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예쁜 카페와 스타 셰프

어느샌가 '쿡방', '먹방'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자연히 주방에서 활약하던 요리사들이 TV 곳곳에서 보인다. 요리사들이 만들어내는 먹음직한 요리는 물론이고, 요리사 개개인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스타 셰프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 바야흐로 '요리사 전성시대'다. 그런데 김해에 생각지 못한 인물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스터셰프 코리아2'에 출연했던 최석원(45) 셰프가 김해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 '그 최석원 세프?', '언제 김해에 왔지?', '근데 음식점이 아니라 카페?' 갖가지 의문점이 떠올랐지만 모두 제쳐두고, 그를 만나러 김해 장유의 '도로시 플레이트'로 향했다.

금요일 4시 무렵, 최석원 셰프를 만나러 김해로 향했다. 정확히는 김해 장유의 대청계곡 인근에 있는 '도로시 플레이트'로다. 바쁜 점심·저녁 시간대를 피해 덜 바쁜 시간대로 약속을 잡았다. 도로시 플레이트는 대중교통으로 가기에 썩 좋은 위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갈 곳도 아니다. 창원 남산동에서 버스로 30분가량, 장유 대청계곡 정거장에서 내려 도로시 플레이트까지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123.jpg
▲ 최석원 셰프(오른쪽)과 김경민 셰프(왼쪽), 신재찬 매니저(가운데). / 이종현 기자

도로시 플레이트를 알아보기는 쉽다. 길을 걷다 눈길이 가는 '예쁜' 건물, 그 안에 자그마한 수영장이 있다면 그곳이 도로시 플레이트다. 실제 방문은 처음이지만 이미 인터넷으로 봤던 풍경이기에 익숙하다. 도로시 플레이트가 경남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블로그 등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카페 문을 여니 손님이 꽤 많다. 어림잡아 스무 명, 대여섯 팀 정도. '평일 4시, 거기에 번화가도 아니고 외곽지역의 카페에 이렇게 사람이 많아?' 따위의 감상을 품으며, 최 셰프를 찾았다.

인생의 변곡점, 마스터셰프 코리아2 출연

마스터셰프 코리아2(이하 마셰코2)를 통해 알게 된 최석원 셰프는 꽤나 특이한 요리사다. 그는 요리와 관련된 학교·학과를 나오지 않았다. 그는 고교 때부터 미술을 전공했고, 그중에서도 서양화가 전문 분야였다. 물론 학교에서 요리를 전공해야 요리사가 된다는 것은 편견일 뿐이지만,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요리 경연 프로그램의 3위까지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쉽게 준결승에서 떨어졌다곤 하지만, 방송을 본 이들이나 방송에 참가한 경쟁자들과 심사위원들도 최 셰프의 실력을 인정했으니 더더욱.

"미술을 전공하긴 했지만, 어려서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20살부터 쭉 독학으로 요리를 했어요. 실제로 음식점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한식·양식·분식·술집 등… 누구 밑에서 요리를 배우거나 하진 않았지만, 여러 사업을 벌이면서 현장에서 요리 경험을 쌓았죠."

뛰어난 요리 실력과는 별개로 경영에 대한 센스는 부족하다는 그는 마셰코2 출연 당시 디자인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123.jpg
▲ 대청계곡 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왼편에 도로시 플레이트 건물이 보인다. / 이종현 기자

"아무래도 전공 분야다 보니 디자인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7~8년 정도 운영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역시 잘 되진 않았어요. 마셰코2에 출연할 무렵에는 회사가 많이 힘들었습니다. 마셰코2 출연을 계기로 디자인 회사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요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최 셰프는 마셰코2 출연이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한다. 마셰코2 출연 이후 경쟁자였던 셰프들과 함께 '인리원' 요리 학원에서 강연도 했다.

"아마 마셰코2 출연 다음 해일 거예요. 인리원이라는 요리 학원에 강사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받았죠. 저와 우승자였던 최강록 셰프와 김경민·김영준·윤리 셰프, 5명이서 함께하는 학원이었어요. 인리원 말고도 여러 곳에서 강사로 일하기도 했고요."

최 셰프는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음악 프로듀서 '용감한형제들'과 협업해 레스토랑 '1979'를 총괄 운영하기도 했다.

"요리학원을 하면서 이런저런 제의를 많이 받았어요. 한창 연예기획사들이 다른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었고, 요식업으로도 시선이 집중되던 시기였거든요. 지금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곳에 와 있지만, 용감한형제들은 좋은 파트너였어요."

