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맥주의 대중화를 이끄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

최근 수제 맥주 열풍이 거세다. 주세법 완화·혼술족 증가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반 맥주에서 수제 맥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수제 맥주는 일반 맥주에 비해 그 종류와 맛이 다양하다. 해서 기호에 맞는 맥주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비어소믈리에(Beersommelier)는 개인에 맞는 맥주를 찾아주고 어울리는 음식을 추천한다. 이 자격은 독일의 맥주 전문교육기관인 되멘스 아카데미에서 발급한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맥주에 대한 다양한 전문 지식을 쌓은 후 받을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선 100명이 자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비어소믈리에라고 수제 맥주를 제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제 맥주를 만들기 위해선 양조 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또 다른 이론과 방식을 습득해야 한다. 이번에 만나본 이유정(45) 씨는 두 가지 모두를 습득한 맥주 전문가다. 이뿐만 아니라 '공유공간293'이란 작은 공간도 운영 중이다. 이곳은 소모임 스터디부터 파티, 수제 맥주 공방 역할도 한다. 이 씨를 만나기 위해 공유공간293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연히 빠지게 된 수제 맥주

공유공간293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주택가 가운데 작은 간판이 켜져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자 이유정 씨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창원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학과 정원이 20명이었는데 여학생 18명, 남학생 2명이었죠. 남편과는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졸업하고 곧바로 결혼했습니다. 저는 학원에서 근무하고 남편은 은행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이 났고 온 가족이 이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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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정 비어소믈리에. / 박성훈 기자

부산에 터를 잡은 이 대표는 입시학원에서 일했다. 시간이 흘러 임신을 하게 됐고 직장을 그만뒀다. 그러던 중 IMF가 터졌다.

"한 2년 집에 있었나? IMF가 터졌어요. 남편이 다니던 은행이 없어졌죠. 당장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큰 아주버님이 배터리 회사를 하셨는데 저희한테 한 번 맡아서 해보라고 하셨어요. 아주버님만 믿고 창원에서 사업을 시작했죠. 현재 주업으로 전기 장비 쪽 일을 하고 있어요."

주위를 둘러보니 한쪽엔 맥주병이 가득했다. 이 대표는 인터뷰를 잠시 중단하고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 오른쪽엔 맥주를 양조하기 위해 필요한 기구들이 나열돼 있었고 왼쪽엔 직접 만든 수제 맥주들이 있었다. 취미를 넘어서 맥주 전문가의 길에 들어선 이 대표. 어떤 계기로 수제 맥주에 빠져들게 됐을까?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소규모 파티를 가끔 주최했어요. 찻잔, 술잔이 필요해서 마트를 갔는데 우연히 '바이엔슈테판 비투스'란 수입 맥주를 보게 됐죠. 전용 잔이 너무 예뻐서 구매하고 맛을 봤는데 신세계였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입맛에 딱 맞았고 제 인생 맥주가 됐죠."

"그때부터 맥주라는 세계에 빠져들었고 '맥주야 놀자'란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당시 저는 단순히 맛이 있다 없다 정도의 지식이었는데 몇몇 분들은 전문가 수준으로 토론을 하더라고요. 바로 비어소믈리에 출신들이었죠. 저도 그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찾아봤더니 다음 강의가 12월에 있었습니다. 지원을 하고 기다리던 차에 모 대학에서 양조 과정을 배울 수 있는 강의가 있더라고요. 해서 양조 과정을 먼저 배우고 비어소믈리에 자격까지 취득했죠."

비어소믈리에

맥주와 관련된 대표적인 국제자격증으로 '비어소믈리에(Biersommelier)', 'BJCP(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씨서론(Cicerone)'이 있다. BJCP는 맥주평가대회 심사위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씨서론은 1~5단계까지 있으며 마지막엔 '비어마스터'란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전 세계에 딱 15명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비어소믈리에는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자격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물어봤다.

"자격 조건에 '맥주 관련 종사자' 및 '맥주를 사랑하는 일반인' 이런 식으로 돼 있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맥주를 사랑하는 일반인은 저 포함 2명이 전부였어요(웃음). 나머지 분들은 전부 주류 업계에선 이름만 대면 유명한 사람들이었죠. 다행히 미리 공부를 하고 양조 과정까지 배워서 겨우겨우 따라갈 수 있었어요. 2주간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을 듣고 시험을 칩니다. 메뉴판 제작, 맥주 칵테일 건지 등 과제도 있고요. 교육이 끝난 후 최종 테스트를 통과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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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는 이유정 비어소믈리에. / 박성훈 기자

그 후 공유공간293을 맥주 공방으로 꾸몄다. 홈브루잉(집에서 스스로 맥주를 만드는 작업)을 사람들에게 강의하기 위해서다. 수제 맥주를 배우기 위해 곳곳에서 연락이 온다고 한다.

