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평]사무라 히로아키

좋은 만화는 어떤 만화일까?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 대중문화의 미래를 걱정한다고 자처하며 이땅의 청소년, 젊은이들을 보호 해야할 의무에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신 분들께 묻는다면 그들의 대답은 어떨까? 아마도 "좋은 만화란 따뜻한 교훈이 있고, 추하지도 않으며,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은 모자이크처리 한 그런 만화이다."
또한 청소년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좋은 만화는 멋진 모험이 있어야 하고 멋진 주인공들이 넘쳐나야 하며 자신이 하지 못할 멋진 상황으로 대리만족을 시켜줘야 할 그런 만화다"라고 할 것이다.
여기서 난 위 모든 의견을 무시할 만한 만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사무라 히로아키'의 '무한의 주인'. 이 만화는 잔인한 폭력이 난무하며 성적인 표현도 거침없고, 구역질 날만큼 더러운 인물과 상황묘사도 나온다. 대중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멋진 캐릭터도 없다. 대리만족을 꿈꿔 보라고 이 만화를 권하다간 한 대 맞을 그런 만화다.
그렇지만 이 만화는 걸작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게 다가온다. 한 번이라도 이 만화를 접해 본다면 그대들의 생각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
이 만화에는 건전한 교훈이 없다. 그치만, 작가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이 말 하고자 하는 바를 흔들림 없이 전달한다. 선악의 구분이 어려운 다층적인 심리를 가진 인물간의 갈등과 잔인한 살륙극은 인간본성에 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잔인한 폭력은 이 만화를 구성하는 "일반적인 원리"라고 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제를 전달하는데 필히 등장해야 할 항목이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타포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적용되는 특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잔인함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에서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걱정 한답시고 눈가림식의 묘사라든가, 아예 생략해 버린는 방식으로 그렸다면 이 작품의 테마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난 우리의 청소년들이 걱정돼"라고 생각 하신다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개연성 없는 폭력성과 선정성에나 딴지를 걸어 보라고 권하겠다. 물론 만화에도 그런류가 있지만...
스토리를 살펴보자. 혈선충이라는 벌레들을 숙주로 해서 불사신으로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누이의 죽움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이 옳다고 믿으면 언제나 사람을 베겠다고 다짐한 사람이다.
한편, 무파를 통합하려는 집단에게 부모를 잃은 소녀는 앞으로 남은 일생을 바쳐 복수를 하려한다. 만화는 이 두사람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둘은 합심하여 복수극을 펼쳐 나가게 되는데....
이 만화에는 멋있는 사람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라며 악하고 한심한 인간들 뿐이다. 그러나 이 만화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그 부족함을 가진 사람이 많은 역경과 갈등을 겪고 고뇌함으로 성장하고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을 독자들과 함께 하게 만들어 간다.
이 만화가 가지는 강한 전달력은 상황의 리얼리티에서 나온다. 각각의 캐릭터들은 자신의 고뇌에 진지하게 갈등한다. 그러한 갈등이 잔인한 폭력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멋지고, 잘생기고, 예쁜 캐릭터를 강요하는 독자들이나 그 강요를 재생산 해내는 만화가들에게 실소를 보내는 만화가 이 '무한의 주인'일 것이다.
작가는 그림을 잘 그린다. 데생력도 훌륭할 뿐 아니라, 분위기와 그림체의 조화는 더없이 완벽하다. 배경또한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 요즘 만화들에 나오는 천편일률적인 인물묘사와 정교한 배경(심지어 컴퓨터 작업으로 사진을 변형시켜 만화에 등장 시킨다) 등으로 세련함을 덧칠하는 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유행따라 변하는 세련미 보다는 작가 나름의 개성적인 미를 창조하려는 모습은 만화예술이라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의미화도 맞아 떨어진다.
이 만화의 장점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노련한 연출과 과감하고 역동적인 앵글로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며 절제된 대사는 단순한 상황에 의미를 입히고 냉소적인 유머는 작품의 세련미를 더해주고 지루함을 덜어준다.
12권까지 나왔으며 권당 3,5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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