새로운 도전 위해 김해로

최석원 셰프는 잘 되던 1979를 뒤로하고 김해로 내려왔다. 하지만 의문점이 남는다. '왜 하필이면 김해인가' 하는. 지역지의 기자로서 대한민국의 '뭐든지 서울'이라는 인식에 저항감이 있지만, 평생을 서울에서 생활하던 최 셰프가 별다른 이유 없이 김해로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먼저 말씀드릴 건, 전 도로시 플레이트의 오너 셰프(셰프가 요리점의 사장인 경우)가 아니라 총괄 셰프(사장은 따로 있고 주방을 총괄하는 셰프)입니다. 김해로 온 건 스카웃 제의를 받아서에요. 단순히 도로시 플레이트 하나만을 보고 온 건 아닙니다. 이곳 주변의 거리를 새롭게 조성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도로시 플레이트는 그 일환이죠. 연말에 '에스키스'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할 텐데, 그곳에 힘 쏟을 예정입니다. 지금은 예열 중이라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123.jpg
▲ 도로시 플레이트 1층, 2층 내부 모습. 100% 수제로 만든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이종현 기자
123.jpg
▲ 도로시 플레이트 1층, 2층 내부 모습. 100% 수제로 만든다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이종현 기자

최 셰프가 카페 때문에 김해로 왔을 거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도 규모가 컸다.

"준비 중인 에스키스는 규모 면에서는 경남 최고 수준입니다. 층별로 캐주얼, 코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쉽게 찾으실 수 있는 캐주얼 레스토랑부터, 크레이티브한 코스 요리까지. 저와 함께 마셰코2에 출연했던 김경민 셰프도 이걸 위해 도로시 플레이트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올 연말에 오픈 예정입니다. 그때는 에스키스를 메인으로 다시 뵐 수 있을 거 같네요."

도로시 플레이트

최석원·김경민 셰프가 힘 합쳐 준비 중인 에스키스 레스토랑은 나중의 즐거움으로 미뤄두고, 오늘의 메인인 도로시 플레이트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오픈은 언제인지, 손님은 얼마나 찾는지, 메뉴는 무엇인지 등.

"오픈한 지는 2개월 정도 됐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는 제가 손을 많이 봤고, 건물 외부는 오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가게 이름에 별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예쁜 이름을 생각하다 붙였죠. (웃음)"

도로시 플레이트는 '카페'다.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떼… 기본적인 메뉴는 대부분 갖춰져 있다. 눈에 띄는 건 음료보다 음식 종류다. 어찌 보면 에스키스 레스토랑의 전초기지 격인 도로시 플레이트가 특별한 것은 일반 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스타 셰프들의 요리 덕분이지 않을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도로시 플레이트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장 먼저 오픈한 가게입니다. 보통 카페에서 내놓는 식상한 메뉴는 싫더라고요. 그래서 고심해서 낸 메뉴가 생연어 덮밥·삼색소보로 덮밥·돈카츠와 커리·소고기타다키 덮밥입니다."

실제 도로시 플레이트를 찾는 손님은 음료보단 식사를 하는 편이다. 깔끔하게 꾸며진 건물 내부·외부, 더운 날씨를 식혀줄 작은 수영장, 스타 셰프의 실력이 담긴 예쁘고 먹음직한 요리.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외곽지에 있음에도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123.jpg
▲ 최석원 셰프가 직접 그린 도로시 플레이트 메뉴들. / 이종현 기자

"당초 생각했던 거보다 손님이 한참은 많아요. 예상보다 3배 정도는 되는 거 같아요. 찾으시는 분들 대부분이 여성이신데, 아무래도 인테리어나 요리가 잘 된 거 같아요. 찾는 분들이 너무 많으셔서 기다리시거나, 발길을 돌리는 분들도 있을 정돕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손님들이 방문했다. 비교적 한산한 시간대라곤 하지만 테이블의 반 이상은 차 있었다. 평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다. 손님이 너무 많아 힘들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전혀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실패를 많이 경험했어요. 손님이 많이 찾으셔서 망한 적은 없어요. (웃음) 요리사가 바쁘다는 건 최고의 행복이에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손님이 찾아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할 뿐이죠. 손님께 내드릴 음식을 요리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고요."

요리사의 그림 노트

최석원 셰프는 학창시절 미술을 전공했다. 처음부터 요리의 길을 걷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진 않을까.

