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건물 꼭대기로 간 까닭은
진주서 매달 한 번 불금 처음 만나 어색
맥주·게임 통해 반색 또 하나의 힐링캠프

옥상은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지 많은 사람이 찾는다.

담배를 피우고자, 혼자 대충 끼니를 때우고자, 또는 속상한 일을 겪고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이유는 다양하다.

'루프톱'(rooftop)이란 말이 어느샌가 같이 쓰이기 시작하며 옥상은 색다르게 변신했다.

루프톱 카페·바·스튜디오가 생긴 데 이어, 늦은 밤 옥상을 빌려 다이닝센(Dining + Sensation)을 열거나 파티를 즐기는 이들도 생겼다.

삭막하고 바쁜 도시 속, 옥상은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하늘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옥상은 어딘가 모르게 몽환적인 느낌이다. 그곳에 서서 똑같이 생긴 빌딩들을 보고 있으면 나만 몰래 그곳에서 빠져나온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그 은밀한 느낌이 좋아서, 특별한 존재가 된 기분이라서 옥상을 찾는 게 아닐까.

진주의 8층짜리 건물 옥상, 이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비밀스러운 파티가 열린다. 지난 18일 저녁 7시, 누구보다 뜨거운 금요일을 즐기려 묵묵히 옥상을 꾸미는 이들이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담에 흰 천을 덮고, 그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거는 금방울을 달았다. 전선을 따라 이리저리 노란 전구를 걸고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적힌 포스터도 붙였다. 테이블에는 솜씨 좋은 캘리그래피로 이름이 적힌 명찰도 놓여 있다. 약 1시간 뒤에 열릴 세 번째 옥상파티 준비에 기획단 모두가 분주히 움직였다.

"오랜만에 보고 싶은 얼굴도 볼 겸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파티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총 12명으로 구성된 기획단은 이전에 모임이나 대학 때 대외활동으로 알고 지낸 사람들이었다. 각자 직업도 있지만 하고 싶고, 놀고 싶다는 마음에 자발적으로 하게 됐다.

처음 의도대로 첫 번째, 두 번째 옥상파티는 기획단과 그 친구들까지만 모아서 진행했다. 생판 모르는 남을 초대한 파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살기 힘들잖아요, 요즘. 옥상파티에 와서 모르는 사람과 놀며 힐링했으면 하는 마음에 점차 규모가 커지게 된 거 같아요."

파티에 필요한 홍보 포스터, 영상 촬영·편집, 캘리그래피 등 모두 기획단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옥상을 비롯해 소품 또한 주위 지인이 아니었으면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옥상파티를 기획한 홍성현 씨는 "제가 주최자라 하기에도 애매해요. 한분 한분 개인 역량이 뛰어나신 분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혼자서는 절대 못했을 거예요"라며 기획단과 지인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했다.

아직 몇 번째 되지 않은 파티지만 나중에는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킬 생각도 있었다. "오늘 디제이를 하는 동생도 오기로 했는데 일이 생겨 못 왔어요. 다음번엔 꼭 초청해 클럽파티를 열 생각이에요." 그는 jtbc의 인기 프로그램인 <크라임씬>을 본떠 범인을 추리하는 모임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파티 시작인 저녁 8시가 가까워지자 '8월의 크리스마스'의 콘셉트와 'green or red' 드레스 코드에 맞춰 옷을 입은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전 파티에서 만난 적 있던 참가자들은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물었다. 파티가 처음인 참가자는 어색한 듯 앉아 있기도 하고 이리저리 구경도 했다. 가랜드와 조명으로 꾸며진 포토존에서는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아 허전했던 줄에는 어색한 미소로 웃는 참가자의 사진으로 빽빽이 채워졌다.

하늘이 깜깜한 어둠으로 완전히 덮일 때쯤, 파티를 진행할 사회자가 나와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고 집중시켰다. "재밌게 놀고 힐링했으면 좋겠다"는 홍성현 씨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파티의 첫 순서 1부 '크리스마스 이브'가 진행됐다. 서로에 대해 알아보고 어색함을 풀고자 준비된 시간이었다. 각자의 명찰 뒤에 있는 질문 리스트 중 3개를 골라 일대일로 서로에게 묻고 사인을 받으면 미션 성공이었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먼저 말 걸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고 막상 입을 열자 질문 외에 이야기도 오가며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렇게 자연스레 2부 '크리스마스 만찬'으로 넘어갔다.