"성향이 좋은 게 있으면 사람들한테 공유하려고 해요. 처음에는 남편을 타깃으로 삼았죠. 제가 만든 맥주를 남편에게 자꾸 맛보게 했어요. 남편은 집에서 술을 먹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인가 수제 맥주를 찾는 거예요. 그때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맥주 양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집에서 했는데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공유공간293을 저만의 양조장으로 만들어 버렸죠. 지하에 있어 항상 서늘하고 작업환경도 집보다 훨씬 좋았거든요. 혼자만 즐기기엔 너무 아까웠습니다. 해서 지인들을 상대로 홈브루잉 강의를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서 수강을 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왔고 8월 26일에 2차 강의를 할 예정입니다."

"사실 당장이라도 시작하고 싶지만 대학교에서 맥주 관련 강의를 맡고 있어요. 당시 양조 과정을 지도하셨던 교수님께서 제가 비어소믈리에를 취득한 사실을 듣고는 관련 강의를 부탁하셨어요. 끝나는 대로 다시 맥주공방으로 돌아올 생각입니다."

앞서 말했듯 이 대표는 본업이 있다. 그러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해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움직인다. 수제 맥주를 만나 하루하루가 활력이 넘친다는 이 대표에게 비어소믈리에로서 언제가 가장 행복한지 물어봤다.

"제가 음식 솜씨가 별로 없어요(웃음). 약 10년 동안 육아, 직장, 살림을 반복하다 보니까 즐겁게 요리를 할 여유조차 없었죠. 그런데 우연히 수제 맥주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권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또 지인들과 모였을 때 재능 기부를 할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직접 만든 맥주를 나눠 마시는 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수제 맥주의 대중화

이 대표는 홈브루잉 강의와 더불어 더 큰 목표가 있다. 창원에서 '수제 맥주 대중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창원에서 수제 맥주 대중화를 이끄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어요. 최근 창원에 있는 여러 펍(Pub)을 다니며 사장님들께 수제 맥주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어요. 그 종착점은 '수제 맥주 파티'가 되겠죠? 내년을 목표로 밑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돈을 목적으로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위험부담도 많고 잘 안됐을 때 리스크도 엄청나죠. 사실 저는 취미로 하고 있지만 다른 분들은 진짜 생업이잖아요. 그래서 비어소믈리에로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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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를 양조하고 있는 수강생. / 이유정 씨 제공

이처럼 이 대표의 '맥주 사랑'은 주변까지 물들였다. 맥주를 싫어하던 지인들도 수제 맥주의 매력에 빠져 홈브루잉 강의를 신청할 정도라고 한다.

"여러 맥주를 계속 마시다 보니까 계절별로 좋아하는 맥주가 달라져 버렸어요. 하루도 안 마시는 날이 없거든요. 그러나 저는 절대 '부어라 마셔라'처럼 막무가내로 마시지 않아요. 하루에 딱 한 잔에서 많아야 두 잔이에요. 정신이 맑고 가장 편안한 시간이어야 맥주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죠. 주변 사람들에게도 권했어요. 개인의 취향을 파악해서 알맞은 맥주를 추천해 줬죠. 처음엔 거절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저보다 더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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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주를 양조하고 있는 수강생. / 이유정 씨 제공

나의 공통분모는 수제 맥주

비어소믈리에 과정은 금방 마감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또 국내에도 아카데미가 생겨날 정도로 홈브루잉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맥주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비어소믈리에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한 가지만 고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종류의 맥주를 마셔보길 권하고 싶어요. 수제 맥주뿐만 아니라 수입 맥주도 정말 다양한 종류와 맛이 있거든요. 자신에게 맞는 맥주를 찾아가는 과정도 재밌을 거라 자신합니다. 대형마트에 가면 정말 많은 종류의 맥주들이 진열돼 있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거기서 자신이 좋아하는 맥주만 집어 가거나 무엇을 마셔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조금만 맥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다면 저처럼 계절에 따라 마시는 맥주가 바뀔 만큼 전문가가 될 수도 있어요. 저도 그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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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공간293. / 박성훈 기자

인터뷰가 예상보다 길어졌다. 그만큼 이 대표에게 듣는 수제 맥주 이야기는 신선했고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제가 지적 허영심이 많아서 책을 자주 읽어요. 최근 읽었던 책에서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공통분모다'라는 구절이 나오더라고요.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해뒀죠. 정말 마음에 와닿았어요. 왜 나면 저한텐 그 공통분모가 맥주잖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맥주를 통해 소중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때문이죠. 어떤 대상을 취미를 넘어서 좋아하면 '덕후'라고 하잖아요.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맥덕(맥주덕후)'라고 불러요. 저는 맥덕을 넘어서 절반 정도는 직업이 됐다고 생각해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맥주가 아닌 또 다른 무언가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당분간은 맥주와 함께 소통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생각입니다. 비어소믈리에라는 호칭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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