"미술을 전공한 건 저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입니다. 미술이나 요리나, 학교에서 배우는 건 '기술'보다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그 분야의 도구를 활용하는 기술을 배우는 건 당연하죠. 미술은 붓, 요리는 칼.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건 감각이에요. 그리고 미술을 위한 감각은 요리에도 큰 도움이 되고요. 기술은 학원에도, 또 실무를 통해 기를 수 있지만, 감각이라는 건 기술보다도 기르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가진 강점을 토대로 '요리사의 그림 노트'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제가 가진 강점을 책으로 엮어냈어요. 책에 있는 글, 그림 모두 제가 쓴 것 그대로 실렸고요. 외국에는 손으로 그린 그림을 이용한 요리책이 많은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게 없더라고요. 아마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글을 쓰는 작가, 교열할 편집부… 여러 명이 호흡을 맞춰야 하니 제한되는 게 많을 거예요. 저는 요리·교육·그림… 모두 혼자서 할 수 있으니 편했죠."

미술을 전공했고, 디자인 회사도 꽤 오랫동안 경영했다. 향후 미술 분야로의 욕심은 없는지 물었다.

"미술은 충분히 한 거 같아요. 앞으로는 요리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제가 더 이상 미술을 안 한다고 해서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배웠던, 그려왔던 것들은 모두 제 요리에 담길 겁니다."

쿡방, 노키즈존, 미래

어느 정도 이야기를 마치면서 사회적 이슈 거리가 된 쿡방, 노키즈존에 대한 최석원 셰프의 생각이 궁금했다. 요리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한 부류로 자리 잡은 지금, 요리사들이 TV에 출연하는 일이 많아졌다. 요리를 잘하는 연예인이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최석원 셰프는 어떨까.

"저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애당초 제가 그 요리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이 자리에 있으니까요. 물론 부정적이게 생각하는 분들의 마음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저도 TV 요리 프로그램은 너무 요리의 긍정적인 부분만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고요. 요리라는 게, 요리사라는 게 마냥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프로그램을 통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게 한참 더 많다고 생각해요."

123.jpg
▲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본 도로시 플레이트의 모습. 도로시 플레이트는 노키즈존이 아니다. / 이종현 기자

쿡방에 대한 논란은 요리 업계 내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모양이지만 사회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다르다. 단순한 가게와 손님의 갈등을 넘었다.

"정말 안타까운 이야깁니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노키즈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볍게 볼만한 주제가 아닙니다. 노키즈존이라는 화두가 나오면 항상 나오는 말이 '맘충'인데요. 너무 슬픈 이야기에요. 어머님, 아이들, 정말 축복받고 사랑받아야 할 이들인걸요. 하지만 노키즈존을 하겠다는 가게들을 '자기들 편하려고' 같은 가벼운 시각으로 봐선 안 돼요. 요즘에야 워낙 이슈가 돼서 아실 테지만, 정말 도를 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아이가 가게에서 뛰어다닌다든지, 지나치게 큰 소리로 떠든다든지, 실내에서 용변을 본다든지, 기저귀를 갈아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가신다든지…. 이런 일들이 저와 그 손님 간의 문제라면 상관없지만. 가게에는 여러 손님이 찾으시거든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참으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참지 않으신다고 나쁜 게 아니에요. 그분들은 자신이 돈을 지불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러 오신 걸요. 저나 직원들은 그런 손님들께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해드려야 하고요. 이런 것 때문에 도로시 플레이트도 노키즈존으로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저희 오너께서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꿈을 가지셨기에, 저와 직원들은 거기에 맞춰서 도로시 플레이트는 노키즈존이 아닙니다. 다만 아이를 동반한 손님께는 정중히,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켜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많은 요리사들이 자신의 가게를 지닌 '오너 셰프'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가진다. 도로시 플레이트와 에스키스. 모두 본인의 가게는 아니다. 오너 셰프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을까?

"지금의 일에 만족합니다. 저는 좋은 경영인이 될 그릇은 아니에요. 이미 여러 사업을 실패했으니까요."

낯선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최 셰프. 조만간 오픈할 에스키스에서의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전하고픈 말은 없는지 물었다.

"도로시 플레이트를 오픈하면서 프로젝트의 시동을 걸었지만, 낯선 지역에서 일한다는 부담감은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들었던 말 중 되게 슬펐던 게, '여기 왜 왔냐', '먹튀하려고 왔냐' 같은 말들이에요.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도로시 플레이트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단기간에 완성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도로시 플레이트도 그렇고, 조만간 오픈할 에스키스에도 제 모든 힘을 쏟아야겠죠. 제가 이곳에 온 건 이곳에 뿌리내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곳의 사람들과 함께 밥 먹고, 얘기하고. 함께 호흡하기 위해 온 거예요. 부디 예쁘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123.jpg
▲ 도로시 플레이트의 구성원들. / 이종현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