원래 파티는 기본적으로 BYO(bring your own)로, 같이 나눠 먹을 음식과 술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준비 못 한 참가자는 참가비를 내, 그 돈으로 부족한 음식과 술을 샀다. 크리스마스 파티의 만찬은 그 이름에 걸맞게 풍족하고 화려했다. 한 입 크기로 먹기 좋은 카나페부터 신선한 샐러드와 과일까지 눈과 입이 즐거웠다. 참가자는 삼삼오오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눴다. 술이 들어가자 분위기는 한층 더 편해졌다. 서로 직업과 나이를 소개하다가 고교 동창을 만나 반가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3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는 레크리에이션과 게임을 했다. 첫 번째 게임은 ○× 퀴즈였는데, 문제는 다소 허탈했다. "사회자는 문과 출신이다", "현재 진주 기온은 28도가 넘는다", "오늘부터 크리스마스는 115일 남았다" 등 오로지 운이 좋아야 맞히는 문제였다. 상식에 자신 없어 하던 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참가자는 이리저리 바삐 걸음을 움직이며 어디로 설지 고민했다. 게임의 묘미인 패자부활전도 거치며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질문은 이어졌다. 우승자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보조배터리가 주어졌다.

두 번째 게임을 하기에 앞서, 45명이 넘는 참가자를 7조로 나눴다. 조를 나누는 과정이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생일 순으로 줄을 선 후, 그 안에서 계절별로 조를 나눴다. 그래도 나눠지지 않자 환절기, 간절기로 나누자는 어떤 참가자의 말에 모두가 '빵' 터졌다.

그렇게 구성된 6~7명의 조원은 모여서 조 이름을 정했다. 조 이름을 빨리 외쳐야 정답을 말할 기회를 얻을 수 있기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정해야 했다. '저요 조', '닥쳐 조' 등 조 이름으로 구호를 한 번씩 외치며 의지를 다졌다. 게임은 jtbc의 인기 프로그램인 <아는 형님-레드벨벳 편>을 봤다면 알 수 있었다. 총 네 글자 중 사회자가 앞 두 글자를 먼저 제시하면 말이 되게 뒤 두 글자를 만들면 된다. 무르익은 분위기 속, 게임은 참가자의 승부욕을 불태우기 충분했다.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은 뒷전이고 정답을 맞히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블랙?" "데이", "아이?" "패드", "블루?" "오션", 정답이 오고 가는 가운데 "바람?" "…피자"라는 한 유부남 참가자의 말에 옥상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그 뒤로 사회자가 "바람?"이라고 할 때마다 참가자 모두 "피자"밖에 생각이 안 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 참가자는 결국 마스크 팩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착용하면서 한 번 더 큰 웃음을 줬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웃고 떠들다 보니 벌써 파티를 마칠 시간이 다가왔다. 밤 12시 '땡' 하면 마법이 풀리는 신데렐라의 기분이 이럴까? 아쉬운 마음을 안은 채 마지막 행사인 4부 '산타의 선물'을 진행했다. 파티 시작 전, 포토존에서 찍었던 사진과 크리스마스 카드가 참가자들에게 무작위로 주어졌다. 그중에는 오늘 처음 만났지만 겹치는 시간이 많아 친해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기회가 되지 않아 한마디도 못 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언제 요란했냐는 듯 조용한 분위기 속, 참가자들 모두 진심으로 편지를 썼다. 이후 누가 썼는지는 모르지만 카드를 읽은 참가자들 얼굴에는 미소가 흘렀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모든 행사는 끝났지만 모두 쉬이 옥상을 떠나지 못했다. 참가자들은 방명록에 글도 남기고 같이 셀카도 찍으며 다음에 있을 옥상파티를 기약했다.

※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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