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이 다져온 회사, 제대로 이어가야죠"

이현재(45) 대웅건설 대표이사는 선친 회사를 이어받은 2세 경영인이다. 그는 처음 만나자마자 "아버지나 저나 어디 나서는 것에 별로 익숙하지 않습니다"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회사를 더 키우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그냥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직원들과 가족처럼 지내고 싶습니다"라는 맥락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15년 전 2세대 경영인으로

대웅건설은 1983년 토목·철근콘크리트공사업으로 시작했다. 이후 1998년 일반건설 토목, 2002년 일반건설 토목건축 면허를 취득했다. 2011년에는 국외건설업(토건·조경) 면허도 땄다. 현재 종합건설사·전문건설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고, 코로지스라는 이름으로 물류업에도 진출해 있다. 양산유물전시관, 통도사 휴게소, 밀양 실내배드민턴장, 진주혁신도시 아파트 등이 대표적인 참여 작품이다.

이현재 대표는 긴 세월을 이어온 향토기업임을 강조한다.

"사실 전문건설사로 최초 설립된 건 1979년입니다. 당시 몇 있던 전문 쪽 업체가 이후 부도로 없어지거나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러니 현재 창원에 남아있는 전문건설사 가운데는 '경남 1호'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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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재 대웅건설 대표이사. / 김구연 기자

그는 지난 2002년 대표이사직에 취임하며 아버지 이병호(73·현 회장) 씨가 다져온 회사를 본격적으로 이끌었다. 아버지는 동아건설 작업반장 경험을 살려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다.

대웅건설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납세자 표창'을 받았고, 공정거래위로부터 '하도급거래 모범업체'에 선정됐다. 이 대표는 '2010년 자랑스러운 건설인상'을 받기도 했다.

"사업은 서로 믿으면서 돕는 관계입니다. 저는 어려운 상황이 있으면 하도급 업체들에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반대로 또 업체들이 어려우면 저한테 이야길 합니다. 대부분 초창기 때부터 거래해온 곳들이라 신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매출만 많다고 큰 회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자기자본으로 일을 다 합니다. 선친 때부터 지금까지 직원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 어느 회사보다도 튼실하다고 자부합니다."

건설업은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대웅건설은 지금까지 별다른 고비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1997년 IMF 때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수주를 올렸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 이유를 행운으로 돌렸다.

"결국은 회사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복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직원들 모두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회사 경영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나서고 않고 드러내지 않다

이현재 대표는 1972년 창원에서 태어나 지금껏 고향을 벗어나지 않은 토박이다.

그는 위로 누나 둘, 밑으로 남동생 한 명을 두고 있다. 어릴 적 대원초-양곡중학교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지만, 자신도 계속 그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라 예감했다.

"어릴 적 저는 가끔 아버님을 따라가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는 아버님 대를 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머릿속에 자리했던 것 같습니다. 중3 때 운동부가 해체된 것도 있지만, 아버님이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원하셨습니다. 이전까지 공부라고는 전혀 해보지 않았으니 막막했죠. 주변 친구들을 귀찮게 하며 도움을 받았죠. 그렇게 1년 바짝 해서 문성고등학교에 턱걸이로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도움 준 친구들이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아버지 회사 일을 도왔다.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2세 경영 수업에 들어가 서른 무렵 회사를 이어받았다. 자신에 대한 회사 내 불편한 시선 같은 것은 크게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병호 회장이 때로는 현장에서 이른바 '삽질'도 하는 등 격의 없는 분위기가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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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재 대웅건설 대표이사. / 김구연 기자

그는 회사 일을 하면서 창신대 토목학과 야간에 들어가 공부를 병행했다. 이후에는 특이하게도 대구신학대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땄다.

