이룬다'는 불가의 뜻과 닮은 진흙 속의 연꽃. 그래서였을까. 부처는 지혜로운 사람을 연꽃에 비유했다고 한다. 연꽃 닮은 사람이 되는 길. 아주 어렵고도 매우 쉬운 길이 아닐까 싶다. 일단은 연밥부터 먹고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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