"아버님께서는 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고, 동생도 요양원 쪽 일을 해서 알게 됐는데요, 요양병원이 노인들을 치료해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재활요양병원을 운영해 보고 싶었고, 실제로 마산 쪽에서 개원도 했습니다. 최고급 시설과 의료진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에 1억 5000만 원 정도 적자였습니다. 2년 반 정도 버티다 도저히 무리라고 판단해 결국 포기했습니다. 나중에 좀 더 능력 되면 복지관을 짓겠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이 대표는 아버지 때부터 이어온 장학금 사업에 계속 정성을 쏟고 있다.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가 있는지를 검색해 봤는데, 쉽게 찾기는 어려웠다.

"굳이 그런 걸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쪽입니다. 능력 내에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 회사는 관급공사 비율이 90% 정도 되기에 공무원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저도 30대까지는 친분 유지에 매우 신경 썼습니다. 그러다 '이런 게 굳이 중요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의례적인 관계는 모두 끊었습니다. 그 시간에 사회봉사를 하는 게 더 낫겠다 싶은 마음입니다."

회사 규모보다는 내실 다지기 집중

이현재 대표는 매일 오전 4시 30분까지 출근한다. 부지런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몸에 뱄다. 또한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관련 서류를 살펴보고, 업무 지식을 쌓기 위한 의지이기도 하다. 업무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 직원들에게 지시도 명확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도 오후 7시이기에, 하루 14시간 이상 회사에서 보내는 것이다.

이 대표 사무실 내부는 좀 독톡하다. 골프 관련 모자, 사진, 선수 사인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릴 적 테니스 선수 생활을 접었지만, 운동은 여전히 삶의 활력소다. 평일에 회사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주말 운동 때는 아내와 꼭 함께한다.

사무실 한쪽에는 조형물, 액세서리 소품 같은 것도 자리하고 있다. 그가 보석 디자인에 관심 많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 액세서리 소품 분야에 투자한 적도 있고, 앞으로 명품샵 오픈까지 구상하고 있다.

대웅건설은 상가·오피스텔 분양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창원시 의창구 용호동 옛 용호볼링장 터에 '대웅 레드유 오피스텔'이 들어선다. 지하 4층~지상 14층 규모로 9월 중순 입주 예정이다. 이 대표가 10년 전부터 심혈을 기울인 야심작이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많이 투자하면 남는 돈이 있느냐"고 할 정도로 고급 자재를 사용했다.

최근 '기업 윤리' 문제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또한 일부 2·3세대 경영인 도덕적 문제는 많은 이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대목에서 그냥 웃음 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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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재 대웅건설 대표이사. / 김구연 기자

"2세대 경영인들을 만나보면 정말 아닌 사람도 많고, 또 반듯한 사람도 많고 그렇습니다. 저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니까요. 다만, 선친에게 물려받은 회사가 아무리 탄탄하더라도 2세들 경영 마인드가 확실하지 않으면 오래갈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님 득을 크게 보는 편입니다. 아버님이 지역 업계에서 많은 신뢰를 얻어왔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도 '이병호 회장님 아들?'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시고, 또 호의적으로 대해 주십니다. 저 역시 더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지역사회는 워낙 좁아서 좋지 않은 소문은 금방 퍼지잖아요."

이 대표는 고등학교 때 요양원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1남 1녀를 두고 있는데, 우연하게도 가족 4명 모두 문성고등학교와 연을 맺었다.

대학생 딸은 한때 대웅에서 현장 아르바이트를 했다. 함께 온 친구는 며칠 만에 포기했는데, 딸은 약속했던 한 달을 꿋꿋하게 버텨낸 것이 대견하게 다가온다. 이 대표 역시 훗날 경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고등학생 아들이 건설보다는 물류 쪽 경영에 마음 두길 바라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도 소박한 마음을 드러낼 뿐이다.

"어떤 모임에 나갔더니 '당신은 회사를 얼마나 더 크게 키울 계획인가'라고 묻더군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다.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규모를 더 키우고, 돈을 더 버는 부분이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님도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창원 향토기업으로서 전국 종합건설업계 상위 10%(400위권) 안에 드는 정도면 아주 괜찮지 않나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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